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윤이 만난 스포츠 스타> 전 피겨국가대표 곽민정
<박자윤이 만난 스포츠 스타> 전 피겨국가대표 곽민정
  • 박자윤 기자
  • 승인 2015.07.19 0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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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 살아오면서 몸소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후배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전해주는 것이 지금 주어진 또 다른 숙제”
▲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메달을 딴 곽민정 선수.

곽민정 선수가 직접하는, ‘나의 소개’”

안녕하세요! 중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에 발탁된 후, 7년간 국가대표로서 국제무대에 출전했던, 전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곽민정입니다. 2010년에는 김연아 선수와 함께 밴쿠버 올림픽에 최연소로 참가했으며, 2011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한국 여자피겨 역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각종 시니어 무대에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지난 랭킹대회를 마지막으로 선수활동을 접고 현재 재학 중인 이화여대 졸업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지현정 코치님 밑에서 코치 연수를 받으며 새내기 코치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해온 피겨 스케이팅. 그동안의 못한 이야기

스케이트를 처음 신은 순간부터 모든 생각과 생활을 스케이팅 훈련에 맞춰왔습니다. 코치님께 ‘너는 어떻게 24시간 스케이트만 생각하며 사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실력이 향상되고 유망주로 주목을 받으면서 피겨는 제 운명처럼 느껴졌고, 저는 빈틈없이 치열한 날들이 좋았습니다.

운동선수에게 꿈의 무대인 올림픽에 참가한 이후, 시니어 대표로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하게 되면서부터는 늘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칼끝 같은 예민함으로 전쟁 치르듯 지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김연아 선수의 후배로서 제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에 자신을 채찍 하며 더 고되게 했던 면도 있었습니다.

한국은 피겨 스케이트의 불모지였고, 김연아 선수를 제외하고는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다투는 경쟁력을 기대하기 힘들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부터 정했습니다. 그것은 운동선수로서 살아가는 하루하루에 스스로 금메달을 걸어 줄 수 있는 선수생활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제 꿈은 선수 생활을 되도록 오래 함으로써 가장 아름다울 수 있을 때, 제 완숙한 스케이팅을 통해 제 길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아쉽지만 ‘과정의 금메달’을 얻기 위해 치열했던 저의 삶은 부끄럽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울 수 있을 때까지 스케이팅하지는 못했습니다. 반복되는 부상과 그에 따르는 후유증으로 훈련이 힘들어졌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저보다 저를 먼저 포기하는 주변사람들이었습니다.

훈련을 접은 1년의 세월은 피겨 스케이팅이 전부였던 제게 지옥 같은 시간이었고, 저는 죽은 사람 같았습니다. 그래서 강제된 마무리가 아닌 저 스스로 준비하는 마무리를 하고자 너덜너덜한 몸으로 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이 될 대회를 준비했습니다.

목표했던 유니버시아드 대회로 마무리하진 못했지만, 마지막 대회가 된 지난 랭킹대회에 서는 제 설렘과 긴장감은 아마 올림픽 때의 긴장감과 컸으면 컸지, 적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제 제가 선수로 살아오면서 몸소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후배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전해주는 것이 지금 제게 주어진 또 다른 숙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명의 시니어 선수로 성장하는 길, 그 길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구분하는 것.  나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애써야 했던 것들, 국제무대에서 대표로 선다는 자부심 등 말입니다.

▲ 곽민정 선수는 훈련에 훈련, 참 열심히 달려왔다.

웃음과 울음을 함께한, 나의 영원한 지도자, 지현정 코치

지현정 코치님은 저의 시니어 시절, 가장 긴 시간 동안 함께 했고 또 제 마지막을 함께 한 코치 선생님입니다. 걸음마를 시작한 선수부터 유망주, 경쟁력을 갖춘 시니어 선수, 슬럼프를 겪는 선수 등을 두루 지도해오신 코치님으로 앞으로 제가 코치 생활을 하는 데 있어 무궁무진한 배움을 전해주실 분이십니다.

저 역시 지금 막 한 발자국을 뗀 꼬마 코치로서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아이들이 느낄 초조한 마음과 부모님의 심정, 코치들의 애환 등 그 시절에는 몰랐지만,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들을 잘 정돈해서 선수들을 지도하고자 합니다.

물론 기술을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운동선수다움’입니다. 달리 말하면 기술을 대하는 마음일 겁니다. 기술의 발전은 매일 자신의 한계를 넘어야 가능하기에, 기술에 대해 자신을 이기겠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과정에서 최고가 아니면, 절대 결과 역시 최고일 수가 없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최고였던 것은 그 누구도 흠 잡을 수 없었던 최고의 연습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표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어떤 목표도 최고의 과정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시안 트로피, 동계 아시안게임, 올림픽, 참가했던 수많은 대회그중의 최고는…“

모두 당연히 올림픽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제게 가장 특별한 의미가 있는 대회는 동계 아시안게임입니다. 어린 시절 저의 목표는 2014 소치 올림픽이었습니다.

 2010 밴쿠버 올림픽은 가장 혹독한 훈련을 하고 있던 당시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발전을 마친 순간에도 올림픽에 나가게 되었다는 생각보다 실수 없이 잘했다는 기쁨이 먼저 왔을 정도였습니다. 연아 언니와 함께 한 올림픽은 그야말로 시니어를 화려하게 시작할 수 있는 선물이었죠.

저 스스로 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목표달성을 위해 하루하루 계산하고 철저하게 준비했던 대회는 아시안게임이었습니다. 여자 싱글 종목에서 첫 메달을 획득할 기회였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사명감이 컸습니다. 부상에 대해서도 초조했지만, 강훈련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에 밀착 관리와 대회 행동을 위해 부모님은 당시 피겨 선수로는 드물게 개인 트레이너 고용을 결단하셨습니다.

아시안게임 당시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목표한 3위를 했지만, 기술력 좋은 중국 선수들이 뒤를 잇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벌어진 프리 프로그램에서는 보이지 않게 삐걱거림이 있었기에 메달을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곧바로 점수가 발표되었고 동행한 트레이너의 환호를 들었습니다. ‘드디어 됐구나!’하고 안도하는 순간, 울음이 터졌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로서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남는 대회였습니다.

피겨스케이터들 사이에서도 ‘별에서 그녀’, 김연아

피겨스케이팅에 있어 제 멘토는 당연히 김연아 선수입니다. 어린 시절 과천 링크에서 잠깐 같이 훈련하던 시절에는 별세계에서 온 선배로 감히 말도 못 붙였었고, 언니가 캐나다로 간 이후에는 뉴스로만 접할 수 있었던 우상이었습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동반 출전이 확정된 후 언니가 보내준 축하 문자는 제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말도 걸기 어려울 정도로 우상이었던 언니와 함께 훈련하면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언니 자신이 영웅인지도, 스타인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은 겸손함이었습니다.

어린 후배여서 상대해줄까 조심스러웠지만, 언니는 정말 동료 운동선수처럼 진지한 이야기도 같이하고 허물없이 대해주었습니다. 선수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많은 것들을 나눴고, 또 배웠습니다. 이제는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언니, 동생으로 발전한 사이입니다. 언제나 든든한 나의 언니, 김연아 선수. 저의 영원한 멘토입니다.

▲ 스케이트를 벗은 그녀, 그동안 못다 한 대학 생활을 즐기는 새내기 코치다.

지금 있는 인생 2 앞의 오프닝에서…”

선수 시절 내내 응원해주고 아껴주신 분들이 은퇴식을 하라시는 데 어떤 형식으로 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졸업과 대학원 진학 여부에 대해서는 교수님과 의논하고 있습니다. 국제심판 자격 취득을 위해 영어공부도 시작했습니다.

운동선수로서 제가 목표했던 것은 많이 이루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올림픽에도 출전해 좋은 결과를 얻었고, ‘한국 피겨 역사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타이틀도 쟁취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채워지지 않은 욕심도 많습니다. 좌절하고 힘들었던 시간이 길었지만, 또다시 목표를 정하고 달려갈 겁니다. 제 모든 것을 바쳤던 선수 생활이 끝난 지금, 새롭게 맞이하는 현실이 낯선 것도 사실입니다. 때문에 ‘이게 나의 목표다, 꿈이다.’ 정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살았던 지난 시간처럼, 항상 ‘나다움’을 잃지 않는 삶의 자세를 이어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