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더하이츠’ 미국ver.‘빨래’인줄 알았는데 SM 학예회네
[칼럼] ‘인더하이츠’ 미국ver.‘빨래’인줄 알았는데 SM 학예회네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1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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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의 애환을 다룬다는 점은 “빨래‘와 동일

‘인더하이츠’는 기존의 라이선스 뮤지컬이 가지는 문법 가운데 ‘백인’이라는 인종의 공식을 벗어난 작품이다. 도리어 ‘라티노’라는 라틴계 소수자를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삼고 그들의 애환과 정서를 뮤지컬로 녹이고 있다. ‘인더하이츠’ 속 주류 백인과 소수자 라티노의 함수관계는 우리나라 공연으로 비유하면 ‘빨래’로 보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 '인더하이츠' 캐릭터 컷 (사진제공=SM C&C)

극 중 바네사가 수도세와 집세 등 각종 세금에 시달리는 상황, 혹은 베니가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해고될 위기에 봉착하는 건 ‘빨래’에서 몽골 외국인 노동자 솔롱고가 한구인 악덕고용주에게 임금을 제 때 받지 못하고 떼어먹히는 상황, 혹은 바른 말을 했다고 직장이 지방으로 좌천되는 나영의 상황과 비견해서 바라볼 수 있다. 인종적인 혹은 경제적인 소수자가 미국과 한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어려움을 당한다는 공식에 있어서는 ‘인더하이츠’와 ‘빨래’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소수자를 아이돌로 캐스팅했기에 어떤 이는 미국 버전 ‘빨래’를 아이돌로 캐스팅한 뮤지컬을 ‘인더하이츠’로 볼 법도 하다. ‘빨래’의 솔롱고를 아이돌 성규나 첸으로 관람한다고 하면 비유가 적절할 듯하다. 라티노라는 이유로, 혹은 경제적 약자라는 이유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고 마이너로 남는다는 ‘인더하이츠’ 혹 주인공의 비애는 ‘빨래’에서 나영과 솔롱고가 겪는 차별과 아픔으로 이해하면 ‘인더하이츠’에서 캐릭터들이 겪는 아픔이 십분 공감할 확률이 높다.

‘인더하이츠’는 ‘도미노 이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뮤지컬이다. 뮤지컬의 무대가 되는 워싱턴 하이츠에서 우스나비가 운용하는 가게의 매출은 상당한 듯하다. 할머니가 운명해서 더 이상 워싱턴 하이츠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는 우스나비가 고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면, 그도 모자라 니나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운수회사마저 문을 닫으면, 우스나비와 니나 주변의 상권이 차례로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놓이는 경제적인 도미노 이론을 뮤지컬에서 읽어볼 수 있다. 단지 우스나비가 고향으로 귀향하고, 니나의 아버지가 폐업하는 수순에서 그치지 않고 우스나비와 니나 주변에 있던 라티노들의 삶이 피폐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관객과의 정서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법한 ‘인더하이츠’는 미국 버전 ‘빨래’라기보다는 ‘SM 버전 학예회’라는 느낌이 강하다. 우선 언어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미국은 스페인어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대가 라티노뿐만 아니라 주류인 백인에게도 파급되어 있는 나라다. 오죽하면 영화 ‘터미네이터 2:심판의 날’에서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영어가 아니라 ‘하스타 라 비스타’(hasta la vista, 잘 가라)라는 스페인어를 T-1000에게 남길 정도이겠는가.

▲ '인더하이츠' 캐릭터 컷 (사진제공=SM C&C)

그런데 우리나라는 스페인어 문화권이 아니다. 스페인어 문화권이 아닌 동아시아 문화권의 나라에서 라티노의 스페인식 대사를 듣노라면 한국어도 아닌 스페인어 대사가 라티노의 정서적인 애환을 건드린다기 보다는, 정상훈의 ‘양꼬치앤칭타오’처럼 ‘개그 드립’으로밖에는 들리지 못할 위험성이 크다는 점을 제작진은 간과하고 있었다.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스페인어와 한글이 뒤섞인 조악한 대사는 관객의 감정 진폭을 건드리기에는 위험천만해 보인다.

또 하나 지적할 점은 개연성이다. 니나의 아버지는 니나의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던 운수회사를 처분하려고 한다. 그러면 니나의 애인이자 니나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던 베니는 실업자가 된다.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베니가 클럽에서 니나를 차갑게 대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 앙상블의 넘버가 지난 다음에는 니나와의 사랑을 확인하는 키스를 나눈다. 실직에 대한 분노가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사랑을 나누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귀에 꽂히는 킬링 넘버는 부재하고, 일부 캐스팅은 주인공보다 뮤지컬 배우가 랩을 더 잘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한다. 지난 번 SM C&C가 ‘싱잉인더레인’으로 곤욕을 치르면서 겪은 ‘SM 학예회’라는 오명은 ‘싱잉인더레인’ 데뷔작에 그치지 않고 이번 ‘인더하이츠’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건 이야기의 개연성과 더불어 ‘국-서반아어 혼용체’ 넘버 처리를 통해 관객에게 정서적 공감대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는 점을 제작사는 간파했어야 했다.

‘인더하이츠’는 11월 2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관객을 맞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