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중강 문화비평가 / 공연기획자]“동시대성 느낄 수 있으면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하고 싶어” ②
[인터뷰 윤중강 문화비평가 / 공연기획자]“동시대성 느낄 수 있으면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하고 싶어” ②
  • 인터뷰 정리-이은영 편집국장/박정환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29 1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수-제자라는 도제 머무르면 교수 작품밖에 나오지 않아, 국악계 성골과 진골 구분 극복해야
▲자신을 르네상스인, 선비라 불러달라고 하는 윤중강 문화비평가이자 공연기획자, 예술감독.

기자는 그동안 ‘윤중강’이라는 이름을 대할 때마다 국악계에서 잘 나가는 ‘갑’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기 잘난 맛에 우쭐대고 다니는,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밥맛’이었다고나할까? 공연장에서나 여느행사장에서 가끔 마주쳐도 예전에 인사 한 번 나눴던 기억이 있는지라 형식적으로 인사를 나눌 뿐이었다.

얼마 전 전통연희와 관련된 한 세미나의 발제자로참여한 그와 조우했다. 그 날을 계기로 비로소 그를 탐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약속을 한 후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던 중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 우리나라 최고 학부라는 제도권의'서울대'를 졸업했고 국악계뿐만 아니라 공연현장을 종횡무진 하고 있는 그는 평론가로 방송진행자로, 기획자로, 예술감독으로서 그 누구보다 주류 중에 주류라고 여겨진다.

그런그가 정작 자신은 항상 마이너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였다.

“국악계와 관련된 글의 80%가 그의 글이라고 할 만큼 그는 평론가로서 국악공연 현장을 부지런히 누비고성실히 글을 써냈다”라고 한 어느 국악인의 글 한 토막에서만 봐도 그가 국악계에서 얼마나 활발한 활동을 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는 서울대 국악과를 가야금 전공으로 들어갔지만연주만을 위해 공간에 갇혀있는 것을 태생적으로 싫어했다. 지금도 여전히 ‘호기심 천국’인 그는 어디든 자유분방하게 자신을 자극시키는 현장으로 열심히 돌아 다녔다. 그러면서도 최고성적으로 졸업했단다.

현장을 다니다 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현장에서 자신이 판단한 부분으로 간섭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일찌감치 학부생 때 우리나라 국악평론가1호로등단한다. 모두들 황병기가야금명인의 이력에만 관심을 둘 때 그는 최초로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작품론과 세계관을 집중적으로 다룬 평론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비평은 초기엔 혹독했다. 명인들의 작품과 공연에도 가차없이 칼질을 해댔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평론가의 칼은 생명을 살리는 의사의 집도와 같아야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그는 <밤도 낮도 들썩들썩>이라는 ‘밤샘콘서트’ 등 여러 독특한 연희판을 기획하고 예술감독을 거치며, 오는 24일(*23일 발행된 오프라인 신문 기준 일자 -편집자 주)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릴 '오천(午天)의 판소리' 첫무대인 <모노판소리-심청의 재구성>준비에 한창이다.

이렇 듯 그는 국악계에 깊이 관여하고 판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 ‘르네상스인, 선비’라고 답했다. 그 자신이 ‘국악문예부흥’의 중심이라는 말로 풀이된다.
그는 자신이 평생을 가져가야할 것으로 국악을 중심축으로 아리랑과 가야금 ·소리를 꼽았다. 여기서 좀 더 확장해 아시아와 연희, 만요, 1930년대 등에 천착한다.

그리고 우리 국악발전을 위해서 국악창작이 많이 나와야한다는 것, 국악 작곡가들의 분발, 국악기의 개발을 강조한다. 어디서든 그는 머뭇거림과 거침이 없다. 그러면서 그는 그 모든 일들을 허투루 하지 않고 예리하게 핵심을 파악하고 주변부를 두루 꿴다. 가을이 들어서는 길목에 김영갑 10주기 추모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인사동 아라아트센트에서 만났다.

  마이너리티와 메이저리티 사이에 선 경계인, 윤중강.

 

 ‘서울대’에서 국악을 공부했고, 그 누구보다  국악현 장에서 많이, 오래 머물렀다.
    국악 변혁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현실에서 그는
 여전히 ‘음악계의 마이너인 국악계’에서도 ‘마이너’에 위치하고 있다고 자조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칠 줄 모르는 엉뚱함과 성실함, 집념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다.

[1편에 이어]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53

 창작 국악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뜻을 품었다.
  "1980년대부터 국악을 변화시키는 지점에는 모두 있었다고 생각한다. 85년에 객석에서 황병기를 다루었을 때에는, 당시 국악 커리큘럼에서 황병기에 대한 연구나 언급이 전혀 없던 때였다. 당시 황병기에 대해서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만 다루었지, 황병기의 작품론이나 세계관을 처음으로 집중 조명한 사람이 나였다. 1994년 국악의 해가 만들어졌을 때에는 국악에 대한 콘텐츠가 없던 때였다. 이 때 국악의 새로운 콘텐츠나 방송 포맷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결정적인 기여를 많이 했다.

국악으로 페스티벌을 할 때 TV에 종사하던 이들은 국악 콘텐츠를 만들 능력이 되지 않았다. 이럴 때 전통음악과 창작음악, 재즈와의 만남 등 다채로운 국악의 콘텐츠를 제시할 수 있었다. 80년대에 창작 국악을 시도했다면 90년대에는 퓨전 국악의 붐을 일으킨 사람이 나다.

국악과 다른 장르의 만남에 있어서 다리를 놓는 역할을 많이 해왔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와서는 국악의 중심을 젊은이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퓨전을 ‘퓨쳐’더하기 ‘비전’으로 생각한 거다. 서양음악과 국악의 만남이 다가 아니라, 그때부터 가야금 앙상블 사계를 소개하고 04년과 05년 들어 ‘국악 축전’을 추진했다. 지금의 ‘여우락 페스티벌’의 전신이 국악 축전이기도 하다.”

한동안 24시간 내내 하는 국악방송 프로그램을 다 꿸 정도로 열심히 들었는데, 미안하게도 윤선생 방송은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웃음)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윤선생 방송이 안나오니 좀 서운하더라. 국악방송 개국 때부터 참여해서 오랫동안 방송을 해온 것으로 아는데 국악방송과의 인연과 진행을 그만둔 이유가 궁금하다.
“그랬나.(웃음) 국악방송의 청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악 외에도 다른 장르의 음악을 많이 방송해야 한다는 건의를 많이 해왔다. ‘윤중강의 2030’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절반은 국악이지만 절반은 대중음악을 방송했다. 국악적인 소재로 대중에게 어떻게하면 좀 더 다가설 수 있을까에 대한 대안이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국악방송을 십여년 가량 맡았다. 계속 하려고 해도 새로운 아이템이 나올 게 없는 상황이었을 때 그만두었다. 나중에 국악방송 측에서 불러줄 때에는 다른 에너지를 축적해서 가지만 그만 둘 당시에는 국악방송을 놓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자신을 르네상스인, 선비라 불러달라고 하는 윤중강 문화비평가이자 공연기획자, 예술감독.

연주자를 중심으로 전통연희 단체가 새로운 콘텐츠 구축할 수 있어야

뮤지컬에도 상당히 관심을 많이 보인다. 전통연희와 뮤지컬과의 접목을 시도하고자 한 것 같은데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처음에는 국악이 열악해서 뮤지컬의 기술적인 시스템과 무대 메커니즘을 받아들이면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뮤지컬의 시스템을 완전히 파악하고 보니 뮤지컬의 메커니즘은 자본이 뒷받침되는 부분이 많다. 국악의 메커니즘은 소박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1~3인을 중심으로 한 음악극을 만들고 싶다. 만일 큰 단체의 예술감독을 맡게 된다면 단원의 장점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 예술감독이 빠지기쉬운 오류는 자기가 아는 것만 하기 쉽다는 점이다. 예술감독이 잘 아는 걸 공부시키면 단원과 단체가 주체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 장점 가운데 하나가 공연하는 단원의 장점이 무엇인가를 빨리 파악한다는 점이다. 단원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악기를 가지고 어떤 음악적인 색깔을 내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연주자가 연주하는 음악을 조합해서 지휘자가 없어도
연주가 되고, 악기가 되고,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연주자를 중심으로 해서 해당 전통연희 단체가 새로운 콘텐츠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자신을 르네상스인, 선비라 불러달라고 하는 윤중강 문화비평가이자 공연기획자, 예술감독.

“나를 르네상스인, 선비라 불러주오”

앞으로 작품을 계속 기획해 올리고 싶다고 했는데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이 달 24. (목) 오전 11시에 세종체임버홀에서 <오천(午天)의판소리-’심청의 재구성‘>이란 김태희 명창의 일인다역 모노판소리를 올린다. 판소리를 진정한 ‘모노드라마’로 만들고 싶어서 고수가 없이 작창자 혼자 공연을 이끌어 간다. 무엇보다도 소리꾼의 소리에 집중해 보기 위해서다. 전통판소리의 판타지는 결국 ‘판타지’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물에 빠진 심청이 다시 살아났을까? 나라에선 맹인 잔치를 열어주었을까? 거기서 심봉사는 눈을 떴을까? 아픈 현실을 외면하면서, 아름답게 왜곡하고 싶지 않았다.

희망은 ‘현실의 자각’에서 시작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그리고 세월호 사고로 죽어간 소녀들을 상기시키고 싶은 의도가 있다. 드러내 놓지는 않지만 공연의 막이 내리면 아마 의식이 될 걸로 생각한다. 꼭 보러 와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평론가 기획자 예술감독 등 여러 역할을 맡아 오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딱 꼬집어서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흠, 르네상스인? 선비? 이렇게 불리우길 바란다.

윤중강은 자신은 여전히 ‘마이너’라고 여기고 있었다. 얼마전 한 국립단체 에술감독에 지원했다 낙마한 뒤 더욱 그런 생각이 더해졌단다. 기자는 그에게 마이너가 아니라 경계인이 더 적절할 거라고, 위로도 핀잔도 아닌, 국악계와 그 사이에 놓인 접점을 짚어주었다. 기자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는 무척 억울해 했다. 자신이 투신해 온 국악계에서 오히려 그렇게 위치 시킨다면 더 종합적, 객관적으로 잘 보고 혼자의 고집과 아집이 아닌 잘 훈련된 구성원들의 의견과 창의를 더 잘 반영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항변이었다.

그는 여전히 크고 작은 많은 국악판을 벌이고 있다. 국악을 지독히도 사랑하기에 그는 모두가 가는 길을 가지않고 다른 길을 고집했고, 그 또한 성공률이 더 높았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끝까지 손에 쥐고 갈 것은 ‘아리랑·가야금 ·소리’라 했다. 이는 즉, 국악에 대한 애정을 뼛속 깊이 새겨 넣은 문신이다.

그는 때때로 우스꽝스러운 자세와 표정으로 자신을 ‘셀프디스’해서 주변을 유쾌하게 하는 사람이다.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옳은 길을 추구한다는 것,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정리 박정환 칼럼니스트 press@sctoday.co.kr

오프라인 서울문화투데이 Culture interview 2015년 9월 23일자 3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