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무형문화재 제도의 명(明)과 암(暗)
[김승국의 국악담론]무형문화재 제도의 명(明)과 암(暗)
  • 김승국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상임부회장
  • 승인 2015.05.2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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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상임부회장/시인
문화재는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와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로 구분된다. 탑이나 불상·건조물·회화·조각·공예품 등 같이 일정한 형태가 있어서 눈에 보이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유형문화재라 하고, 승무·탈춤·판소리, 공예기능 등의 예술활동처럼 일정한 형태가 없어서 눈에 안 보이는 무형의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무형문화재라고 한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되고 1964년 최초로 종목별 기·예능보유자가 지정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정부는 현대문명 속에서 사라져갈 우려가 있는 기?예능 종목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 종목으로 지정하고 보유자를 인정하여 현재까지 제도적?체계적으로 무형문화유산을 보호 육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 제도는 유네스코에서 우리의 무형문화재 제도를 영구히 연구·보존·보호토록 하겠다고 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도이며,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말살하려했던 일제강점기의 문화정책과 서구 근대문화의 팽창 과정에서 단절 위기에 처해있던 무형문화유산의 복원과 보존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그러나 무형문화재 제도가 시행되면서 종목 지정된 예능종목은 전승체계와 전승기반을 구축하여 활성화된 것은 순기능이라 할 수 있으나, 종목 지정 및 보유자 인정제도의 경직성에 의하여 지정에서 제외된 종목들은 전승이 단절되거나 멸실되어 결과적으로 문화예술의 다양성이 훼손되는 역기능도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러한 현상은 예능부분의 무용종목에서 심했는데 지정에서 제외된 무용 종목들 중에는 지정된 소수의 종목 못지않게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존 지정 종목들의 저항에 부딪혀 진입이 차단되어 애석하게도 종목 전승의 기반이 무너져 내려 이미 전승이 단절되었거나 단절 위기에 처해있는 종목들이 많다. 오늘날 한국무용의 침체는 한국무용계가 다양한 전통무용 종목들을 배제한 채 살풀이, 승무, 태평무 등 소수 종목에만 매몰되었던 것도 여러 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무형문화재를 보존하는 방식은 인적 전승체계, 즉 보유자와 그 전승체계의 국가보호와 지원을 통한 무형문화재의 보존 방식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보유자 인정제도는 한국무형문화재 제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형성하는 것이고, 이제까지의 한국의 무형문화재 정책 성공의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된 소수의 보유자를 중심으로 하는 저비용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은 정부 재정이 취약했던, 6,70년대에 적합한 정책 수단이었으나 지금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도가 시행된 지 50년이 지난 현재, 예능보유자 1세대가 대부분 작고하고 2?3세대 보유자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원형 훼손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인기종목의 예능보유자들이 원형보존 영역과 재창조 영역을 독점하면서 문화 권력화 현상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능보유자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보유자의 전승체계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는 다수의 예능인과 전승자들은 국가의 예능보유자에 대한 신분적 권위 부여와 보호에 의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양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전통문화의 건전한 전승을 왜곡할 수 있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물론, 무형문화재 전반에서 그러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일부의 소수 인기 종목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러한 종목들이 전통문화예술의 전체 영역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무형문화재 제도는 개선되어야한다. 보유자 중심 보존전승이 아닌 무형문화재 자체의 보존전승체계로 전환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특정 보유자의 전승체계 내에 있지 아니한 그 이외의 무형문화재 전승자들도 무형문화재 정책의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승활동이 활발한 종목은 종목지정은 인정하되 점차 국가 관리에서 제외하고, 국가에서 지원하지 않으면 소멸될 우려가 있는 분야에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무형문화재 제도의 본래의 취지가 전승활성화인 만큼 이미 활성화되었다면 환경변화에 맞춰 제도도 같이 변화해야 마땅하다. 

우리의 무형문화유산 중 예능종목은 수천 년 역사를 내려오면서 끊임없이 재창조?변화해 왔으며 미래에도 부단히 재창조되어 발전해가는 속성을 가진 점을 감안한다면 무형문화재 예능종목 지정 당시의 원형만을 사진 찍어 놓듯이 전승하는 것만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예능종목이 현 시대의 민중의 정서와 동떨어진 박제화 된 고전 예술이 아닌 현 시대의 예술로서 민중의 정서와 함께 호흡되어지는 전통예술로 발전되어 나가기 위해서는 원형의 보존 및 전승 못지않게 원형을 바탕으로 한 재창조와 현대화는 필요하다. 

잘못되고 있는 것은 반드시 시정되어야한다. 현행 보유자 인정제도가 관계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해서 잘못된 것을 영원히 덮어 둘 수는 없다. 무형문화재는 이해관계자들의 소유물이나 독점물이 아니며 국민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전승, 발전되어야 할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