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윤이 만난 아티스트 4>‘한국최초’, ‘동양인 최초’라는 수식어의 대명사, ‘모델 혜박’
<박자윤이 만난 아티스트 4>‘한국최초’, ‘동양인 최초’라는 수식어의 대명사, ‘모델 혜박’
  • 박자윤 기자
  • 승인 2015.07.1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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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 혜박

지난 2005년, 백인 모델들이 장악하던 전 세계 패션쇼 런웨이 위에서 쟁쟁한 세계적 톱모델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낯선 동양인 모델이 등장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녀의 이름은 혜박(Hye Park, 본명 박혜림). 당시 갓 스무 살을 넘긴 혜박의 등장은 한국 및 동양 패션계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1985년 경기도에서 태어나 13세에 미국에 이민을 간 혜박은, 모델 데뷔와 동시에 현재까지 샤넬, 루이비통, 발렌시아가, 버버리, 지방시, 발망 등 유명 해외 컬렉션 500여 개가 넘는 런웨이를 밟았다. 이 중 무려 30여 개가 아시아 모델 최초로 오른 무대다. 그리고 막스마라, 돌체 앤 가바나, 티파니, 에이치앤엠, 갭, 레스포삭, 케라스타즈 등 다수의 패션 및 코스메틱 제품의 글로벌 광고에도 동양인 최초로 활동하며 ‘한국인 최초’, ‘동양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전무후무한 모델로 위상을 높였다.
 
이러한 혜박의 경력을 인정하듯 지난 2008년에는 전 세계 모델들의 순위를 소개하는 사이트인 모델스닷컴(http://models.com)의 영향력 있는 모델 16위에 선정되며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모델스닷컴 오픈 이후 50위권 안에 든 동양 모델은 그녀가 최초였으며, 이는 동양인이라는 편견 때문에 세계무대의 벽에 부딪히는 한국 모델들에게 길을 열어 준 중요한 계기가 된 셈이다.

동ㆍ서양의 이미지가 모두 담긴 얼굴이기에 신비롭기만 한 게 아니라 고급스러워 국내외 최고급 브랜드가 가장 선호하는 이미지의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 혜박은 한국 활동에 나선 후 패션쇼와 패션 화보, 광고 등을 통해 모델로서뿐만 아니라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소탈하고 친근한 반전매력을 선보여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전하는 일상마다 기사화되며 화제가 되는 핫한 스타일 아이콘이자 여성들의 워너비, 글로벌 셀러브리티로 꼽히고 있다. 그런 혜박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았다.
 

▲ 모델 혜박

- 반갑습니다! 톱모델 혜박씨, 혜박씨께서 생각하시는 ‘모델’은 무엇입니까?

안녕하세요. 모델 혜박입니다. 반갑습니다.
‘모델’은 제 생각에, 누구보다 제일 먼저 멋진 옷을 입고 많은 사람에게 그 옷이 얼마나 멋지고 예쁜지를 보여주는, 정말 중요한 책임을 진 직업 같아요. 그래서 패션과 유행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제시해야 하는 정말 어렵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모델 워킹은 몰라도 영어는 할 줄 알았던 ‘동양인 모델’
 
- 데뷔하신 지도 벌써 10년 차, 혜박씨에게 ‘최고의 시즌’이 있다면 언제예요?

제가 처음으로 런웨이 무대에 오른 첫 시즌인 2005 F/W (가을/겨울) 시즌이예요. 중학교 때부터 모델이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포기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평범하게 미국 유타주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길거리 캐스팅으로 뉴욕으로 2005년 1월에 날아갔어요.

그 당시 저는 모델이 어떻게 워킹을 하는지 자세를 취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였고, 학원에 다니거나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저 혼자 쇼 영상들을 보면서 집에서 연습만 한 것이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모델의 삶이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그렇게 뉴욕에 날아가자마자 매일매일 하루에 10개에서 많게는 20개의 캐스팅을 다녔고, 정말 힘들고 반면에 너무 재미있고 신나는 하루하루였어요.

그러던 중 패션계에서 유명한 사진작가 스티븐 마이젤의 이탈리안 보그 잡지 촬영장에 동양인 모델이 갑자기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모든 에이전시에서 동양인 모델들을 촬영장으로 보낸 거에요. 그 자리에는 저뿐만이니라 한국, 일본, 중국의 동양계 모델들이 와있었어요. 캐스팅 중 제 차례가 오자 저에게 여러 질문을 했고 제가 대답하는 걸 보더니 “너는 영어를 할 줄 아는구나?” 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미국 유타주에 사는 한국인’ 이라고 했고, 그들은 영어를 잘하는 동양인 모델을 처음 본다며 매우 신기해했어요.

그러더니 저보고 긴장하지도 않고 밝게 대답하는 모습이 좋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아티스트에게 준비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저의 첫 이탈리안 보그의 화보가 나왔고, 그 순간 저는 스티븐 마이젤과 촬영한 첫 동양인 모델이 되었어요. 그 이후 쇼 시즌이 시작됐는데 가는 캐스팅마다 스티븐 마이젤과의 촬영을 얘기하면서 저를 쇼에 캐스팅해주었어요.

그만큼 그분의 영향력이 대단했던 거에요. 이후엔 그 시즌 활동하는 모델들 사이에서도 기록을 세울 정도로 뉴욕, 밀라노, 파리 등지에서 100개에 가까운 쇼에 섰어요. 정말 예상하지도 못했던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펼쳐진 거예요. 몸은 아프고 힘들고, 하지만 제 인생에 제일 행복했던 순간 같아요.
 
동양인과 흑인에게 굳게 닫혀있던 발렌시아가의 문, 혜박이 열다
 

▲ 모델 혜박

- 두루 만나지 않은 디자이너가 없지 않았을 것 같아요. 혜박씨께는 어떤 디자이너를 좋아하세요?

예전 발렌시아가 디자이너였던 니콜라 게스키에르((Nicolas Ghesquiere)를 좋아해요. 발렌시아가는 패션계에서 동양인모델이나 흑인모델을 절대 무대에 세우지 않는 디자이너와 제품으로 유명했어요. 그런데 제가 데뷔하던 해 밀라노 컬렉션을 끝내고 파리 컬렉션으로 넘어가기 전 시간이 남아 밀라노에 남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파리의 에이전시에서 빨리 비행기 표를 끊고 파리로 오라고 급하게 연락이 왔어요.

발렌시아가에서 동양인은 캐스팅조차 부르지 않는데 디자이너가 저를 보고 싶다고 캐스팅에 오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얼른 파리로 날아갔어요. 캐스팅에 가도 쇼에 선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제게는 정말 중요한 기회였거든요. 캐스팅에 도착했을 때 저 말고 다른 백인모델들이 200명 이상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고는 ‘아 나는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끝까지 남아서 기다렸어요. 제 워킹과 제 얼굴을 꼭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긴 기다림 끝에 제 차례가 왔고, 들어갔을 때 니콜라는 반가워하는 얼굴로 제 이름을 알고 있다며, 제가 뉴욕, 밀라노에서 한 쇼들을 눈 여겨보았다 했어요. 그리고는 쇼 의상을 입고 걸어보겠느냐고 했지요. 처음으로 발렌시아가의 쇼 의상을 입어보았고, 정말 떨렸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 있게 걸었어요.

제 워킹을 본 그는 저에게 워킹이 정말 마음에 든다며 제가 입고 있던 쇼 의상도 제가 아니면 그 누구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며 바로 그 자리에서 바로 출연을 확정시켰어요. 저의 파리 에이전시도 정말 놀랐고, 저 역시도 아주 기쁘고 놀랐었죠. 그렇게 제가 쇼에 섰을 때 모든 사람이 첫 동양인 모델이었던 저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던게 기억에 남아요.

그 이후로도 니콜라는 매 시즌 저에게 발렌시아가의 쇼 무대에 설 기회를 주었고, 제게 ‘네가 다른 쇼에서도 첫 동양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끊임없이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기에 제가 더 열심히 모델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톱모델 혜박씨께서 뽑는 최고의 톱모델은 누구입니까?

‘케이트 모스 (Kate Moss)’요. 안 좋은 일들로 기사에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모델로는 정말 멋진 최고의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케이트 모스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모델들도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어하는 모델 중 하나에, 그냥 ‘가만히 있어도 화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예요. 케이트 모스는 그 자체로도 아우라가 엄청난 모델인 것 같아요. 모델로는 작은 키에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제가 그녀처럼 저의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모델이고,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면 최고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만들어준 모델이예요.
 
데뷔 3년 만에 찾아온 슬럼프, 그리고 극복은 다시 런웨이에서
 

▲ 모델 혜박

- 지난 10년 간, 슬럼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2005년 모델 일을 시작하고 몇 년간은 한 해에 손꼽을 정도만 쉴 수 있고, 매일매일 전 세계의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도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무엇보다도 아플 때 혼자 있어야 하는 것이 제일 서러웠어요. 그렇게 2008년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당시 결혼을 했는데, 남편에게 일을 그만하고 평범하게 학교 다니면서 지내고 싶다고 이야기했더니 남편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지지하고 응원해주는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학교도 다니고, 여행을 다니며 쉬면서 지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백화점에 갔는데 모든 매장에 저랑 같이 활동하던 모델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지는게, ‘나는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잘하는 것이 모델 일인데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운명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왔어요. 발망과 이사벨 마랑에서 저를 단독 동양인 모델로 쇼에 세우고 싶다며! 마치 하늘이 제 마음을 알고 도와준 것처럼! 잠시라도 활동하지 않으면 금세 잊혀지기 마련인데, 무려 일 년 동안 쉬었는데 불구하고, 그렇게 첫 동양인 모델로 발망과 이사벨 마랑에 런웨이에 서게 되면서 또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어요. 그렇게 자연스레 일을 시작하면서, 그때 이후로 더욱더 제 일에 감사하게 되었어요. 또한 자부심도 생기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혜박씨의 멘토는 누구이며, 그분은 혜박씨께 어떤 분으로 자리 잡고 계십니까?

저의 뉴욕 트럼프 모델 매니지먼트의 에이전시 대표이자 2005년 첫 시즌부터 저의 에이전트였던 코린 니콜라스가 저의 멘토예요. 제가 모델이 되기 위해 뉴욕에 갔던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제 담당 에이전트인 Corinne은 제가 저의 ‘두 번째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제겐 너무 고맙고, 은인 같은 존재예요. 제가 힘들 때 위로 해주기도 하고, 하지만 실수하고, 나태해졌을 때는 채찍질도 해주는 분이세요. 그리고, 누구보다 저의 입장을 잘 헤아리고 이해해주는 고마운 분 이예요. 제가 지금까지 모델로서 일할 수 있게 이끌어준 분이고, 모델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힘든 일이 있을 때 항상 저에게 현명하게 필요한 답을 주는 분이세요.
 
- 데뷔 10년차의 모델 혜박, 최종 목표와 꿈이 있다면?

지금 저는 제가 태어난 한국에서 활동하는 게 너무나 재미있고 행복해요. 보통 모델들이 한국에서 시작해서 해외로 나가 활동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저는 해외에서 데뷔하고 활동을 시작하다 한국에 와서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겐 한국에서 활동하는 게 누구보다 새로운 경험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어느 것보다도 한국 활동에 집중하고 싶어요. 물론 해외 활동도 꾸준히 병행하겠지만, 한국에서 모델 활동뿐만 아니라 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도 도전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며 팬 여러분을 만나고 싶어요. 앞으로도 잘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