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칼럼]그램 머피의 ‘지젤’? 혹은 ‘지젤’에 대한 반역
[이근수의 무용칼럼]그램 머피의 ‘지젤’? 혹은 ‘지젤’에 대한 반역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5.07.16 2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아돌프 아당의 음악을 사용한 장 코랄리와 쥘 페로의 지젤’이 낭만발레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면서 1841년 파리 오페라좌 초연 이래 한결같이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2막의 신비스러운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배신으로 지상에서의 삶은 끊겼지만 여전히 순수한 그들의 사랑과 환상을 보는 듯 아름다운 윌리 들의 춤으로 구성된 2막이 바뀐다면 아직도 지젤일 수 있을까. 유니버설발레단(문훈숙)이 그램 머피(Graeme Murphy, 호주, 1950~)를 초청하여 공동 제작한 ‘지젤’(2015, 6.13~17, 오페라극장)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 도전한다.

논리적인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춘 신 지젤의 1막은 획기적이다. 베르트(지젤의 어머니)와 미르트의 대결구도로 극을 이끌어가기 위해 삼각관계를 만들고 베르트를 마을의 제사장으로 설정한다. 그녀에게는 마을을 수호하고 악령을 퇴치하는 힘을 가진 크리스탈조각이 있다. 얼음처럼 빛나는 수정동굴은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다. 입구를 통과하면 울산바위를 연상케 하는 원경과 인수봉을 떠올리게 하는 근경에 둘러싸인 산속 마을이 펼쳐진다.

무대디자이너 제라드 마뇽이 머피의 지젤스토리에 한국의 산세를 접목한 인상적인 디자인이다. 이 배경아래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산골세계와 도시세계를 연결하는 상징성을 지닌 이질적인 두 세계의 만남은 흥겨운 축제로 이어진다. 유니버설 수석무용수인  황혜민의 솔로와 역시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와 추는 듀엣은 이 작품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음악은 아당의 음악 대신 크리스토퍼 고든이 신곡을 작곡했다. 미하일 그라노프스키 지휘로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전막을 연주한다. 흥겨운 축제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에 국악 타악기를 포함시킨 음악은 춤과의 조화를 이루며 1막의 신선함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린다. 원작 지젤의 약점으로 지적되어왔던 산만한 1막의 플로트가 머피의 드라마구성을 통해 새로운 지젤로 탈바꿈했다고 볼 수 있다.

1막의 혁신에 비해 2막의 전개는 실망적이다. 비틀어진 괴목 한 그루가 무대 한 가운데를 차지하며 서있고 어두운 조명이 음산한 숲 속의 정경을 비쳐준다. 2막(40분)이 악령들에 맞선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대결인 것은 원작과 동일한 설정이다. 그러나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던 원작의 윌리 들은 흰 머리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섬뜩한 유령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마음속엔 원한이 가득하고 남자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악령들의 우두머리가 미르트다.

지젤의 아버지 울탄을 놓고 베르트와 삼각관계였던 그녀는 베르트에 대한 복수로 울탄의 목숨을 빼앗은 전력이 있다. 악령들의 여왕이 된 그녀는 지젤을 무덤에서 불러내고 무덤을 찾아온 힐라리온과 그 동료들을 죽게 만든다. 지젤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그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무덤을 찾아온 알브레히트도 미르트의 복수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사이에 지젤의 완전한 사랑이 있어 그를 구원한다. 베르트가 가진 크리스탈의 신비한 효험으로 악령들은 영구히 퇴출되고 미르트와의 숙명적인 대결도 막을 내린다.

그램 머피는 안무가라기보다는 예술경영자다. 조프리발레와 영국, 프랑스 발레를 잠깐 경험한 그는 26세 나이에 시드니댄스컴퍼니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그 후 30년간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로미오와 줄리엣 등 고전의 재해석에 뛰어난 두뇌를 보여준 그와 유니버설발레단(문훈숙)의 만남은 새로운 지젤의 세계초연이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원한을 품고 죽은 귀신들이 왜 아름다울까’, ‘2중적인 처신 끝에 끝내는 지젤을 죽게 만든 배신 남을 왜 살려줘야 할까...’ 그램 머피가 원작에 대해 제기한 의문들이다. 가장 지젤다운 지젤이라고 불렸던 문훈숙이 이러한 의문들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지젤스토리에 논리성을 보강한 1막을 재미있게 느끼면서도 2막의 변화에 공감할 수 없는 것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원작의 지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던지, 아니면 모나리자의 얼굴에 그려진 콧수염처럼 마케팅을 위해 희생된 원작의 예술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