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탐정: 더 비기닝’ 코미디가 있어야 할 자리 대신 ‘김치남’이 보여
[칼럼] ‘탐정: 더 비기닝’ 코미디가 있어야 할 자리 대신 ‘김치남’이 보여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1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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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추리 모두 아쉬운 추석 영화

최근 몇 년 동안 관람한 영화 가운데서 비주얼적 수위가 강한 영화 가운데 하나는 ‘더 스토닝’이었다. 보다 저렴한 방법으로 아내와 이별하기 위해 아내에게 부정한 혐의를 뒤집어씌우고는 ‘투석형’, 말 그대로 돌을 던져 죄가 없는 한 여성을 무참하게 사형시키는 극악한 마초이즘을 보여주는 영화가 ‘더 스토닝’이었다. 무고한 여성에게 돌팔매질을 해대는 남자들에게, 할 수만 있다면 거꾸로 이들을 투석형에 처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아닐 수 없었다.

▲ ‘탐정: 더 비기닝’의 한 장면

그런데 ‘더 스토닝’의 불온한 마초이즘을 연상하게 만드는 영화 한 편이 권상우의 4년만의 복귀작이라는 타이틀로 추석개봉영화의 반열에 오른다. ‘탐정: 더 비기닝’은 분명 코미디를 표방한다. 극 중 권상우가 연기하는 강대만은 성동일이 연기하는 노태수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답시고, 아기의 기저귀를 갈면서 묻은 용변을 노태수의 코트에 묻혀댄다.

감독은 이걸 화장실 코미디라고, 웃기기 위한답시고 갖다 붙였지만 이건 혐오스러운 장면일뿐이지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기에는 상당히 저열한 연출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관객을 크게 웃길 결정적인 웃음 폭탄이 전무하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렇다면 추리는? 추석이라는 명절에는 어울리지 않는 장르가 바로 추리다. 추석이나 설은 온 가족이 모여 영화관을 찾는 시즌이다. 그렇다면 머리 쓰는 장르는 추석이나 설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머리 쓰기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모를까, 어린이나 어르신이 추리라는 장르를 찾기에는 버거움이 있다.

그런데 ‘탐정: 더 비기닝’은 추리물이다. 머리를 100% 가동해가며 보아야 할 영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머리를 써가며 관람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온 가족이 볼만한 영화와 추리는 애초부터 궁합이 맞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 ‘탐정: 더 비기닝’의 한 장면

이제는 앞에서 이야기한 마초이즘이 ‘탐정: 더 비기닝’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언급해볼 차례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속 희생자는 모두 여성이다. 칼에 수십 차례 찔리거나, 아니면 가마에서 통구이가 되거나 하는 방식으로 여성 피해자는 육체가 잔인하게 유린당한다.

그런데 이들이 살해당하는 방식이 불온하다. ‘더 스토닝’에서 투석형으로 피해자를 유린한 남자들의 불온한 시각이 ‘탐정: 더 비기닝’에 고스란히 이식되었다고 느낄 정도로 이들 여성 피해자가 유린되는 동기를 보면 ‘김치남’적 요소가 다분하다. 피해자인 여성을 남자의 방식으로 응징하겠다고 생각하는 마초이즘 혹은 김치남의 찌질함이 영화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불쾌할 수밖에 없다.

여성을 ‘악녀’가 되게 만드는 이 영화의 태도도 지적할 대상이다. 서영희가 연기하는 강대만의 아내는 외적으로 보기에는 강대만을 쥐 잡듯 들볶는 아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아내가 강대만을 들볶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가사를 돌보고 육아하고, 생계도 도모하는 아내의 삼중고를 강대만은 나 몰라라 하고 노태수와 탐정 행세를 한다.

자칫하면 친한 친구가 몇십 년 형을 선고받고 감방에서 썩을 걸 우려해서 친구를 위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그런 강대만의 명분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강대만을 싸돌아다니기만 하고 가사를 돌보지 않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리니, 외적으로만 본다면 아내가 남편을 쥐 잡듯 들볶기만 해대는 ‘나쁜 아내’로밖에 보이지 않게 만든 연출의 불온함이 영화 안에 도사리고 있다.

▲ ‘탐정: 더 비기닝’의 한 장면

‘탐정: 더 비기닝’은 추석개봉이라는 타이밍과는 궁합이 들어맞지 않아 보이는 영화다. 권상우가 어렵사리 선택한 4년만의 복귀작이 ‘탐정: 더 비기닝’이라는 점이 아쉽고, 코미디와 추리에서 길을 잃은 것도 모자라 남자들의 불온한 시각이 담긴 이런 영화가 추석개봉작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