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래고래’ ‘유럽 블로그’와 쌍생아격 뮤지컬
[칼럼] ‘고래고래’ ‘유럽 블로그’와 쌍생아격 뮤지컬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14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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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자의 밴드여행을 통해 객창감과 함께 간접 콘서트 체험도 가능해
▲ ‘고래고래’에 출연하는 한지상 (사진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

‘고래고래’를 만든 제작사인 아시아브릿지컨텐츠는 한 곳에 정착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여느 제작사와는 다른 특징 하나를 가지고 있다. 다른 제작사와는 달리 ‘여정을 통한 성장담’에 관심을 갖는다는 특징 말이다.

아시아브릿지컨텐츠가 이전에 만들었던 ‘유럽 블로그’만 해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일면식도 없던 청춘들이 유럽 각지를 여행하는 가운데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정착’이 아닌 ‘여행’이라는 주인공의 이동을 통해 관객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주인공의 정신적인 성장이 이뤄진다는 특징을 제작사가 갖는다는 말이다.

‘고래고래’는 여정을 통한 성장담이라는 ‘유럽 블로그’의 DNA를 이식받고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고래고래’는 ‘유럽 블로그’와 쌍생아 격인 아시아브릿지컨텐츠 작품이 된다. 여정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 구조를 갖는 뮤지컬이다 보니 네 남자가 밴드여행을 통해 우정을 키우고 정신적인 성장을 이룬다는 이야기 구조가 ‘유럽 블로그’와 매칭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밴드여행을 떠나기 전의 네 남자의 사연은 다양하다. 밴드 리더인 영민은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상심이 너무나 큰 나머지 실어증에 걸린다. 호빈은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니지만 만년 단역 배우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변변찮은 배우, 민우는 친구들과의 우정을 위해 신혼여행마저 포기한 채 밴드여행에 합류하는 간 큰 ‘신혼의 일탈자’다.

▲ ‘고래고래’에 출연하는 손호영 (사진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

이런 세 남자의 곁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막내 병태가 아니었다면 밴드여행은 출발하기도 전에 사단이 났을 게 뻔하다. 민우는 매사를 계획대로 움직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원리원칙주의자, 그런데 이런 민우와는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호빈, 민우와 호빈을 중간에서 다독이는 병태의 몫이 중요한 이유다.

런데 이런 네 남자도 모자라 성격 까칠한 방송국 PD가 이들 네 남자의 밴드여행 촬영을 위해 끼어들게 되니 이들 밴드여행의 앞날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밴드여행을 떠나는 네 남자와 PD 혜경의 사연에만 집중될 뻔한 이야기는 민우의 아내와 호빈의 매니저라는 조연의 사연에도 균형감을 잃지 않고 골고루 이야기를 배치함으로 등장인물의 다양한 사연을 특정 인물에만 집중시키지 않는 연출, 혹은 시나리오의 묘를 발휘한다.

혜경을 연기하는 이정화는 무대에서는 처음으로 ‘고약한 술버릇’을 연기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술이 들어가기 전에는 까칠 그 자체지만 술이 들어가면 180도 캐릭터가 변하는 망가진 역할을 과감하게 연기한다. 손호영이 키스하는 장면에서는 god 팬들의 함성이 자지러진다.

네 명의 남자가 밴드여행을 마쳐도 이들 남자주인공의 삶의 고단함이 풀리는 건 아니다. 민우는 장인과의 힘겨루기도 모자라 교수 임용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호빈은 캐스팅을 따기 위해 수많은 오디션을 거쳐야 한다. 밴드여행을 하더라도 삶의 고단함은 여전히 남아있고 해결되지 않음에도, 이들 네 남자가 밴드여행을 떠나는 ‘객창감’에 관객은 이들의 밴드 여행에 간접 체험할 수 있음과 더불어 간접적인 콘서트 체험도 병행할 수 있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고래고래’에 출연하는 이창민 (사진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

창작뮤지컬이 멸종되어가는 이 시대에 ‘고래고래’의 태동은 올 상반기 최대의 졸작 가운데 하나인 ‘아가사’의 악몽을 깔끔하게 씻겨줄 작품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고래고래’는 9월 11일부터 11월 15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관객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