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비단길을 걷다> 김의규 전시를 평한다
<장자, 비단길을 걷다> 김의규 전시를 평한다
  • 이우상 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15.09.18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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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철학의 한 축인 망양(罔兩)으로 '완전한 미학' 표현한 도전
▲김의규 화백

서양화가 김의규의 전시는 항상 새롭다.

작가는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들며 어느 때는 밝고 화려한 색상을, 어느 때는 어둡고 장중한 색상을 사용하여 자유분방하면서도 철학이 있는 그의 세계관을 표현해 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너무 새롭다. 새롭기 보다는 작가의 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미학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분출되어 새로운 미학, 완전한 미학을 표현하고자 하는 도전이라고 서술하고 싶다.

미술작품으로서 추상표현주의의 새로운 획을 긋는 이 전시가 상업주의에 물든 한국화단에 새로운 도전이 되기 바란다.

같은 형태의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고 전시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표준이 되 버렸지만, 작가정신은 하나인데, 마치 특허라도 받은 양 꾸준하고 변화 없는 작품들을 양산하고 있다. 한 무리의 작가는 조수들의 손으로 제작된 작품들을 공동서명도 없이 양산하며 전시하는 행태들도 보인다.

옛 현인의 빛나는 정신적 가치를 현대적 시각으로 조형하다

작가는 그림의 제목을 망양(罔兩)이라고 하였다. 망양은 노장철학의 한 축인 장자에 나오는 말로 그림자의 그림자를 뜻하고 있다.

작가노트에서 작가는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장엄하고 때로는 눈부시게 꾸미는 미적 기법의 정밀한 요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오래 함께한 것은 친숙함이지 그리움은 아니다. 그리움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듯이 그리운 그 무엇을 찾기 위해 오랜 세월 나를 지켜주고 함께 익숙한 모든 것들과 결별했다. 그리고 무지와 불명(不名)의 두려움으로 가득한 동굴을 더듬어 들어간다.

공간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텅 빈 곳을 말하는 것인가? 이것은 나의 생각이 되었고 나는 이것을 그리며 규명하고자 한다. 있고 없음이란 생각은 존재의 그림자이고 그것을 그린 그림은 결국 그림자의 그림자일 것이다.

장자莊子는 이를 두고 망양(罔兩)이라고 했다. 무지와 불명이 가득찬 동굴엔 빈 곳이 없다. 바람 한 줄기 들어올 구멍도 없다. 문득 손을 들어 어둠 한 곳을 문지르니 밝은 구멍이 뚫린다.>

그림자가 있다면 그림자의 본체가 있을 것이고, 이 본체의 존재를 찾아 실상을 그리기 위해 작가는 본인도 알지 못하는 공간을 헤맨다. 작가가 두려움이 가득한 동굴이라고 표현한 이 공간은 텅 빈 곳인가 아니면 채워져 있는가?

▲김의규 작,Dialog 2 l 2015 l mixed media l 100 x 100cm

작가는 붓이 되고 곡선이 되어 존재를 찾아 헤매지만 어느덧 작가 자신이 존재의 그림자가 되어 어둠 한 곳을 문지르니 밝음이 찾아온다. 어두움을 벗어난 작가는 환호하지만, 이 존재의 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이 그림은 망양, 즉 그림자의 그림자일 뿐이다.

장자는 망양에 대해 “그림자의 그림자가 그림자에게 물었다. 아까 그대는 걸어가더니 지금은 멈추었고, 아까 그대가 앉아 있더니 지금 그대는 일어섰구려, 어찌 그리 지조가 없소? 그림자가 대답했다.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의지하는 몸뚱이가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의지하는 몸뚱이가 또 다시 의지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내가 의지하는 것이 뱀의 비늘과 매미의 날개 같은 존재인가?”하며 비유로 설명한다.

그림자의 그림자는 그림자가 움직이는 대로 따르고 그림자는 몸뚱이가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데, 이 몸뚱이가 존재의 본체인가 아니면 허물 벗는 동물같이 몸뚱이의 본체가 또 있는가 하며 알 수 없는 존재의 근원에 대하여 장자는 묻고 또 묻고 있다.

존재의 그림자 되어 공간을 채우며 흔적을 남긴다

불교의 공(空) 사상이 그렇듯 이 세상의 존재가 과연 진여(眞如)인지 아니면 일장춘몽 같은 존재의 그림자인가 하는 궁극적인 문제를 장자는 우리에게 메시지로 남겼고, 작가는 이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어둠의 혼미한 공간을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다.

작가는 PVC패널 위에 혼합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여 이 그림을 완성했는데, 터치된 붓으로 표현된 작가 자신이 존재의 그림자가 되어 패널 위를 무아의 지경으로 날아다니며 공간을 채우고 있으며 패널 위에 그림자의 흔적을 남긴다. 그러면서 자신이 채운 이 공간이 꽉 차있는 공간인가, 아니면 그림자만 있는 빈 공간인가를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다.

▲김의규 작, 적멸寂滅 l 2015 l mixed media l 200 x 200cm

중국 산시 성 시안 시(西安市)의 전시초대를 받고 방문한 작가에게 시안 시 문화예술위원회 관계자가 시안 시 중국화원의 높고 드넓은 전시장을 보여주며 작품 규격을 맞출 수 있냐고 물어 왔는데, 작가는 더 높은 벽면을 마련해 줄 수 있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 작품 전시의 특징이 100미터 벽면도 채울 수 있는 스케일에 있음을 작가는 은연중 내비치며, 비단길에 실어 날을 동양 현인의 정신적 가치의 시각화 전을 북경을 거쳐 유럽까지로 운반하는 웅대한 구상을 하고 있다.

‘비단길을 걷다’라는 제목은 동양고전의 철학적 이미지가 비단길을 거쳐 서양으로 이동하는 전시계획을 의미하고 있다.

<장자, 비단길을 걷다> 展은 지난 9월 1일부터 6일까지 종로 소재 팔레드 서울 갤러리에서 1차 전시가 있었으며, 14일부터 25일까지 종로구 사직동 주한중국문화원 전시실에서 2차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3차 전시는 중국 산시 성 시안 시 중국화원에서 오는 10월 15일부터 26일까지 가질 계획이고 이어서 중국 북경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김의규 작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Academy of Art University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계원대학교와 성공회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했고, 지금은 전업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시인 구상 선생의 맏사위로서 문예활동도 병행하고 있으며, 부인 구자명 작가와 함께 미니픽션작가협회를 설립하여 미니픽션 작가로도 필명을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