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데렐라’ 정단영, 발레로 못 다한 꿈 뮤지컬로 꽃피우기까지
[인터뷰] ‘신데렐라’ 정단영, 발레로 못 다한 꿈 뮤지컬로 꽃피우기까지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30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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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까지 발레 전공했다가 포기한 것처럼 뮤지컬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기존의 동화 속 신데렐라의 언니 이미지는 지워라. 동화 속 신데렐라의 언니라면 주인공인 신데렐라를 구박하고 학대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뮤지컬 ‘신데렐라’의 첫째 언니인 가브리엘은 2막에서 되레 신데렐라의 사랑을 응원하는 ‘천사표 언니’가 된다.

가브리엘 자신도 고백하지 못하는 사랑으로 속앓이 하는 와중에, 동생이 왕자를 사랑하는 걸 응원하다 보니, 동화 속 언니 이미지와는 달라도 한창 다른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뮤지컬 ‘신데렐라’에서 가희와 함께 더블 캐스팅으로 신데렐라의 첫째 언니 가브리엘을 연기하는 정단영을 만났다.

▲ 신데렐라의 첫째 언니 가브리엘을 연기하는 정단영 (사진제공=엠뮤지컬)

- 가브리엘이 장미쉘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브리엘은 동화와는 달리 약간은 내성적이고 소심하면서 순종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장미쉘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걸 주장하는 혁명가다. 장미쉘은 가브리엘이 가지지 않은 성격을 가진 남자다.

가브리엘은 성격적인 면에 있어 내면적인 깊이는 갖고 있었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지만 장미쉘은 자신의 소신을 겉으로 드러낼 줄 아는 남자다. 그래서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가브리엘은 소심한 성격의 소우자지만 2막에서 사랑을 찾으면서 지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인물로 바뀐다.”

- 답변한 것처럼 가브리엘은 원작 동화와는 달리 2막에서 ‘반전 캐릭터’로 돌변한다.
“기존의 동화와는 다른 설정으로 가브리엘이 묘사되어서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동화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게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계모의 딸이다. 계모는 동화 원작 그대로 신데렐라를 구박하고 차갑게 대한다. 계모의 딸이라는 걸 보여주면서도 동화와는 다른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는가를 많이 생각해야 했다. 처음에는 캐릭터 잡기가 어려웠다.”

- 왕용범 연출가가 연출로 주문한 가브리엘이 따로 있었는가.
“연출가는 배우마다 열린 시선을 가지고 있지, 캐릭터를 연기할 때 특정한 틀만으로 연기하는 걸 바라지 않는 분이다. 그래서 연출가는 ‘이런 가브리엘을 했으면 좋겠다’는 특별한 주문을 하지 않고 배역을 열어두었다. 그래서 나와 가희 언니가 같은 배역임에도 다른 연기 컬러를 보여줄 수 있었다.”

▲ 신데렐라의 첫째 언니 가브리엘을 연기하는 정단영 (사진제공=엠뮤지컬)

- 2막에서 엎어지는 장면이 있다.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엎어지는가.
“처음 연습할 때에는 멋도 모르고 그냥 엎어졌다가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무릎 보호대를 끼고 연습했다. 의상이 크다. 의상을 입고 연습하다 보니 의상이 무릎 보호대 역할을 해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무릎 보호대를 끼지 않고도 무대에서 엎어진다.”

- 2013년 ‘브로드웨이 42번가’로 주연을 맡기 전까지 앙상블로 9년을 있었다. 힘이 들어 포기하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10번 이상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어마어마한 좌절감이 찾아온다. 앙상블로 지낼 때에도 여배우로서 적지 않은 나이라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야 하는데...’ 하는 초조함이 있었다. ‘이 길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이 맞나’ 하는 의문에 굉장히 많은 고민도 있었다. 그런데도 뮤지컬 배우라는 길을 놓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앙상블을 하기 전에 중학생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발레만 해 왔다. 발레를 할 때에는 발레단에 입단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발레단에 들어갈 수 있는 무용수 인원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다. 심지어는 뽑지 않을 때도 있다. 실력 있는 발레 동기들도 무용단 입단에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발레단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몇 해를 거듭한 끝에 발레 오디션에 합격해도 발레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컸다.

여태까지 발레 한 가지만 보고 달려왔는데 머릿속이 하얘졌다. 슬럼프가 닥쳐 미래를 걱정하다가 발레를 전공했으니 ‘뮤지컬 안무를 해볼까’ 하는 생각에 뮤지컬에 뛰어들었다. 발레를 그만 두고 뮤지컬로 넘어온 것이었기에, 두 번째로 선택한 뮤지컬은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뮤지컬계에서 앙상블로 지내는 기간이 길어서 ‘시집 빨리 가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저도 여자라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렇지만 남편에게 기대고 싶지만은 않다. 결혼을 하더라도 내가 쓸 돈은 내가 벌고 싶었다. 남편 돈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만일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 살려고 했다면 앙상블 시절에 시집을 가려고 혈안이 되었겠지만, 결혼을 해서도 일을 계속 하고 싶은 욕망에 뮤지컬을 놓지 않은 것도 있다.”

▲ 신데렐라의 첫째 언니 가브리엘을 연기하는 정단영 (사진제공=엠뮤지컬)

- 앙상블로 9년을 지낼 때 부모의 반대는 심하지 않았는가.
“부모님은 제가 하고 싶은 걸 장려하는 스타일이다. 발레는 클래식한 장르인데, 뮤지컬이라는 전혀 다른 장르를 파고드는 것에 대한 걱정은 하셨지만 뮤지컬을 하는 것에 대한 반대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 앙상블 9년 차 되던 해에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 ‘내가 주연이라고요?’하고 스스로가 믿기질 않아서 계약서를 쓸 때까지 주연으로 발탁되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주연이 되었다는 감정보다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막상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니 중압감보다는 재미가 있었다. 앙상블을 할 때보다 대사와 노래가 많다 보니 객석에서 반응이 즉각 튀어나오는 재미가 쏠쏠했다.”

- 그러다가 다음 작품인 ‘위키드’에서는 다시 앙상블이 되었다. 이러다가 잊혀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은 없었는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보통 뮤지컬처럼 짧은 뮤지컬도 아니고 근 1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가야 하는 뮤지컬이 ‘위키드’라 당연히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주연을 했기에 앞으로도 계속 주연만 할 거야’ 라는 마인드는 없었다. ‘신데렐라’를 하기 전에 6개월을 쉬었다. 그동안 작품만 계속 하다가 반 년을 쉬는 동안에 ‘뮤지컬을 못 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은 있었다.”

- 앞으로 어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가.
“뮤지컬은 노래와 춤, 연기 세 가지를 잘 해야 한다. 정단영 하면 ‘쟤는 노래 잘 부르지’ 하는 식으로 한 가지만 떠오르는 배우보다는 노래와 춤, 연기 셋 모두를 잘 하고 싶은 배우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꿈이 있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다양하게 잘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은 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