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가, 재즈로 들어봐
춘향가, 재즈로 들어봐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8.11.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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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창작국악그룹 ‘슬기둥’ 공연, 관객들 “얼쑤”

▲ 21일 구로아트밸리에서 열렸던 슬기둥 공연 실황

활기찬 사운드가 울리며 ‘고구려의 혼’ 연주가 시작되자 무영총 벽화 속 인물들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일제히 춤 추는 듯 했다. 신디사이저와 타악기가 웅장한 스케일로 어우러진 선율은 고구려의 진취적인 기상을 느끼게 해 가슴마저 먹먹하게 했다.

지난 21일 저녁 7시 30분 슬기둥의 공연이 있던 구로아트밸리는 그 어느 때보다 생기로 넘쳐났다. 슬기둥의 창작곡 산도깨비와 소금장수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는 만큼  다양한 관객층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어 관객석을 가득 메우고 우리음악이 들려줄 향연을 기대하며 한껏 들떴다.

서양과 우리나라음악의 단순한 혼합을 추구하지 않고 ‘현 시대의 국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슬기둥. 이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국악그룹으로 ‘퓨전국악’그룹이라는 명명을 지양한다.  우리나라 음악이 지향해 가야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무대를 만들고 있는 슬기둥은 과거 대중음악이었던 우리국악이 현재에는 특정한 계층의 음악으로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이루고 있다.

이날 공연은 관객들의 높은 호응 속에 진행됐다. 판소리 오혜연 씨는 관객들에게 추임새를 넣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릴 것을 요청했고 관객들은 이에 호응, ‘얼쑤!’ ‘잘한다’를 연발하며 무대를 한층 달궜다.

대금주자 한충은 씨의 입담도 또 다른 재미. 그는 몇몇 초등학생들의 귀여운 대답까지 이끌어 내가며 다음 연주곡목들을 친절하게 안내했다. 슬기둥의 관객소통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오늘 연주곡 중 단연 주목받았던 곡은 ‘어?! 사또!!’. 이 곡은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하나인 춘향가 중 ‘어사출두’ 대목을 현대적인 재즈기법으로 편곡한 곡이다. 오혜연씨는 맛깔스런 특유의 목소리로 탐관오리 변사또가 연희를 즐기고 있을 때 장원급제한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출현으로 하자 서로 먼저 도망가려는 사람들의 어수선한 모습을 다이나믹하게 표현했다.  국악의 새로운 진화를 만난 느낌이었다.

눈 덮인 겨울 설악산의 밤을 지새고 동트는 새벽을 맞는 아름다움을 그린 해금 독주곡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는 겨울을 맞는 길목에선 쓸쓸한 마음 한켠을 쓰다듬었다. 이 곡은 원래 무용음악 ‘태양의 집’ 중 한 부분으로 만들어진 음악이었으나 곡의 완성도가 높은데다 슬기둥의 훌륭한 해금연주가 빛을 더하여 독주곡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해금주자 김지희 씨는 신디사이저와 기타의 소편성 반주 위에 고도의 기량으로 해금만의 독특한 음색을 마음껏 뽐내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락 밴드 '백두산'의 멤버 김도균 씨와 함께한 산조환타지는 무대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 악기마다 기량을 뽐내는 독주 연주 릴레이가 펼쳐지는가하면 우리 가락을 연주에는 어색할 것만 같았던 일렉기타에서 뿜어져 나온 깊은 소리가 좌중을 사로잡았다. 특히 김도균씨는 기타를 무대 위에 놓고 발로 연주를 하는 등 전위예술차원의 연주까지 선보여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별달거리와 함께 각 악기의 즉흥성이 최대한 발휘된 신푸리가 신명나게 펼쳐졌다. 휘모리와 능게가락의 풍성함이 관객들을 압도해 곡 연주가 채 끝나지도 전에 여기저기서 앵콜이 터져 나왔다. 앵콜 곡 아리랑으로 아직도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무대의 아쉬운 막은 내려졌고 한바탕 큰 축제를 벌인 것 같은 밤은 흥겨웠다.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