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미술평론] ‘올댓춤’-실크로드경주 2015 페스티벌
[이근수의 미술평론] ‘올댓춤’-실크로드경주 2015 페스티벌
  •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5.09.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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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청자와 박명숙(현대무용), 국수호(한국무용), 김순정(발레). 네 명의 무용가가 각각 자신의 작품을 출연하여 동일 주제로 기획된 70분 대작을 완성해 간다. 보기 드문 시도지만 작품성면에서 위험한 연출이기도 하다.

‘실크로드경주 2015 & 페스티벌 SP’란 긴 제목에 ‘유라시아 문화특급’이란 부제까지 붙어 있는 무용공연 <올댓춤(All that ChOOM)>(9.8~9, 대학로 예술극장)이다.

박명숙이 안무한 ‘바람에게 길을 묻다(15분)’가 공연의 막을 연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유랑’의 인상적인 장면들이 점점이 모자이크되어 있다. 일제치하 만주로 망명한 동포유민들이 황량한 시베리아로 강제이주 되면서 겪는 시련이 2000년 전 실크로드를 개척하면서 중국과 아라비아 상인들이 겪었던 고초와 오버랩 되면서 의미 있게 다가온다.

박상원이 연출한 올댓춤의 기획의도는 광복 이후 세계와 소통하며 한국 춤 창작의 길을 일구어 온 안무가들의 여정을 사계와 순환이라는 주제로 풀어보는 것이다. 박명숙의 춤은 이 중 동토(凍土)와 같이 황량하고 척박했던 우리 춤의 겨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 째 작품이 ‘길을 담다’(15분)공연이다. 김순정의 초연작품으로 4계 중 봄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불모지 같은 맨 땅 위에 발레의 길을 열고 열린 길에 또 새로운 길을 더해가는 발레무용수들의 아픔과 희망을 그려낸다.

자신의 어린 발레단원들과 함께 출연한 김순정의 파워풀하면서도 서정적인 솔로가 무대를 장악한다. 늘어뜨린 은색의 긴 끈이 실크로드로, 황금색 수건은 교역의 상징물로 표현된다. 그녀가 바꿔 입는 검정색과 흰색 의상, 그 속에 내비치는 푸른빛과 자줏빛 안감들은 천오백여년에 걸쳐 실크로드를 오갔던 동서양의 다양한 상인들을 상징할 것이다.

이어지는 춤이 국수호의 ‘미마지의 무악(味摩之의 舞樂, 18분)’이다. 미마지는 7세기 초 중국의 오(吳)나라에서 배워온 기악(伎樂; 불교와 관련된 가면극)을 일본에 전수해 준 백제 무용가로 알려져 있다. 금년 8월 달오름 극장에서 초연한 동명 작품 중 일부인 미마주의 독무와 5인 남성무로 구성된 비조무(飛鳥舞)를 보여준다.

일본에 남아 있는 벽화 속 여인상을 4인 여성무로, 앙증맞은 장구를 앞으로 걸어 메고 무대를 휘젓는 장구춤은 국수호가 직접 춘다. 미마주의 전설을 통해 실크로드 시대 중국과 한국, 일본을 잇는 문화의 실제전파경로를 따라가면서 백제의 춤이 일본에 뿌리내린 배경을 찾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올댓춤의 성숙단계인 여름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을 장식한 공연이 최청자의 ‘불림소리’ (18분)다. 불림소리는 제사에서 혼령을 불러내기 위한 주문 혹은 기원을 말하는데 국악에선 흥을 돋우기 위한 추임새란 뜻으로도 쓰인다.

1980년대 작은 거인으로 잘 알려진 김수철이 작곡한 앨범과 동명의 제목을 최청자가 안무한 작품이다. 국악과 서양음악을 접목시켜 70~80년대의 새로운 록 스타일 음악세계를 열어놓은 의미가 동서양의 문화적 교류를 촉진했던 실크로드와 상통하기에 올댓춤의 마지막 순서를 장식했을 것이다. 기획의도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 작품이 맨 앞에 보여지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겠다.

이상봉 김철희 이승호가 합작한 조명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이었으나 고난의 시대를  표현하는 데는 효과가 있었고 장대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빛을 줄타기처럼 타고 올라가는 느낌과 좌우로 확산되는 빛의 이미지 등이 인상적이었다.

기원전 100년으로부터 15세기 중엽까지 중국과 인도, 아라비아와 유럽을 연결하며 동서양의 문물과 사상의 교류경로가 되었던 실크로드는 단지 과거의 유물만은 아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정부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Eurasia Initiative)’란 국가프로젝트를 주창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크로드를 현재로 불러내어 정치 경제 문화의 융합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실크로드경주 2015 & 페스티벌 SP(Festival Silk Road for Performing Arts)'는 예술이 사회적 이슈를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