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미오 앤 줄리엣’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넘버의 융단폭격
[칼럼] ‘로미오 앤 줄리엣’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넘버의 융단폭격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14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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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의 죽음과 비교할 만

단 한 번만 들어도 귀에 착착 감기는 뮤지컬 넘버가 있다. 심지어는 프레스콜 취재를 위해 현장에서 단 한 번 넘버를 들었을 뿐인데도 귀에 꽂히는 넘버를 만날 때의 행복감이야 이루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로미오 앤 줄리엣’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설마’ 했다.

▲ '로미오 앤 줄리엣'의 한 장면 (사진제공=마스트엔터테인먼트)

실황 음반이 1억장 넘게 팔리고, 플래티넘 유럽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이 뮤지컬이 ‘노트르담 드 파리’, ‘십계’와 함께 프랑스 3대 뮤지컬이라는 홍보 문구가 유럽, 혹은 프랑스에게만 해당하는 그들만의 리그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설마’가 ‘역시나’로 바뀌는 건 뮤지컬이 시작하고 불과 1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관객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뮤지컬은 두 종류다. 하나는 ‘킬링 넘버’를 바탕으로 기-승-전-결이라는 이야기 구성이 관객을 납득시키면서 감동도 줄 수 있는 뮤지컬이다. 대개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이에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승부하는 유형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나 ‘로미오 앤 줄리엣’은 서사 구성에 있어 새로울 게 없다.

▲ '로미오 앤 줄리엣'의 한 장면 (사진제공=마스트엔터테인먼트)

관객이 이미 잘 아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뮤지컬이 구성되기에 이야기에 있어서는 새로운 감흥을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들 뮤지컬은 다른 뮤지컬과 차별화하는 강점이 있다. ‘버릴 음악’이 없다는 점이다. ‘송 스루’, 혹은 송 스루에 가깝게 넘버로 융단폭격을 펼치면서도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감성을 진동하는 선율, ‘아름답다’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게 만드는 선율로 관객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뮤지컬에서는 찾기 힘든 프랑스 뮤지컬만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로미오 앤 줄리엣’은 캐릭터의 비율에 있어 주인공만 비중이 높게 할애하지 않는다. 스토리만으로는 비중이 많지 않은 유모와 신부, 머큐시오와 티볼트라는 조연조차 관객에게 주는 임팩트는 상당하다. 영주는 ‘노트르담 드 파리’ 속 그랭구와르처럼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나 운명적으로 끌렸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 외의 모든 등장인물이 움직이지 않는다. 단 두 사람, 로미오와 줄리엣만 움직이는 연출로 첫 눈에 끌리는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를 최대한으로 극화하여 표현한다.  

‘로미오 앤 줄리엣’은 ‘엘리자벳’을 연상하게 만드는 캐릭터가 하나 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는 없는 ‘죽음’으로 ‘엘리자벳’과는 달리 대사가 없이 무용으로만 역할을 표현한다. 극 중에서 죽음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극 중 인물이 죽어간다.

▲ '로미오 앤 줄리엣'의 한 장면 (사진제공=마스트엔터테인먼트)

‘엘리자벳’에서 죽음이 황태자 루돌프와 키스하고는 루돌프의 목숨을 앗아가듯, ‘로미오 앤 줄리엣’에서 죽음이 칼에 찔린 머큐시오와 키스할 때 머큐시오는 숨을 거두고 만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엇갈린 운명으로 죽어갈 때 온 몸에서 흰 가루를 흩뿌리며 주인공의 죽음을 상징화하는 죽음의 안무는 대사 하나 없어도 죽음만이 제시할 수 있는 역할을 몸짓으로 톡톡히 해낸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이라는 뻔한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힘은 음악의 힘에 있었다. 뮤지컬 팬이라면 껌뻑 죽는 타 뮤지컬 넘버도 한쪽 귀로 흘려버리고 마는 필자에게 있어서도 ‘로미오 앤 줄리엣’이 전해주는 넘버의 저력 앞에서는 백기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영주를 연기하는 스테판 메트로가 커튼콜 때 한국어로 화답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1년에 단 한 편의 뮤지컬만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6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이번 ‘로미오 앤 줄리엣’ 내한공연을 선택할 것이다.

‘로미오 앤 줄리엣’은 10월 11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관객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