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퇴마: 무녀굴’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는 왜 귀신이 되었을까?
[칼럼]‘퇴마: 무녀굴’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는 왜 귀신이 되었을까?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8.1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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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쫓는 게 다가 아니라 귀신의 한도 헤아려야 하는 공포

* 이 글에는 영화의 일부 내용이 있습니다.

‘퇴마: 무녀굴’은 제목만 유심히 살펴보아도 ‘먹고 들어가는 영화’다. 우선 제목 앞의 단어 ‘퇴마’만 보면 이 영화가 엑소시즘, 귀신을 퇴마하는 구마(驅魔)의식과 연관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목 뒤의 ‘무녀굴’을 보면 어떤가. ‘무녀’와 ‘굴’이 연관된 합성어라는 걸 알 수 있다. 귀신을 쫓는 퇴마의식이 무녀의 굴과 연관되어 있음을 영화를 보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퇴마: 무녀굴’ 의 한 장면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의 고향’ 류의 전설에 등장하는 귀신을 보면 몽달귀 같은 남자귀신보다는 처녀귀신처럼 여성이 한을 맺고 죽은 다음에 귀신이 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조선시대처럼 옛날에는 여성이 기득권의 지위에 오르는 사례라고는 양반집 규수로 태어나거나, 양반과 혼인을 맺음으로 여성이 신분이 올라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득권이 될 확률이 배제되었다. 기득권에서 배제된 소외된 계층에 설 확률이 높은 성이 남성보다는 여성이다 보니 억울한 한을 품은 귀신의 젠더(性) 역시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다는 건 우리네 전설이 이야기해 주고 있다.

서양이라고 동양 혹은 한국과 차별화하는 건 아니다. 중세시대부터 ‘마녀사냥’이라는 용어는 존재하지만 ‘마남(男)사냥’이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세 시대 사회적 부조리를 사회적 양자의 희생으로 무마시키기 위해, 혹은 통치 계급이 대중에게 공포를 각인하기 위해 희생자를 물색하다 보면 그 희생자가 남자보다는 여성이 만만한 게 사실이었다. 악마를 부르는 주술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정치적인 혹은 사회적인 희생양을 찾기 위해서 아무 죄 없는 무고한 여성이 마녀라는 주홍글씨가 덧입혀져 억울한 죽음을 당하기 일쑤였다.

‘퇴마: 무녀굴’은 분명 퇴마사가 사람의 몸에 씌인 귀신을 내쫓는 구마 영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귀신을 쫓는 ‘퇴마’가 왜 ‘무녀굴’과 연관되어 있는가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제목 뒤의 무녀굴은 ‘한’(恨)의 정서와 연관되어 있다. 퇴마사가 내쫓아야 할 귀신이 ‘주온’처럼 이유 없이 사람을 괴롭히는 악귀가 아니라 미처 알지 못하는 한의 정서와 연관된 사연이 깃들여 있다는 이야기다.

▲ ‘퇴마: 무녀굴’의 한 장면

그렇다면 귀신 들린 금주(유선)나 금주를 귀신의 빙의로부터 구해야 할 진명(김성균)이 모르는 한이 깃들인 사연은 대체 무얼까. 제주 4.3 사건을 보면 북한의 사주를 받아 폭동을 일으킨 폭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당한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내포한다.

다시 ‘퇴마: 무녀굴’로 되돌아가 보자. 제주도에서 일어난 과거의 사연에서 귀신이 될 만큼 한이 맺히는 주체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피해를 당한 여성은 빨갱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북한군에게 도움을 준 부역을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을 토벌하는 토벌대에 의해 단지 희생자의 젠더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몹쓸 짓을 당한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몹쓸 짓을 한 가해자들, 북한군 토벌대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빨갱이 부역자로 의심되는 여성을 건드렸기에 이들은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활보한다.

‘무녀굴’의 사연에는 여성이 마녀가 될 수밖에 없는 억울한 한의 정서가 깃들여있다.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이나 제재를 받지 않는 상황임에도 피해자의 한을 풀어줄 정치적, 합법적인 신고 혹은 형사 고발은 피해자의 주위에 부재한다. 피해자의 억울함을 위무해줄 합법적인 형사 고발 조치가 전무한 상황에서는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의 한이 샤머니즘이라는 초자연적 탈출구를 통해 구제받을 수밖에 없다. 힘 있는 남성 가해자를 응징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샤머니즘이라는 초자연적 도움을 받는 상황에서 그동안 응축된 한의 정서와 결합하고 폭발시키는 게 ‘무녀굴’의 사연이 되는 것이다.

▲‘퇴마: 무녀굴’ 의 한 장면

‘퇴마: 무녀굴’은 진명이 귀신을 내쫓는 게 다가 아니라 귀신이 어떻게 원한을 축적했으며, 대를 이은 귀신의 원한까지 진명이 풀어주어야 하는 두 가지의 과제를 떠안는 영화다. 귀신 들린 금주도 귀신의 빙의로부터 구해야 하면서, 동시에 금주의 몸에 침투한 귀신의 한도 풀어주어야 하는 이중의 노고를 진명이 떠안는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퇴마: 무녀굴’은 귀신을 내쫓는 구마 의식이 다가 아니라, 귀신이 사람으로 있었던 생전의 가해자와 피해자 메커니즘,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의 그늘이라는 맥락까지 살펴서 관찰할 가치가 있는 공포영화다. 이런 맥락으로 영화를 관찰하노라면 전설 가운데서 여자 귀신이 왜 그토록 많은가 하는, 혹은 마녀사냥의 희생자들 젠더에서 왜 유독 여성이 희생양이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수긍이 갈 것이다. 8월 20일 게봉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