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윤이 만난 아티스트 5>트럼페터 성재창
<박자윤이 만난 아티스트 5>트럼페터 성재창
  • 박자윤 기자
  • 승인 2015.07.21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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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펫은 내가 가질 수 없는 영원한 짝사랑"
▲ 트럼페터 성재창

“트럼펫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트럼페터 성재창에게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이다. 그리고 그는 대답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지만 언제나 노력한 만큼 돌려주지 않는, 내가 가질 수 없는 영원한 짝사랑입니다.” 참으로 아쉽고, 슬프지만, 그가 얼마나 트럼펫을 사랑하고 또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지 돋보이는 답변이었다.

아직은 우리에게 ‘큰 소리’, ‘나팔’ 등 여러 가지 오해로 인식된 악기, 트럼펫. 그리고 성재창은 감성을 깨우는 연주로 클래식 음악계에서 정평이 난지 오래다. 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를 졸업하고 스웨덴 말뫼 음악원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트럼페터’라는 전설적인 연주자, 호칸 하덴베르거와 그의 스승인 보 닐슨을, 그리고 독일 뮌헨 국립 음대에서 역시 세계적인 트럼페터 하네스 로이빈과 토마스 키클레를 사사하며 최고연주자 학위를 취득하였다.

뛰어난 곡 해석과 테크닉, 다채로운 음색으로 제42회 동아 음악 콩쿠르 트럼펫 부분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계속해서 세계무대에 도전하여 제4회 제주 국제 관악 콩쿠르 트럼펫 부분 3위, 제27회 일본 관악기 타악기 콩쿠르 트럼펫 부분 3위에 오르며 명성을 드높였다.

서울 대학교 재학 시절과 유학, 그리고 귀국 후까지 그는 수원 시립 교향악단, 아이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아일랜드), 서울 바로크 합주단, 올림픽 윈드 앙상블, 독일 로스톡 체임버 오케스트라, 국립경찰교향악단, 그리고 KBS 교향악단을 비롯해 인천, 대전, 춘천, 충남, 광주, 목포, 포항, 천안, 전주, 군산시립교향악단 등 우리나라 각지의 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솔로 연주에 대해 인정을 받았다. 성재창은 실내악에도 조예가 깊어, 호칸 하덴베르거가 지휘하는 현대음악 금관 앙상블 단체인 AERO 브라스 앙상블의 일원으로 영국 순회 연주를 했다.

독일 레겐스부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수석과 핀란드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부수석을 역임하고 현재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음악 단체인 카메라타 안티콰와 현대음악 단체인 팀프 앙상블의 단원으로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도전하고 있음과 동시에, 충남 대학교 예술대학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성재창. 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진솔하고 또 성실한 답변으로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트럼페터 성재창 연주장면.

”시작은 대학 입시를 위해, 이제는 트럼펫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는 인생” 

 - 수 많은 악기들 중, 어떻게 '트럼펫'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중학교 시절, 음악반에서 바이올린을 했는데, 그때 이상하게도 바이올린보다는 트럼펫이란 악기에 관심이 갔습니다. 시끄러운 듯하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는 음색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할 당시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트럼펫을 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성적이 좋았기에 음악을 전공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 후 공부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면서, 성적이 수직하강 했습니다. 고민하던 중에,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트럼펫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학업 성적이 떨어졌던 게 오히려 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체계적인 개인교습과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전공생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굉장히 열심히 했습니다.

트럼펫을 비롯한 금관악기는 연주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소리와 음정 그리고 넓은 음역을 갖추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길며, 현악기나 목관 악기와 비교하면 다양한 캐릭터 구사가 가능합니다. 힘찬 팡파르적인 요소, 말러의 교향곡 3번 3악장에 나오는 트럼펫 솔로 같은 서정성, 그리고 스트라빈스키 병사 이야기의 트럼펫 파트에 나오는 기교적인 요소들을 모두 트럼펫만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트럼펫은 굉장히 매력적인 악기입니다.

- 서울대학교, 스웨덴 말뫼 음악원, 그리고 독일 뮌헨 국립 음대 등 세 개의 다른 최고의 학교들을 두루 거치셨습니다. 각기 다른 학교 생활은 어떠셨나요?

부끄러운 말일 수도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제가 트럼펫을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트럼펫이 좋아서가 아니라 대학 진학이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성적으로도 4년제 대학에는 갈 수 있었지만, 저는 더 나은 학교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다 보니 악기가 좋아지고, 지금은 트럼펫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당연히 서울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연습을 했습니다. 열심히 해서 입학을 했는데, 학교생활은 합격의 기쁨보다 비관적이었습니다. 제 실력이 같이 들어온 친구들보다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악보를 읽는 능력이 부족하여, 합주하면 제가 연주해야 할 부분이 도드라지게 들려 모두의 앞에서 참담함을 느꼈던 적도 있습니다.

친구들은 예고 출신들이 많았는데, 지방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온 저는 적응하기가 오래 걸렸습니다. 1학년을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입대를 선택했습니다. 제대하고는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고, 능동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연습도 많이 했습니다. 실력이 향상되니 합주도 재미있어지고, 교수님, 선·후배, 그리고 친구들에로부터 인정도 받으니, 학교 다니는 게 재미있어졌습니다. 이렇게 서울대에서의 마지막 학년쯤에는 연주를 통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저는 스승님 복이 참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인생에서 필요한 순간마다 좋은 스승님들을 뵐 수 있었습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는 안희찬 (추계예술대학 교수) 선생님을 만나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고, 슬럼프를 겪을 때는 우리나라 재즈 1세대 원로이신 최선배 선생님을 만나서 극복할 수 있었고, 유학 중에는 트럼펫 테크닉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할 때, 기본기에 관해서는 최고의 명교수 중 한 분인 보 닐슨 (스웨덴 말뫼 음악원)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또한, 트럼펫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할 때는 호칸 하덴버거라는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를 만나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직장에 취직할 때쯤에는 하네스 로이빈 (독일 뮌헨 음대 /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수석)이라는 최고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를 만나서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분 한분 참 소중한 인연들이고, 이런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로서 실력과 인성은 사회적 공동체에서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할 가지 덕목

▲ 트럼페터 성재창

- '현존하는 최고의 트럼페터' 호칸 하덴베르거를 비롯해 수 많은 스승님을 거쳐 갔습니다. 성재창 선생님의 음악세계를 빛내주는 멘토는 어떤 분이십니까?

트럼펫을 시작하고 저의 우상은 단연 호칸 하덴베르거 교수님이었습니다. 많은 좋은 트럼펫 연주자들이 있지만, 특별히 호칸 교수님의 소리와 스타일, 그리고 음악적 해석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음반으로만 들을 수 있었는데, 2003년에 호칸 교수님께서 교수 재직 중이시던 스웨덴 말뫼 음악원에 진학하면서 드디어 저의 우상에게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스웨덴으로 그것도 말뫼라는 작은 도시로 음악 유학을 가는 사람은 없는데, 저는 당시 오로지 호칸 교수님만을 바라보고 갔습니다. 2년 동안 참 많이 배웠으며, 굉장히 엄하게 지도하셨는데, 그의 영향 때문인지 저도 엄하게 가르치는 지도자가 된 것 같습니다.

연주자로서 호칸 하덴베르거가 교수님이 저의 멘토라면, 교육자의 길을 함께 가고 있는 지금은 각 음악 대학에서 학생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학생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시는 많은 교수님이 저의 멘토이십니다. 서울대의 김영률, 최경환 교수님, 추계예술대학의 김용배, 안희찬 교수님,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이석준 교수님 같은 분들처럼 인성과 실력을 갖춘 교육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충남대학교 음악대학의 부교수로서 후학 양성을 하고 계십니다. 예술가로서 가장 먼저 지녀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며, 어떠한 교육 철학으로 제자들을 대하시나요?

저는 두 가지를 중요시하게 봅니다.

첫 번째는 음악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상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력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고, 고통을 참아내는 인내심도 필요합니다. 실력이란 것이, 아쉽지만 연습한다고 바로바로 나타나지 않고, 쌓이고 쌓여서 내 것이 되기 때문에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많은 학생이 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득음”의 순간까지 버틸 때, 실력과 내공이 쌓아져 갑니다. 그 순간까지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용기를 주는 것이 저의 역할인 거 같습니다.

두 번째는, 인성입니다. 실력과 더불어서 사회적 공동체에서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할 덕목이 인성인데, 저도 학생들에게 인성을 가르치기에는 인문학적 지식과 경험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인성교육은 아직 잘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인격적 수양을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트럼펫 교육중인 성재창.

쉬운 레퍼토리를 멋지게 연주해 관객들이 트럼펫이라는 악기의 매력을 느낄 있게 하고파

- 앞으로의 연주 활동 계획을 소개해주세요.

외국에서는 오케스트라를 위주로 활동을 했는데, 한국에서는 솔로 레퍼토리 연주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트럼펫이란 악기가 클래식 음악에서는 비주류 악기입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악기의 한계도 있지만, 위대한 작곡가가 만든 위대한 곡이 많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50년 이후의 작품들이 많은데 20세기~21세기의 곡들이 그렇듯, 관객들이 잘 아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 친숙한 클래식 장르와 비교하면 너무 난해해서 관객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관객들이 그런 곡들에 관해 관심이 없다면, 차라리 좀 더 쉬운 레퍼토리를 멋지게 연주해서 관객들이 트럼펫이란 악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꼭 피아노 반주만이 아닌, 기타나 엘렉톤 이란 악기와 연주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어 보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고 있습니다. 또한, 현대 음악과 바로크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서 국내의 대표적인 단체들인 팀프 (Tong-Young Music Festival) 앙상블과 카메라타 안티콰의 연주에도 지속해서 참여하며, 연주 계획이 있습니다.

- 트럼페터 성재창. 평생의 목표와 꿈은 무엇인가요?

저의 목표는 65살, 제가 대학교에서 정년퇴직하는 순간까지 좋은 몸 상태로 트럼펫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꾸준한 자기 관리와 많은 행운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오케스트라 생활을 할 때, 거기도 정년이 65세였는데 (한국은 55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거의 완벽한 상태로 연주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저도 저렇게 나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저의 꿈은, 장르가 클래식이든, 재즈든, OST이든 상관 없이, 척 맨지오니의 “Feel so Good” 같은 그런 곡을, 역사에 남을만한 트럼펫 연주곡을 작곡하는 것입니다. 꿈은 꿈이지만 이룰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