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시인의 냉철한 작가 정신과 표절 논란 뒤에 숨은 신경숙
대시인의 냉철한 작가 정신과 표절 논란 뒤에 숨은 신경숙
  • 강다연기자
  • 승인 2015.07.21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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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복제마저 용납하지 않는 작가 vs 창피를 모르는 몸
▲ 김남조 시인

시인 김남조는 최근 ‘예술의 기쁨’ 개관식 겸 ‘제29회 김세중조각상’시상식에서, “나는 60년 동안 900편의 시를 썼지만, 그 어느 한 구절도 지금에 다시 쓰면 안 된다”며, “남의 작품을 따다 쓸 때 ‘표절’이라 해서 그의 문학은 끝나고, 세상에서 말하는 절도행위에 들어가는 것이다. 자기 글이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발언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작가로서, 이 사태를 묵과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 공식 태도를 밝힌 것이다.

자기복제마저 용납하지 않는 강직한 작가 정신을 보임으로써 후배 작가들의 본보기가 될법한 발언이다. 다만, 신경숙이 그의 말을 새겨들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기쁨을 아는 몸”을 표절했으니 이제 “부끄러움을 아는 몸”이 되어야 하는 게 맞는 순서가 아닌가.

침묵하는 문화권력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은 지난 15일,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를 주제로 끝장 토론회를 열었으나 '창비'와 '문학동네'는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문학동네'는 신경숙의 작품을 가장 많이 출판해 낸 곳이다. 지난 6월, 신경숙의 표절 행위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낸 비평가들에게 사전 협의도 없이 지상 좌담회를 제안했다 거절당한 후 더이상 성찰이나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어, 지상 좌담회 제안은 역시 “정치적 쇼”일 뿐이었다는 냉소만 키웠다.

신경숙과 창비, 문학동네의 반성을 촉구하는 문학계

▲ 이명원 평론가

하지만 문학계 반응은 직설적이고, 날 섰다. 신경숙이 인기 작가인 만큼 표절 시비를 더 확실히 가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신경숙이) 작가 개인으로서 표절을 인정하고 절필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신경숙의 작품이 이미 30여 개국에 번역돼 있는 만큼, 그의 표절 문제를 묵인하는 건 한국 문학의 수준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이어 조정래 작가도 "운동선수만 은퇴가 있는 게 아니라, 예술가도 '아 도저히 능력이 안 되겠다' 싶으면 깨끗이 돌아서야 한다”며 신경숙의 절필을 촉구했다.

가려져 있던 표절 의혹

신경숙의 단편 '전설'의 일부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번역본을 표절했다는 이응준의 주장은, 많은 이들이 의혹이 아닌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누가 썼는지도 기억 안 나는 글을 몇 문장이나 거의 그대로 외우고 있기란 쉽지 않다. 이후 ‘엄마를 부탁해’(오길순의 ‘사모곡’ 표절 의혹), ’딸기밭’ (안승준의 ‘살아는 있는 것이오’ 표절 의혹),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표절 의혹), ‘작별인사’( 마루야마 겐지 ‘물의 가족’ 표절 의혹)도 네티즌들의 날카로운 레이더에 걸려, 표절 논란이 더이상 묻히지 않고 만천하에 공개됐다.

하지만 신경숙의 글을 좋아했던 독자들의 배신감과 분노를 읽지 못하고, '전설'을 출판한 ‘창비’는 "몇몇 유사성을 근거로 표절 운운은 문제가 있다.", “('전설'과 '우국' 중에) 굳이 따진다면 신경숙 작가가 오히려 더 낫다”는 황당한 입장을 발표해 환멸을 키웠다. 진실을 철저히 조사하기보단, 출판사의 매출을 지탱하는 스타 작가를 두둔하는 쪽을 택하며 “이미 과거의 ‘창비’가 아니다”, “‘창비’가 아니라 ‘창피’다”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었다.

작가와 출판사의 자정 능력을 믿는다

신경숙의 표절 논란을 이대로 잠잠해지지 않길 바란다. 문학계 대선배들과 평론가들의 날카로운 비판의 소리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표절은 범죄 행위이며, 표절로써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도 독자들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창비'와 '문학동네'뿐 아니라 다른 출판사와 작가들도 표절을 방지하고 근절할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길 바란다. 독자들은 조금 부족하고 수수해도 다른 누군가의 문장을 베낀 것이 아니라, 그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개성 있는 글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