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한국 큐레이터는 과연 ‘미술관의 꽃’인가?
[윤진섭의 비평프리즘]한국 큐레이터는 과연 ‘미술관의 꽃’인가?
  • 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15.05.2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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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대학 명예교수

후쿠오카시립미술관의 학예연구실장인 구로다 라이지는 일본의 유력한 지한파 미술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한글을 능숙하게 읽고 쓰기 때문에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일본의 전위미술에 대한 저서를 출판할 정도로 현대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웃 나라인 한국의 현대미술에 대해 많은 흥미를 가지고 대한다. 전후의 한일 양국의 미술교류사에 접근하려면 어느 한쪽만 알아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그가 후쿠오카시립미술관 학예연구원으로 재직하던 1993년도에 처음 만났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까지도 그곳에 근무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가 그곳을 평생직장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 순간에도 학예연구실장을 안정적인 직책으로 여기며 많은 일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3년마다 열리는 후쿠오카트리엔날레의 업무를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꼼꼼히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그 당연한 결과로써 아시아 현대미술에 관한 방대한 분량의 아카이브를 소유하고 있을 것임은 당연지사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일본의 정부와 미술계가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이를 바탕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과연 어떤가? 우리도 역시 그들처럼 전문적 식견과 경륜을 지닌 미술전문가를 우대하고 있는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경우, 서구의 대다수 국공립미술관과는 달리 학예연구직은 계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정년보장제에 의해 임기가 보장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일부 학예연구사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공립미술관의 학예연구사들은 학예연구실장을 포함, 2년-2년-1년의 재계약 시스템에 따라 취업이 제한된다.

다소 예외가 있지만 근무 연한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말하자면 신분 보장이 안 되는 불안한 고용조건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업무의 연속성은 고사하고 지속적으로 연구를 할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다. 게다가 과중한 업무에 비해 열악한 보수는 품위유지는 고사하고 생계가 위협을 받을 정도로 형편이 말이 아니다.

국공립미술관의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되는 전공을 이수해야 한다. 실제로 한국의  큐레이터들은 석사 혹은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들이 받는 보수는 동년배의 회사원들이 받는 보수에 턱없이 못 미친다.

이들은 그래도 낳은 편이다. 똑같은 학위증을 지닌 사립미술관이나 갤러리의 큐레이터들은 월 평균 150만 원에도 못 미치는 형편없는 보수를 받는다. 유명 메이커의 여성복 한 벌 값에도 못 미치는 한국 큐레이터의 보수 현실. 게다가 인턴은 어떤가? 40-80만 원이 보통이다!

나는 내가 첫 직장을 가진 1981년 이후 지금까지 받은 명함을 전부 보관하고 있다. 어림잡아 3만 장쯤 된다. 몇 년 전에 그걸 직종별로 분류해 봤더니 가장 이직율이 높은 직종이 큐레이터와 잡지사 기자였다. 어떤 사람은 5년 사이에 무려 8장의 서로 다른 명함을 내게 주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 미술계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느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직장의 사정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것을 뜻한다.

흔히 큐레이터를 ‘미술관의 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서구 선진국의 경우에는 몰라도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을 진정 ‘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고용 환경과 신분보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예술과 문화의 융성이 바로 이들의 어깨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문화 예술의 백년대계를 위한 법적, 제도적 기초를 마련하자.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