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으로 위장된 가면- DMZ를 다녀와서
녹색으로 위장된 가면- DMZ를 다녀와서
  • 조각가 박상희
  • 승인 2015.08.20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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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분단 70년, 임진강 문화를 찾아 떠난 시간여행
▲필자 조각가 박상희

녹색의 비무장지대

시간이 멈춘 듯 바람도 없었다.
녹색의 풍경은 마치 액자 속의 그림처럼 움직이는 것 별로 없이 평화로웠고, 임진강은 그 옆으로 둥그렇게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멀지않은 곳에 간간이 무대 위의 목각인형처럼 북한 주민 몇몇이 조그맣게 보였다. 우리의 민족, 이웃인 그들이 우리에게 생소한 모습으로 보여 지는 것이 슬펐고 그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전쟁 없는 세계를 꿈꾸는 평화주의자들의 결성체인 독일의 녹색당이나 자연보호와 핵개발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인 그린피스(Green Peace) 에도 녹색이 사용된다.
그렇다. 녹색은 평화와 생명을 상징하는 색이다.

그러한 녹색으로 우리의 시야를 꽉 채운 이 곳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있는 분단의 현장, 비무장지대, DMZ라니. 그리고 촬영금지.

녹색으로 위장된 그 밑에 감춰진 총구는 야수의 눈처럼 24시간 상대를 겨누고 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언제든 서로에게 총질을 해댈 수 있다는 것의 반증이 아닌가?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녹색의 비무장지대에서 초목과 고라니 등 동식물은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나 상대측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나무마저도 베어져야하고 숲이 태워져야하는 결코 평화롭지 않은 곳이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로 만들어진 완충의 공간이라지만 그곳은 결코 평화를 잉태하는 곳이 아니다.

▲태풍전망대 앞에서 이번 DMZ 진강 인문학 투어 동행자이 기념촬영을 했다.

그 녹색의 땅 밑에 매설된 지뢰만도 최소 200만개 이상으로 추정 되며 마치 서로가 힘을 기르는 동안 순진한 표정으로 잠시 대기 하고 있는 곳 같은 생각이 들었다. 2015년 8월1일, 북한을 최근접으로 관찰할 수 있는 태풍전망대에서 비무장지대는 내게 그렇게 보였다.

그 곳을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8월 4일 북한군의 지뢰도발로 인해 우리 측 병사, 2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는 1953년 7월 27일 이후 붉은 피로 젖은 땅이 마르지 않은 채로  ‘휴전’ 이라는 푸른 잎으로 덮여져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 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국의 땅에서 산화한 영혼들

근처에 있는 허브빌리지에서 허브의 향과 꽃들의 아름다움으로 우울했던 마음을 달래고, 임진강 적벽을 거쳐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유엔군 화장장을 찾았다. 돌과 시멘트로 급하게 지어 진  화장장은 6.25 당시 이 지역 서부전선 전투에서 죽은 수많은 유엔군 병사들을  화장했던 곳이다.

▲UN군 화장터

이곳은 그 당시 고지 쟁탈전이 얼마나 격렬했었던가를 쓸쓸하게 증거하고 있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였을 그 젊은 이국의 영혼들은 동방의 멀고도 작은 나라에 와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웠고, 이곳에서 그들의 차갑게 식은 육신들은 불태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흔적은 우거진 덤불숲에서 무너져가고 있다.

숭고한 유엔군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서도 이곳을 원형을 훼손하지 않은 채 좀 더 정리하고 보존해서 성역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고구려의 유적인 당포 성을 거쳐 숭의전을 찾았다.

과거의 고려와 현재의 조선

숭의전은 고려 태조인 왕건과 혜종, 성종, 원종 등의 위패를 모시고 15명의 고려충신들의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 왕조가 고려유민을 달래기 위한 정책으로써 지은 것이라 하나 조선 왕들의 능과 유적들에 비하면 고려왕들의 능과 유적들은 참으로 초라하다.

▲고려왕조의 위패와 충신들을 모신 숭의전 앞에서 참석자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나의 작업실이 강화도에 있는 관계로 고려왕릉 여러 곳을 가 본 적 있다. 남한에 있는 5기의 고려 왕릉 중 고종의 홍릉과 석릉, 곤릉, 가릉 4개가 강화도에 있다.

이 중 고종의 홍릉은  비록 정리가 돼있으나 그 왕릉의 규모나  수준이 재벌가의 산소 반에도 미치지 못하다. 더욱이 다른 능들은 가는 길도 좁고 잡목이 우거져 찾기도 어렵거니와 작은 묘석은 깨지고 봉분이 흘러내려 왕릉과 왕비의 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조선의 능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될 정도로 잘 보전, 관리돼있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던가?

숭의전을 몇 배나 확대한 듯한 널찍한 조선의 종묘와 견줘볼 때 숭의전의 유래를 재미있게 얘기해 준 안내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고려 또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일진데 지난 역사를 대하는 후손들과 정책에 대하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저녁에 이 행사를 주최한 DMZ 관광주식회사와  주관한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대표, 최진용 전 의정부 예술의 전당 사장 , 이민희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부회장, 차재경 세종대왕기념관 관장, 50+KOREAN 유명자 이사 등, 30여명의 문화예술인등과 함께 즐거웠던 담소와 DMZ 인근의 백학면에 있는 평화교육관의 깨끗하고 편한 잠자리로 인해 첫 날의 일정을 기분 좋게 마무리 했다.

고랑포구의 신화

아침식사로 육개장을 맛있게 먹고 일명 1. 21. 김신조 루트라고 하는 북한 간첩 침투로를 방문하였다. 1968년 1월 17일 개성을 출발한 김신조 일당 31명이 휴전선 철망을 자르고 국군 복장을 한 채 침투하는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이 있었다.

▲김신조 루트

조각가의 입장에서 보기엔 조금 미흡하나 당시의 남북 간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어서 시원한 여름 소나기를 맞으며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 왕릉을 찾았다. 이곳을 찾기 전까지는 신라의 왕릉이 경주가 아닌 연천군, 이곳에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다.
그래서 신선한 느낌으로 보았고 다행히 깨끗이 관리가 돼있었다.

소나기가 어느새 그치고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근처의 고랑 포구를 찾았다.
고랑 포구는 일제 강점기까지 임진강 최대의 번창했던 포구로서 대규모의 저잣거리와 화신백화점의 분점까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하나 6. 25 전쟁 통에 지금은 거의 밭만 남았을 뿐 건물의 흔적도 없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창조를 위한 파괴? 이는 인문학적인 발상이거나 예술에 있어서나 가능한 것이지. 어떠한 목적으로도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는 없는 것이고 어떠한 살인이나 전쟁도 신의 이름을 빙자하거나 그 정당한 명분을 갖  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작금의 과학의 발전은 대부분 군사목적에 의한 결과물이다.
인류문명이 아무리 진보되었다한들 그것이 생명과 평화를 희생으로 한다면 그것은 결국 인간의 탐욕과 제국주의의 땅 따먹기 놀이일 뿐이지 않는가? 그런데 이곳이 국립극단 단장을 지낸 연극인 정상철 선생이 1974년 젊은 시절에 공연했던 ‘고랑포구의 신화’라는 연극의 배경지로,  6.25의 아픈 현대사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의 배우에게 직접 그 이야기를 듣는 것도 상당한 재미가 있었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릉. 연천군에 소재해 있다.

회색으로 흐르는 임진강

이어서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선생의 묘지를 둘러본 후 마지막 일정인 파주 통일동산의 오두산 전망대에서 임진강과 건너편의 북한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천 여 년 전,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삼국시대부터 뺏고 뺏기는 쟁탈전이 벌어 졌던 임진강!
광복 후 새로운 권력과 전쟁으로 인해 피로 물들었던 임진강이 지금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회색으로 흐르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의 기적과 그 파티에 가려 속살의 아픔을 감춘 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임진강!
수 천 수 만년을 그렇게 흘러왔듯, 광기와 야만의 시대를 거쳐 앞으로도 민초들의 소망과는 관계없이 임진강은 그렇게 말없이 흐르기만 할 것인가?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1박 2일 일정의 DMZ-비무장지대와 근방의 여러 문화유적지 답사를 하며 우리가 그동안 몰랐거나 등한시했던 경기북부의 새로운 유적지를 알게 된 것은 보람이었다.

특히 비무장지대라는 분단국가로서의 특수한 이데올로기적 상황을 이곳 주변의 선사이후의 역사와 연계시켜 스토리를 찾아 더 적극적으로 개발한다면 세계적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흐르면서도 흐르지 않는 듯 보이는 저 임진강을 바라보면서 조각가로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연인으로서 진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지점에 와있고 어떠해야 하는가? 비무장지대라는 녹색 가면을 벗어 던지고, 언제쯤에야 밝고 아름다운 남북한의 진정한 민낯을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