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지휘자 이영칠②] "머리 아닌 가슴으로 지휘"
[인터뷰-지휘자 이영칠②] "머리 아닌 가슴으로 지휘"
  • 인터뷰:이은영 편집국장,정리:강다연 기자
  • 승인 2015.08.2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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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코스 밟지 않은 '아웃사이더'지만 한국인만의 정서와 음악성으로 유럽 관객에 어필해

[1편에 이어]

▲ 지휘자 이영칠

동유럽에서 주로 활약하는 지휘자 이영칠이 지난 7월, 국내 오케스트라를 처음으로 지휘했다. 창원시립교향악단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연주를 마치고 잠시 국내에 체류 중인 그에게,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낸 소감과 함께 음악 이야기를 청했다. 두뇌 회전만큼이나 말이 빠른 그는, 짧은 순간에도 계속 화제를 옮기며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냈다. 우선, 서양에서 클래식하는 동양인에게 선천적으로 부과되는 페널티를 업고도 동유럽에서 인정받는 지휘자가 된 과정과 비결부터 들어봤다.

-많은 유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는데 왜 상임직을 맡지 않는가?
나도, 소피아 필도 내가 상임 지휘자가 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재정을 책임져야 한다. 내가 국내에서 상임이 됐다면 오케스트라의 경제를 위해 대기업 임원들을 만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동유럽에선 그러기 어렵다. 티켓 판매로만 운영되는 오케스트라는 전 세계에서 몇 군데 없다. 상임지휘자는 협찬이나 후원을 받기 위해 연주 말고도 비공식적인 일들을 수행해야 한다. 한 번 투어를 하는데 몇십 억 씩 투자받는 힘은, 음악계에선 굉장히 대단한 거다. 소피아 필을 운영하려면 정치,경제 등등의 일을 해야 하는데 국적이 다른 나에게 상임을 준다는게 간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 된다.

-연주 실력만으로도 해외에서 협찬이나 후원을 받을 수는 없나?
상임 지휘자는 그 나라, 그 도시의 상징이다. 지휘자 출신국의 지원도 필요하다.

일본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보스톤 심포니 예술감독으로 30년간 재임) 어떻게 상임 지휘자가 됐겠나. 그 지휘자의 실력도 중요 하지만, 일본과 소니에서 후원해준 덕에 된 것도 있다. 또 지금 뉴욕 필의 상임 지휘자가 일본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문화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뉴욕 필이 파산 위기에 재정적 지원이 필요할때 일본 기업의 후원으로 뉴욕 필에 일본 지휘자를 내정하게 된 계기도 그 일환이다. 

베를린 필이 '봄의 제전', 그 스케일 큰 곡을 지휘자 없이 눈 감고도 연주한다고 단원들은 얘기 한다. 그런 베를린 필에 지휘자는 매우 중요 하지만, 메이저 오케스트라를 어떤 지휘자가 지휘해도 연주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다만 단원들의 경제나 재정 문제가 더 중요하다. 

예전엔 단원들에게 권한이 없었지만, 현재는 아무리 실력과 권력을 동원해도 마지막 결정권은 단원들에게 있다. 사이먼 래틀이 다니엘 바렌보임을 겨루어 단원들에게 친절하고 경제권이 더 좋은 사이먼 레틀이 선정된건 다 아는 일화이다 

▲ 지휘자 이영칠 (사진제공=메노뮤직)

“지휘자가 먼저 열정을 보여야 단원들이 따라온다”

-지휘자로서 함께 연주하는 단원들에 대한 생각을 듣고싶다. 지금 서울시향은 오디션을 통해 의무적으로 1년에 단원 5%를 해고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게 있는지 몰랐다. 만약 다 잘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래서 연주의 안정화를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음악계에서 꾸준히 나온다.
못하는 사람, 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해고하는 방법으로 베를린 필을 예로 들겠다. 일주일에 연주회가 세 번이고, 리허설도 세 번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면, 싫어도 나갈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세 번은 힘들다. 매일 다른 곡 하고, 연습도 매일 하고. 그렇게 두 달만 하면, 하기 싫은 사람들은 다 그만두지 않을까... 

음악은 기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므로 시스템을 바꾸어 새로운 레퍼토리를 지속적으로 자주 한다면 단원들은 자연스럽게 처음 하는 곡은 연습을 통해 습득하게 되므로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이런 합리적인 방법으로 하고 싶은 사람만 남아서 하게 되는거 어떨지??

"제일 중요한 건 단원들과의 소통"

내가 창원에서 지휘한 동영상을 보면, 모든 단원이 열적적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볼수있다. 지휘자가 열정적으로, 열심히 하면 단원들은 따라오게 돼 있다. 지휘자의 역할이 그런 거다. 단원과 지휘자는 하나이며, 엄격한 잣대로 단원들을 지배하려고 해서도 요즘은 어려울거같다. 그러면 누가 연습을 하고 싶어 하겠나? 제일 중요한 건, 단원들과 소통하고 단원들과 함께 연주하는 순간을 즐기게 만들고, 그들의 권익을 신장 시킨다면, 연주력이 좋아지고 음악을 듣는 관객도 서로 감동하는거라 느껴진다. 내가 창원시향과 연주한 동영상을 보면, 관객이 모두 집중해서 우리의 음악을 듣고 있다는걸 느낄수있다.

▲ 지휘자 이영칠

-해외 활동을 그렇게 많이 하려면 관리가 필요할 것 같다. 소속사가 있는지?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돼 있다. 디렉터나 아티스트의 초청으로 지휘하러 가는 경우도 있지만, 회사에서도 연주 계약이 들어온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일본에 dvd를 보냈는데 일본 악장과 관계자가 보고 악장의 책임으로 나를 초청해 연주하게 된 적도 있다.

“상임 지휘자로 선정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치와 경제력이다”

예술은 경제력과 비례한다. 경제력이 없으면 많은 시간이 들어야 한다.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지원이 없었다면 그렇게 될 수 없었다. 지금은 러시아의 경제력도 무시 못 한다. 거기에 시발점이 된 게 중국 자본이다. 중국과 일본은 문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어서 전폭적으로 지원과 투자를 단계별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문화 강국으로 도약을 앞두고 있다. 클래식의 위상은 어떨 것 같나? 
클래식은 특히 유럽에서. 오피니언 리더들이 즐기는 음악으로 그들만의 사치처럼 느껴졌지만, 현재는 전세계인들이 듣는 평범한 음악이 되었다. 클래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을 때의 효과를 생각해 보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해 줄 것이다. 국내 대기업이 오케스트라를 만든다면 그 지부가 전 세계에 많을 텐데, 브랜드 투어를 하면 나라 홍보도 되고, 브랜드 홍보도 된다. 그들은 지금 당장의 이익 보다 브랜드나 인식개선에 클래식이라는 문화를 불어넣는다면 쉽게 받아들여지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전공을 완전히 바꿔서 새로운 시작을 했기에 힘들 상황도 많았을 것 같다.
한국에선 나를 다른 지휘자와 자주 비교하는데, 그들은 지휘 코스를 밟았고. 음악가 집안에, 어릴 때부터 악기를 배웠다. 난 고3 때 호른이라는 관악기를 시작했다. 예고도 안 나왔고, 음악가 집안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아웃사이더다. 19살에 음악을 시작한 것도 그렇고, 호른 하다 하루 아침에 청천병력과 같은 음악을 할 수없는 상황에 다른 음악의 기회를 찾기위해 지휘를 했는데 너무도 내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일이 되었다. 가끔, 내 일이지만 믿기지 않는다. 지휘를 그만두려고 한 적도 많았다. 예를 들어 폴란드에서 ‘전람회의 그림’ 연주 제의를 받았는데 누가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너무 힘들었다. 처자식은 한국에 있는데 ‘더 늦기 전에 무슨 사업이라도 하든지 해야지,’ 생각도 했지만, 이미 이도 저도 아닌 나이였다. 폴란드에서도 인터뷰하면 항상 이런 질문을 한다, “바쁜 일정에 어떻게 곡을 다 익히느냐”고. 난 음악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익히고 가슴으로 연주한다. 

▲ 지휘자 이영칠 (사진제공=메노뮤직)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간략히 말해달라.
9월에 불가리아 플로브디프에서 ‘까르미나 부라나’ 야외 음악회가 있다. 그 도시에 로마 시대 양식 건물이 많은데, 그중 유명한 경기장에서 한다. 그리고 음반 녹음과 유럽 및 미국 투어가 예정돼 있다.

-한국 연주는 언제 또 있나?
당장 잡혀있는 계획은 없다. 뜻깊은 연주회 라면 난 재능 봉사도 할 수 있다.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3개월 동안 음악을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방송하는데, 거기서 지휘해 달라고 제의 받았다. “그럼 3개월 후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고 “그들이 계속 음악을 할 때까지 후원 한다면 나도 기꺼이 출연할 것이며, 방송을 위한 출연은 안 하겠다”고 말했다. 그 이후 연락은 없었다.

이영칠 지휘자는 클래식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고상한 척하거나 점잔 빼지 않았다. 
예술이 지속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경제력이라는 것을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고들 말하는데, 난 한국에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도 국내 예술가들, 특히 인지도 큰 몇몇 소수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평범한 단원과 솔리스트의 처우를 걱정했고, 도울 길을 찾고 싶어 했다. 외국에서 활동을 계속하든, 언젠가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오든 간에, 그의 희망이 이뤄지길 바란다. [끝]

지휘자 이영칠은 미국 매네스 음악대학(Mannes College of Music)에서 학사·석사 학위, 뉴욕 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후 불가리아 소피아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새로운 해석과 탁월한 표현으로 200회 이상의 유럽 연주회에서 언론과 비평가들에게 호평받으며 동양인 최초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종신 객원지휘자에 임명된 것을 비롯, 2009년 7월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초청 공연, 2009년 7월 일본 NHK심포니 “차세대 거장 지휘자 프로그램” 초청 연주(도쿄 Orchard Hall), 2010년 1월 KBS 수요기획 “지휘자 이영칠 동유럽 클래식 영토 확장기” 방영, 2010년 11월 핀란드 Jyvaskyla(자바스쿨라) 심포니 오케스트라, 2010년 12월 터키 이즈미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2011년 1월 도쿄 뉴 시티 심포니오케스트라, 2011년 4월 러시아 모스크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 (한국인 지휘자 최초로 차이콥스키 콘서트 홀에서 지휘) 등을 맡아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3년 1월에는 독일 함부르크 심포니, 소피아 필하모닉, 모스크바 필하모닉 등 세 군데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를 지휘하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이영칠 지휘자는 연주회 프로그램에 한국 음악과 한국 음악 작곡가의 음악을 포함시켜, 유럽에 한국 음악을 알리는 데도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