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우봉 이매방이 떠올려진 수당 정명숙의 살풀이춤
[객석에서]우봉 이매방이 떠올려진 수당 정명숙의 살풀이춤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5.06.26 03: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중동의 춤사위 에서 배어나오는 부드럽고 단단한기운 전해져

오래전, 지금부터 약 20년 전 쯤(정확히 1998년) 4월,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향기롭게 하던 어느 봄밤이었다.

남산한옥마을 개관축하공연을 취재하러 갔던 기자는 한옥마을 내  천우각에서 살풀이춤을 추던 宇峰(우봉) 이매방 선생 춤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기자는 당시 이매방 선생이 우리나라의 뛰어난 춤꾼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정작 선생의 춤을 직접 무대에서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날 이매방 선생의 춤사위는 단아함과 정갈함 속에서 길어올려지는 에너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용모도 자태도 무척 작고 고와서 선생이 남성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이후에 남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끔 TV에서 그의 춤사위를 봤을 때 그 부드러운 곡선의 몸짓은 영락없는 여성의 춤사위였다.

▲수당 정명숙의 살풀이춤의 한 장면.

또 하나 그날에 있어 기억나는 장면은 살풀이춤이 끝난 후 이생강 선생이 한옥으로 통하는 계단위 사주문 앞에서 달빛을 받으며 연주한 청아한 대금소리다. 지금까지 수 많은 공연을 봤지만 그 때의 정경은 내가 본 무대 중 최고였다.

지난 21일(일) 오후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린 秀堂 정명숙 선생(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 보유자 후보)의 36번 째 무대를 보면서 20년 전 쯤 그날, 남산한옥마을에서 봤던 이매방 선생의 춤이 오버랩됐다.

정명숙 선생의 조바위를 쓰고 巫服(무복) 두루마기의 격식을 차려 갖춰 입은 자태며,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靜中動(정중동)의 춤사위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다. 이매방 선생에게 느꼈던 단전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춤의 에너지가 객석에 전해져 온 것이다.

무대에서 보여지는 정명숙 선생의 자그마한 체구와 이매방 선생의 체구는 거의 흡사하다. 아마 그래서 더 수당 선생의 춤에서 우봉 선생의 모습이 겹쳐졌는지 모르겠다. 춤꾼이 스승의 춤을 사사할 때 스승의 자태를 닮아 있으면 '그 춤의 구현이 더 가깝게 나올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명숙 선생은 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인 이매방 선생의 제자로 현재 보유자후보 자격을 가지고 있다.

이날 수당 선생의 춤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80연배에 들어서는 수당 선생의 춤 인생은 70년이 다 돼간다. 그동안 국내외 크고 작은 무대에서 춤을 추어오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는 수당 선생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이날  소개됐다.

사회를 맡은 오정희 박사가 잠시 막간을 이용해 수당선생의 제자가 들려준 수당선생의 일화 한토막이다.

몇 년 전, 한반도 ‘전쟁발발’의 전운이 감돌며 잠시 남북관계가 초긴장상태에 돌입한 적이 있었다.  수당 선생의 제자는 이 말을 선생에게 전한다. 제자의 말을 들은 수당 선생은 가만히 방으로 들어가 가방에 무언가를 챙겼다. 제자가 가서 보니 선생의  가방 속에는 살풀이 수건과 의상이 곱게 개켜져 들어 있었다. 선생은 전쟁의 위협 상황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다른 귀중품이 아닌 살풀이춤을 위한 도구들만 챙긴 것이다.

그가 살풀이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고 ,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한 단면이다.

이은영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