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윤이 만난 아티스트 10] 신예 작곡가 이승환
[박자윤이 만난 아티스트 10] 신예 작곡가 이승환
  • 박자윤 기자
  • 승인 2015.09.30 0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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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계를 비롯해 영화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하다

“'작곡'은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무수한 방법 중, 제가 가장 즐겨하는 예술입니다. 그저 작곡이 좋아서 하는 것일 뿐 그 이상으로 생각해보진 못했습니다.” 작곡을 하는 이유를 물은 필자의 질문에 작곡에 대한 자부심을 느껴지는, 다부진 대답이였다.

신예 작곡가 이승환. 올해 스무 살 나이의 이승환은 선화예술고등학교 재학 중 도미하여 미국 명문 예술학교인 인터라켄 아트 아카데미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작곡한 <현악 사중주를 위한 세 개의 디베르티멘티>는 미국 ‘영 아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2015년 1월 National Young Arts Week에 마이애미의 뉴월드센터에서 연주되었다. 또한 2015년 미국 NPR 라디오 프로그램인 ‘From the Top’의 최종 연주자로 선정되었으며, 인터라켄 아트 아카데미의 최고의 아티스트에게 수여되는 ‘영 아티스트 어워드’를 수상하였다.

이승환은 이번 9월 영국왕립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의 RCM 장학생으로 입학하였다. 그가 2014년에 작곡한 <Dreams that Transcend All Boundaries>를 통해 미국 전국 청소년 영화제에서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하였으며, 2013년 작곡한 단편영화 <Burning>는 미국 LA영화제(Los Angeles Film Festival), NFFTY영화제(National Film Festival for Talented Youth) 등에 초청되었다. 클래식 음악계를 아울러 영화음악에서도 혜성처럼 등장한 그와, 인터뷰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작곡가 이승환

“야구선수가 꿈이였던 소년, 피아노를 만나다”

어떻게 작곡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어릴 때부터 음악에 흥미가 많았습니다. 음악 애호가이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다양하고 많은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여러 악기를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악기를 다루면서 즉흥적으로 곡을 연주하고, 가족들 또는 친구들과 함께 연주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아홉 살 때는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듣고 영감을 받아 짧은 행진곡을 작곡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어린 시절 작곡은 어디까지나 취미였을 뿐, 진지하게 공부한 적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제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또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야구에 열정적으로 빠져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하지만 바로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오랜 시간 부모님을 설득했지만, 완강하신 부모님의 뜻에 끝내 야구선수의 꿈은 포기하게 됐죠.

그래도 당시 그때의 기회를 통해 제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제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피아노 앞에 앉아 아무렇게 기분을 막 표현하고 있을 때, '아, 바로 이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곡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느낀 것이죠. 그렇게 제가 본격적으로 작곡에 입문하게 된 게 중학교 1학년 때입니다.

이승환 씨는 고등학교 시절 도미했습니다. 미국에는 줄리어드 예비학교, 노스웨스턴대학 예비학교 등의 예비학교 등이 있고, 크게 보면 독일, 영국, 러시아 등 나라의 선택도 있었으리라 봅니다.

저는 음악뿐 아니라 모든 예술은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시 저는 예술가로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헤매던 도중, 제 멘토이시자 피아니스트 최소영 선생님의 추천으로 인터라켄 예술학교를 알게 되었고, 제가 찾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어 입학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인터라켄 예술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다양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음악, 미술, 무용, 문학, 영화, 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재능 있는 학생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는 학교입니다. 인터라켄 예술학교에서 저는 많은 학생과 함께 소통하고 협력할 기회가 많았고, 서로를 통해 함께 예술가로서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인터라켄 예술학교의 작곡과 학생으로 사는 생활은 굉장히 자유롭습니다.

고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연한 일정을 만들어 주며, 학생들의 작품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줍니다. 또한, 어떠한 음악을 쓰던, 얼마나 많은 작품을 제출하던,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소홀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 반대입니다. 학생들이 누군가의 때가 타지 않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깔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저도 음악가로서의 저 자신을 더욱 알아갈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단점이라면, 제게 미국 미시간에 있는 인터라켄 예술학교의 혹독하고 기나긴 겨울은 고역이었습니다. 날씨의 영향인지 집이 그립고 우울한 감정이 느껴질 때도 잦았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모두 좋은 추억이고,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러한 경험들이 저의 예술에 또 다른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감정들이 모두 지금의 음악이 되고, 청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 이승환은 영화음악 작곡에 있어 '영화감독이라는 또 다른 예술가의 세계를, 관객에게 더욱 쉽고 매력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집을 지어주는 일'이라 표현했다

“영화에 있어서 음악이란 관객의 이해를 돕고, 감정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역할”

영화 음악 작곡과 클래식 음악 작곡에서는 어떠한 차이가 있나요?

영화 음악을 처음으로 작업하게 된 것은 2013년 초, 인터라켄 예술학교의 <영화와 음악>이라는 수업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수업에서 앨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싸이코'를 음악 없이 관람했었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영상만으로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어떤 장면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부자연스러웠지요. 또, 실제 영화가 유도하는 공포감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음악이란 관객의 이해를 돕고, 감정을 끌어내는 참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영화 음악을 작곡하며 저는 클래식 음악과는 다른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영감을 얻고, 제가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 그리고 청중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음악에 담습니다. 그에 비해, 영화 음악은 영화감독이라는 또 다른 예술가의 세계를, 관객에게 더욱 쉽고 매력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집을 지어주는 일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음악이 영상을 압도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 무엇보다 영상이 가진 색깔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작곡할 때에 유념합니다.

작곡하면서 어디서 가장 많은 영감을 얻습니까?

저는 많은 사람과 오랜 시간 대화하는 것을 즐깁니다. 물론 매 작품 영감을 얻는 방법이 다르지만, 사람들과의 대화는 제 작품의 훌륭한 밑거름이 됩니다. 여기에서 대화는 단순한 잡담이 아닙니다. 바로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찾기도 합니다. 제 현악 사중주로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2013년 여름, 온 가족과 함께 양평에 놀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는 경치가 아주 아름다운 계곡 바로 앞에 있는 펜션에서 머물렀는데, 밤늦게 이모할머니의 방에 찾아갔습니다. 연세가 무척 많으신 할머니의 주름을 보고 있노라니 그분의 삶이 궁금해져서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일제 강점기부터 6·25전쟁, 그리고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셔야 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은 제게 크나큰 영감이 됐습니다. 현악 사중주 2악장에서는 할머니와 저의 대화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비올라와 첼로의 선율을 통해 할머니의 목소리를 표현하고자 하였고, 또 1악장에서는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 자신만의 기억을 음악으로 표현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영감을 얻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곡가 이승환'을 만들어 준, 이승환 씨의 음악 세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참 많은 분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저의 스승님이신 류재준 선생님을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류재준 선생님을 통해서 저는 음악가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항상 쫓아다니며 리허설, 연주회, 음악제 등을 모두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고,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씨앗이 됐습니다. 제가 처음 류재준 선생님을 만나 뵀을 때가 기억납니다. 유학생활에서 기나긴 방황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선생님의 음악을 알게 되었고 꼭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소영 선생님을 통해 류재준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용기 내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 통화에서 류재준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몇 가지 질문하셨습니다.

베토벤의 작품에 대해 질문을 하시더니, “넌 기본적으로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됐다. 다른 선생님을 알아보라.”며 전화를 뚝 끊으셨습니다. 이대로는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짜고짜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얼굴은 붉어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하더군요. 선생님께서는 또다시 제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Agitato가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해보라.” 단순히 '격렬하게'라는 뜻이라고만 알고 있던 저는 충분한 대답을 하지 못했고, 당황한 나머지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였고, 선생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제게 통보를 한 뒤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악상기호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작곡가가 될 수 있겠는가. 음악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하는 편이 낫겠다.” 그 말을 듣고 어린 마음에 너무나 상처를 받았지만, 오히려 그 말은 절 자극했습니다. “음악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하는 편이 낫겠다.”라는 말에 오기가 생겨 다시 전화했습니다. 그리곤 당당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과 통화를 통해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저 자신이 얼마나 기만했고,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흐트러져 있었는지 알았습니다. 1년의 시간을 주십시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1년 동안 배울 자격을 갖춘 뒤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 한번 웃으시더니, 제 나이를 물으셨습니다. 열여섯이라는 대답과 함께, 선생님께서는 용기가 가상하다며, 자신에게 보여줄 악보를 들고 자택으로 찾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류재준 선생님과의 인연은 시작됐고, 제 인생의 전환점은 선생님과의 만남입니다.

► 작곡가 이승환은 이번 9월부터 영국 왕립음악학교에서 새로운 학업의 길을 시작했다

“작곡한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파”

마지막으로 작곡가로서 미래의 가장 큰 목표는 무엇입니까?

작곡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곡이 완성되고, 그 곡을 청중들과 함께 공유하는 순간입니다. 청중들이 연주회장에 앉아 제 음악을 들어줄 때 얼마나 설레고 떨리는지 모릅니다. 연주회가 끝나고 청중들이 정말 즐거웠다고 얘기해줄 때의 행복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꼭 사람들과 소통하는 작곡가가 되고 싶습니다. 저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가 작곡한 음악을 통해 들려주고 싶습니다. 세상이 발전하며 더욱 바빠지는 우리의 삶 속에, 제 음악이 사람들의 작은 휴식처가 되었으면 합니다.

롤랑 조펭 감독의 영화, '더 미션'의 명장면이 떠오릅니다. 험난한 이과수와 폭포를 마침내 올라간 가브리엘 신부는 원주민들에게 포위되는 위험에 처합니다. 신부는 다짜고짜 오보에를 연주하기 시작하고, 원주민들은 모두 넋이 나간 듯 연주를 지켜보기 시작합니다. 한 원주민이 다가와 오보에를 부러뜨리자, 다른 원주민이 다가오더니 미안한 듯이 오보에를 붙여보려고 시도하다가 결국엔 함께 손을 잡고 떠납니다. 사소하지만 아주 큰 음악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어, 인종, 종교를 떠나 음악은 그 누구도 움직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움직임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소함이 모여 언젠가는 큰 움직임이 될 수도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제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을 감동을 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꼭 그런 작곡가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