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칼럼]춤, 삶을 수놓다-MODAFE 2015의 작품 들
[이근수의 무용칼럼]춤, 삶을 수놓다-MODAFE 2015의 작품 들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5.05.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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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춤, 삶을 수놓다’, 34회를 맞는 국제현대무용제의 올해 주제어다. 1981년 ‘한국현대무용향연’이란 이름으로 한국현대무용협회(김현남)가 개최하기 시작한 이 대회는 양정수(수원대) 회장 재임 시인 2002년부터

MODAFE(MOdern DAnce FEstival)로 개명하고 명실상부한 국제적 성격의 현대무용축제로 탈바꿈했다. 5월19일부터 31일까지 13일간 개최된 금년 대회엔 개막과 폐막공연에 초청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포함하여 리투아니아, 체코, 독일, 일본 등 6개국의 해외 작품과 국내초청 19작품 등 모두 25개 작품이 아르코대극장과 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이탈리아의 스펠바운드 컨템퍼러리발레단(Spellbound Contemporary Ballet)이 공연한 ‘4계’(Four Seasons, 5.19~20, 아르코대극장)가 페스티벌 개막작이다. 비발디의 4계(四季)를 모티브로 마우로 아스톨피가 안무한 작품으로 2010년 이탈리아에서 초연했다.

이탈리아계인  마우로 아스톨피는 미국에서 귀국한 1994년 발레단을 창단하고 현재까지 예술감독으로 있다. ‘4계’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음악으로 손꼽힌다.

이 음악을 배경으로, 막이 오르면 무대 한편에 두 폭 가리개모양의 스크린이 펼쳐 있다. 씨앗이 움 트고 싹이 자라면서 꽃이 피어나는 봄의 영상이 스크린에 투영된다.

가리개가 회전하면서 지붕을 올린 사각형의 집 모양이 갖춰지고 출입문과 창문도 생겨난다. 집은 무용수의 신체이고 벽은 피부를 상징한다. 출입문은 외부와의 통로이고 창문은 자연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이다. 정보를 수신하고 외부의 변화를 감지하는 멀티미디어기능을 창문에 대입시켜놓은 아이디어는 신선하다.

출입문을 통해 무용수들이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고 봄에서 여름으로, 다시 가을과 겨울로 바뀌는 시간의 흐름은 음악의 변화와 동시간적으로 창문에 영상으로 비쳐진다. 집을 중심으로 9명의  남녀무용수가 펼치는 춤은 역동적이지만 춤사위는 오히려 보수적이고 영상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인지 춤이 영상의 아바타로 축소 된 느낌도 준다.

귀에 익숙한 비발디의 음악은 친근성이 있는 반면에 작품의 신선함을 반감시킨다. 디지털시대의 융합적인 컨템퍼러리 춤이라기보다는 1990년대의 실험적인 현대무용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국내초청작 중 이정인의 ‘SKINS'(5.23, 아르코 소극장)는 몸으로 써내려간 이정인의 팡세다. 경희대를 졸업하고 2010년부터 동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귀국한 후 국립현대무용단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 이정인은 이 20분의 솔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춤 캐릭터를 확연히 드러내 준다.

“거절할 수 없어 내미는 남의 손을 잡았지만 그 순간의 접촉이 가져다준 불편함이 감각을 굳어지게 하고 조금씩 삶에 미묘한 균열을 초래케 하던 그 자신의 경험”을 그녀는 춤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있어 몸은 이성이고 마음은 감성이다.

지각하는 몸과 그로 인해 불편을 느끼는 마음은 갈등을 일으키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춤 속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고도로 축적된 내공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정인은 이를 안정된 몸의 테크닉과 완전하게 몸속에 이입된 진지한 감정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관객과의 교감에 성공하고 있다.

댄싱 9식의 경박함이나 억지웃음을 짜내는 개그콘서트식의 부자연스러운 연출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이정인이 자신의 캐릭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서유럽과 차별화된 동유럽예술의 신중함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인지 모르겠다. 부분조명을 받으며 대각선으로 놓인 직사각형 길을 한 발짝씩 이동하면서 힘을 비축하고 차곡차곡 계단을 오르듯 쌓여진 내공을 완성단계에서 꽃처럼 피어나게 하는 안무가의 저력을 발견할 있는 작품이었다. 

개막작과 폐막작의 70분 공연 외에는 국내외 모든 초청작이 20분 공연으로 획일화되어 있고 대극장과 소극장무대에 할당된 작품들이 규모면에서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아쉬웠다.

무대장치 없이 젊은 춤꾼들이 솔로나 2인무를 소화하기엔 대극장무대가 버거워보였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무대이용의 효율성을 찾고 작품구성을 다양화하는 등 MODAFE출범 당시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