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한·이태리 조각전을 통해 본 한국조각관과 역사, 자연과 문명의 접점에서 2
[윤진섭의 비평프리즘]한·이태리 조각전을 통해 본 한국조각관과 역사, 자연과 문명의 접점에서 2
  • 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15.08.2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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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대학 명예교수

{지난호에 이어]

2015 밀라노엑스포 기념으로  지난 7월 16일부터 8월 1일까지 밀라노 페르마넨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늑대와 호랑이>: 한 이태리 현대조각전에 참가하는 한국의 작가들 중에서 박석원(1942-  ), 심문섭(1943-  ), 김영원(1947-  )등은 앞서 언급한 작가들의 제자들로서 현재 한국 조각계의 중진에 속한다.

박석원과 심문섭은 1970년대 초반에 한국미술사에서 유명한 전위그룹인 <A.G>의 멤버로 활동한 바 있으며, 김영원은 구상조각의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이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의 거장인 백남준(1932-2006)과 일본에서 조각을 전공한 테라코타 조각의 거장 권진규(1922-1973), 일본 모노하(Monoha)의 이론가 겸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우환(1936-  ) 등은 이들보다 윗세대이다.

박헌열(1955-  ), 한진섭(1956-  ), 이용덕(1956-  ) 등은 한국 조각계의 중견작가들로서 전후세대에 속한다. 이들은 대학에서 모더니즘 조각의 교육을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박헌열과 한진섭은 1980년대에 이태리의 카라라에서 조각을 공부하는 한편, 유럽의 많은 국제조각심포지엄에 참가, 수상을 한 바 있다.

강애란(1960-  ), 박선기(1966-  ), 박승모(1969-  ), 이환권(1974-  ) 등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체기인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이다. 1970년대가 군부통치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억압을 받은 시대였다면, 1980년대 중반은 한국사회에 민주화 투쟁이 전개된 시기였다. 전자는 예술의 현실참여를 주장한 ‘민중미술(Minjung Art)’로, 후자는 다원주의적인 입장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표출되었다.

1980년대 초반의 한국사회는 정부가 단행한 해외여행자유화 조치와 함께 컬러 T.V의 방영, 대중소비시대의 도래 등 70년대와는 현격히 다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러한 사회변동 요인은 자연스럽게 조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때마침 찾아온 국제화와 개방화의 물결은 ‘88서울 올림픽’을 기념한 국제조각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또한 1993년 지방자치제의 확산과 맞물려 올림픽조각공원을 비롯하여 모란미술관, 문신미술관 등 조각전문 미술관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현대조각은 매체의 다변화와 함께 급격한 퓨전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신매체의 확산은 전통 조각의 영역을 위협하는 가운데 조각 전공자들을 다매체 작가로 전환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설치미술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영상매체의 급속한 확산은 조각 전공자들을 폭넓은 의미의 다매체작가로 몰아가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조각에 있어서 정체성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책을 소재로 한 강애란의 미디어 작품은 이 경향을 대변하고 있다.

한국 현대조각의 이러한 조류를 염두에 두고 이번 전시가 꾸며졌다. 그것은 대략 백남준과 강애란으로 대표되는 비디오와 멀티미디어 조각, 박석원, 심문섭, 이우환, 박선기로 대표되는 추상조각, 권진규, 김영원, 박헌열, 이용덕, 한진섭, 박승모, 이환권으로 대표되는 구상조각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다분히 편의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다같이 구상조각으로 분류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뚜렷이 차별되는 미적 특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물과 동물을 소재로 테라코타 작업에 주력한 권진규가 형태감이 주는 긴장관계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면, 한진섭은 같은 동물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어수룩하고 해학적인 한국의 전통 조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체의 사실적 표현에 주력해 온 김영원은 최근 들어서 추상에 가까운 단순화된 형태의 인체조각으로 전환하는 중에 있다.

대리석을 얇게 깎음으로써 조각에 빛의 요소를 도입한 박헌열은 신령한 숲의 느낌을 극명히 보여준다. 반면에 이용덕은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간의 상관관계를 통해 인간의 착시현상을 이용한 회화적 조각을 추구하고 있다. 조각에 있어서의 이러한 실험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인체의 기계적 변형을 보여주는 이환권의 작품으로 연결된다. 철사를 반복해서 감거나 얇은 철망을 겹쳐 새로운 인체조각을 시도하는 박승모 역시 회화와 조각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시각적 착시에 기반을 둔 이러한 경향은 사물과 동물의 형태를 얇게 압축시킨 듯한 박선기의 작품에서도 공통적으로 엿보인다.

1970년대 초반에‘A.G’그룹의 멤버로 활동한 박석원과 심문섭은 추상조각에 주력해 왔다. 박석원이 미니멀한 경향의 석조작업을 통해 현대적 미감을 표출해 왔다면, 반면에 심문섭의 목조각은 미니멀한 형태의 한국 전통 목기에 미감의 뿌리를 두고 있다. 철판과 돌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이우환은 사물과 인간 사이에 배태되는 관계성에 주목한다.

1985년 광주비엔날레의 창설을 계기로 현재 한국에는 약 10여 개에 이르는 각종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또한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하여 상파울루비엔날레 등 세계의 유명한 비엔날레에 한국의 조각가들이 참가하면서 국제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점차 높아가는 추세이다.
이러한 국제전에의 참가는 한국의 조각가들이 전통적인 조각에서 벗어나 설치미술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탈장르’현상은 자연스럽게 조각의 정체성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이를 조각의 위기로 봐야할 지는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볼 때 세계적인 추세로써 한국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이태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가 이 문제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