[윤진섭의 비평프리즘]미술시장의 불황과 대비책
[윤진섭의 비평프리즘]미술시장의 불황과 대비책
  • 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15.05.1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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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대학 명예교수
불황의 깊은 잠에 빠진 미술시장이 깨어날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는 국내의 각종 아트페어들이 고객을 향해 유혹의 손길을 보내지만 거래는 한산하기만 하다. 바쁜 쪽은 오히려 해외 미술시장이다. 얼마 전에 홍콩에서 열린 아트바젤 홍콩과 크리스티 경매는 호황을 맞았다.

보도에 의하면 약 1천여 명에 이르는 한국 관객들로 회장이 북적였다고 한다. 반면에 KIAF를 비롯하여 SOAF와 같은 우리의 아트 페어들은 여전히 불황의 늪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국내 미술시장 불황의 원인을 짚어보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국내 미술시장이 불황에 빠지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국제적 규모의 미술 인프라의 부족을 들 수 있다. 2018년에 개관 예정인 홍콩의 M+와 같은 초대형 미술관은 아니더라도 해외 고객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시설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올해 9월에 개관 예정인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눈길을 끌긴 하지만, 그 실효는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문제는 그처럼 엄청난 공간에 담길 내용이다. 가령 전시를 목적으로 지어진 창조원의 경우, 연면적 3천 평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컨텐츠 개발을 위한 막대한 재원이 필요할 터인데, 과연 이에 대한 대책은 구체적으로 세우고 있는지 궁금하다.

홍콩의 M+는 그런 점에서 볼 때, 홍콩의 랜드 마크가 될 충분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2011년부터 개관을 준비 중인 이곳은 현재 확보된 소장 작품 만 4천여 점에 이른다. 이곳의 작품 구입 총예산은 현재 알려진 것만 해도 17억 홍콩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천 3백 8십억 원에 달한다.

현재 건설 중인 M+는 홍콩정부가 2백 16억 홍콩달러(한화 약 3조 2백 사십억 원)를 투입해 빅토리아 만의 매립지에 건설중인 17개 문화시설 중의 하나로서 그 규모는 뉴욕 근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본관의 5배에 이른다. 이 엄청난 규모의 미술관이 개관하게 되면 홍콩의 명소가 됨은 물론 해외의 관람객을 그러모으게 될 것이다. 우리로선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거대한 땅과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언어도단일런지도 모르겠지만, 나라마다 특색은 있는 법이다. 문화와 관련시켜 볼 때 중국은 거대한 스케일이 특징이고, 일본은 앙증맞을 정도로 작고 아기자기한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지나치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규모가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건물 역시 지나치게 크지도, 그렇다고 앙증맞을 정도로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가 제격이다. 그 크기의 적합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북경의 자금성과 서울의 경복궁을 비교해보면 된다.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휴먼 스케일이 있는 것이다.

문화적 특색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인간이 만드는 행사에 있어서랴! 가령 아트페어를 예로 들면 우리만의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컨텐츠의 개발이 절실히 필요하다. 전시의 컨텐츠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른 나라가 할 수 없는 독자적인 컨텐츠를 개발하여 해외에 홍보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해외의 미술을 들여오는 일만 급급했지 정작 우리의 것을 개발해 해외에 알리는 일은 등한히 해 왔다. 이러한 의식의 이면에는 사대주의가 깊이 뿌리박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국내 미술시장의 이 불황도 그 원인을 따져보면 우리의 저급한 의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물이 경쟁력이다. 작가, 비평가, 전시기획자, 미술사가, 문화 컨텐츠 전문가 등등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당면과제이다.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갖고 있는가? 미술시장의 불황을 지켜보면서 참담한 마음에 몇 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