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ulmn]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정서를 읽는 기술에 대하여
[Culture Coulmn]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정서를 읽는 기술에 대하여
  • 유승현 예술심리치료사 / 도예가
  • 승인 2015.07.1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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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현 예술심리치료사 / 도예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이후 메르스)의 영향으로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을 예상치 못하게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초기 대응이 무척 아쉬운 사건으로 현재 치사율 16.1% 확진자 180명 총사망자 29명 (현6월25일 기준)으로 정부부처에 대한 불신감과 불안감이 극대화 되고 있다. 외신보도마저도 부끄러운 사건이며 내용면은 다르지만 전 국민의 편치 않은 정서는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과 비슷하거나 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도 그럴것이 이 나라의 먼지로 쌓여있던 소독약과 마스크를 동나게 만들었고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오는 병원의 근처 식당과 거리는 영구적으로 문닫는 곳까지 생겨났다. 근 한 달간 신문1면의 주인공 메르스(MERS)덕분에 등장 인물들은 이름대신 000번으로 호명되며 앞집 어르신은 심한 몸살감기가 와도 죽어도 병원에 안가신단다. 믿었던 대형병원 마저 패쇄 지경까지 갔으니 지병으로 정기 검진을 받아야하는 지방 환자들은 심신이 편치 않다.

교통사고 피해자로 입원하는 가짜 환자들이 줄어드니 아이러니하게도 보험사는 웃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필자는 최근 문상을 갔다가 조문객 없는 식장을 실제로 보고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또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에 살이 붙은 글들은 SNS등을 통해 실시간 전달되며 “지용성 바셀린 로션을 콧속에 바르라. 마스크는 00로 써라, 정부가 메르스로 더 큰 사건들을 덮으려 한다”등 검증되지 않은 루머와 지도부에 대한 비판의 말들이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두려움의 대상은 면역력이 약한 기저질환자들로 시작했지만 아동, 청소년들도 감염을 피할 수 없다는 중간보고는 보건당국과 교육부의 한박 늦은 불협화음으로 보여지게 되었다.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거나 의심군 지역은 때 아닌 메르스 왕따에 메르스 방학이 생기게 된 것이다. 주말마저도 잘 돌아가던 입시학원까지 갑자기 한가해지는 시공간이 되었다. 물론 사교육에 지쳤던 아이들은 “메르쓰 나이쓰 고마워” 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집안에서 뒹굴거리며 간식만 축내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지만 학교와 복지기관의 데이케어를 받아야하는 맞벌이 가정과 한 부모가정 등 소외계층의 아동, 청소년들은 대책없는 휴교에 가정 보호의 의미는 전혀 없었고 PC방 노래방 등을 몰려다니며 담당교사들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하였다.

그나마 복지센터를 착실하게 이용하는 경우는 온종일 학생들이 들끓어 교사들은 몸살이 나도 병원도 못가는 지경이란다. 위에서 내려진 지령에 하루 종일 소독약 분사에 발열체크중인 나라다. 개인의 정서는 물론 현 사회를 반영하는 사회심리, 또 국가의 문제해결능력과 각 부처의 대응력까지 경험한 초비상 사태인 것은 틀림이 없다고 사료된다. 우리 모두는 정서적으로 힘든, 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사상 초유의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긴말을 늘어놓았다.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교육청 WeeClass상담실에서 청소년의 정서를 다루는 필자는 이번 일을 보며 콘트롤 타워의 역부족, 보건당국의 안이한 태도, 지방 정부간 협력 부족 등을 다루고 싶지는 않다. 다만 어떠한 문제 발생시 타인의 정서를 읽는 기술이 매우 부족한데에서 오는 것이 그것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위기에 봉착했을 때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소통하려는 기술을 발휘했다면? 나로 인해 누군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보았다면? 생명에 대한 위협과 함께 그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결과를 대입해 봤다면? 이 과제를 다른 부서와 함께 해결하고자 했다면? 신종 전염병들에 대한 정보력과 그 위기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메르스보다 더 무섭게 퍼져나가는 이 불안과 불신의 전염병은 어찌 해결할 것인가? 사회란 나와 다른 이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며 타인의 욕구와 정서를 읽는 기술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한 세상이다.

전 국민에게 우울감을 조성한 세월호 침몰사건은 이제 1주기를 넘겼다. 안전에 대한 욕구는 극도로 자극이 된 상태이고 ‘모두 다시 돌아오라’는 은유적 심상은 슬픈 전국을 오히려 희망의 노란 물결로 만들었다. 이 넘실되는 행위는 가버린 이를 위로하고 서로의 긍정에너지를 표현한 시공간 오브제이며 전국형 가변설치 작품이었다. 우리 모두 다른 이의 정서와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했기에 자연스레 표출된 것이고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가 되어 물결치게 만든 것이다.

지난 주 경기 N고교 고교생들에게 진로 강연을 하며 필자는 외쳤다. “고통스럽고 힘든 정서에 당면했을 때의 첫 과제는 솔직하게 그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며 전략적인 실행과 함께 정서적인 안정감으로 공감능력을 꾀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어릴 적부터 공감에 대한 훈련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 예술입니다.  물론 예술은 한 시대를 반영하는 솔직한 문화유산이기도 하지요” 라고 말이다. 사회 변화와 흐름에 따라 뭔가 삭감되거나 절제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늘 문화예술계부터다. 질적 유무와 상관없이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되지만 결국 타인을 위로하는 주제로 무대에 다시 서는 것도 예술가들이다. 작년 세월호 이후 이번일로 많은 공연과 기획이 취소되었다.

관객 없는 무대에 서는 일은 일 년 농사를 준비한 농부들이 한해 농사를 망치는 일처럼 기운 빠지는 일이지만 이미 타인에 대한 감정과 정서를 읽는 기술을 남다르게 훈련받은 우리인 만큼 희망을 갖고 더 이상 패닉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하겠다. 곧 올 장맛비에 불신감은 확 씻어내고 신뢰와 소통의 싹을 튀어 지도부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 어떨까? 비야 시원하게 내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