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예술지원금을 받지 않는 '가오'도 필요해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예술지원금을 받지 않는 '가오'도 필요해
  • 이은영 기자/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05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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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연대포럼 ‘검열과 파행’ 열려

최근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지원과정에서 직원이 작품 심사 과정에 개입하거나, 지원이 결정된 예술가에게 포기할 것을 종용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반 반작용으로 한국문학작가회의와 대학로X포럼, 문화연대와 서울연극협회, 한국문화정책연구소와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주최하는 예술인연대포럼 ‘검열과 파행’이 5일 저녁 150 여명의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종로구 동숭동 SH아트홀에서 열렸다.

▲ 예술인연대포럼 ‘검열과 파행’에 참여한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예술의 생명은 비판과 반란...비판이 권력의 눈치 보는 시대

이날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포럼을 여는 말머리를 통해 “이번에 일어난 사태는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독재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라며 “예술의 생명은 기존 체제에 대한 비판과 반란이다. 기존의 것을 비틀거나 바꾸지 못하면 새로운 것이 나올 수가 없는데, 예술이라는 비판이 권력의 눈치를 보아서야 되겠는가. 반란과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사회에 예술은 없다. 우리의 예술을 펼치기 위한 각오와 의지가 필요하다”는 날선 비판을 가했다.

임인자 전 서울변방예술제 예술감독은 ‘표현의 자유와 검열, 허락된 표현이 아닌 금지된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는 첫 번째 발제를 통해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이 어제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뿌리가 유신시절, 더 나아가서는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가 만든 보안법과 신문지법, 위생경찰규칙에서 유래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의 식민지 문화 잔재, 독재정권의 연장선 아래에서 검열이 이뤄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의 예술진흥기구가 예술 검열의 기구가 되는 것은 예술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자 독재정치의 산물로 전락하는 것이라며 좀 더 나은 사회로의 진전이 아닌 독재로의 후퇴와 연대의 파괴, 고립에 이르는 삶의 파괴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경고했다.

서영인 문학평론가는 두 번째 발제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지원사업, 파행의 기록’을 통해 보통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의 발표가 통상적으로 1월에 이뤄지는 것에 비해 올해는 7월이라는 6개월의 발표 지연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사전에 기획되고 공모된 심의 일정이 지켜지지 않은 채 총 3번의 심의가 있기까지 각각 2~3개월의 공백이 있었다는 것이다.

▲ 예술인연대포럼 ‘검열과 파행’에 참여한 고연옥 극작가와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 임인자 전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과 서영인 문학평론가 (왼쪽부터)

창작산실 연극분야 지원과정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개입으로 인해 후보작을 포함한 102편의 작품 가운데서 32편이 삼사위원의 동의 없이 배제되어 70편이 최종 선정작으로 선정되기까지 한다. 문화예술지원에서 심의의 공정성과 독립성은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임에도, 사업공모에 지원한 문인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임의적인 판단에 의해 뭉텅이로 배제되어도 되는 대상으로 취급당했다.

심의위원들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존중되지 않는 한 심의의 공정성은 확보되기 어렵다. 문화예술인이 예술지원정책을 외면하고 정책의 진정성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을 국가가 초래하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라고 서영인 문학평론가는 지적하고 있다.

지금은 예술지원기금의 다각화를 고민해야 할 때

이날 열린 예술인연대포럼 ‘검열과 파행’의 하이라이트는 염신규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의 ‘무너져 내린 예술지원지관의 독립성: 예술지원구조의 퇴행을 바라보며’라는 세 번째 발제였다.

염 소장은 발제를 통해 사회는 진화하는 단계에 따라 검열이 맞물려 있다면서 서구에서도 예전에는 동성애에 대한 담론이 지원 분야에서 배제되었음을 지적하며, 사회가 유연해지면 예술의 자율성이 확대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검열을 통한 문화 사업 지원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수준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국가 중심의 예술이라는 프레임을 깨지 못하면서 국가적인 프로파간다가 강화되는 추세에 있다는 염 소장은 최근 문화 융성이라는 프로파간다가 이어졌지만 이는 정책 홍보 수단이라고 꼬집었다.

▲ 예술인연대포럼 ‘검열과 파행’에 참여한 염신규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작금의 문예진흥기금사업이 원칙과 방향에 맞지 않게 사용되는 이유에 대해 염 소장은 문광부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구조가 수직적이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지금의 문화진흥사업이 국가 주도로 되어 있기에 문화 재원이 국가를 통하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구조라는 점을 날카롭게 짚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염 소장은 예술지원기금의 다각화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기금의 다각화야말로 현재의 독선적인 구조를 견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안으로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예술지원금을 받지 않겠다는 예술인의 자존심을 갖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염 소장의 대안에는 의문점이 남는 게 사실이다. 예술적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예술지원기금을 거절하면 제작자와 예술가는 작품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루트로 제작비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고충이 과제로 남게 된다. 예술적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제작비까지 충당해야 한다면 우리 사회의 예술은 더더욱 고달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서는 서글픈 현실이다.

문화예술위, "정치적 검열 아닌, 사회적 논란 예방위한 우려 의견 제시한 것 뿐"

한편 이에 앞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9월 박근형 연출과 이윤택 연출의 지원금 배제에 ‘정치적 검열지원’이라고 문화예술계와 언론 등에서 문제 제기하자  이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예술위 직원이 연출가 박근형(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작품을 빼달라는 식으로 심의에 ‘개입’했다는 것과 관련해 박근형 연출가는 2013년 9월 국립극단에서 공연된 연극 <개구리>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논란, 2014년 광주비엔날레의 걸개그림 논란 등 공공 지원을 받은 예술가의 작품 활동이 야기한 사회적 논란의 연장선상에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라는 작품에 대해 예술위 직원은 실무자로서 우려 의견을 제시했을 뿐 심의에 개입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녹취에 나온 직원의 ‘정치적인 이유’라는 발언 역시 사회적 논란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려 했던 것이라는 입장이다.

보도에 인용된 <위원장 지시사항> 이메일 역시 해당 사업의 심의와는 관련이 없으며 광주비엔날레 걸게그림 논란 즈음(2014년 8월)에 사회적 논란 예방 등 사업 추진에 있어서 일반적인 유의사항을 지시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사업에서 희곡 분야 이윤택 연출가가 탈락된 사업은 신진 및 중진 작가의 창작을 지원하는 사업으로서, 이윤택 연출가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극인으로서  문체부 산하 극단과 극장에서 최근 2년간 상당 규모의 제작비가 소요된 공연을 여러 차례 한 상황 등을 고려했을 뿐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예술위는 사업의 지원 여부는 심의위원회를 거쳐 예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종 결정되지만 그동안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심의위원회의 결과를 수정, 의결한 사례가 있었다” 며 “이는 심의위원 의견을 존중하지만 최종 결정권은 예술위 전체회의가 가지고 있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다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지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고려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의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