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어린 왕자’ 어린이 관객을 확보하고자 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몸짓
[공연리뷰] ‘어린 왕자’ 어린이 관객을 확보하고자 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몸짓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1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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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과 영상으로 콜라보레이션한 이유

어린이가 함께 하는 발레는 ‘호두까기 인형’처럼 레퍼토리가 대중화된 지 오래다. 하지만 무용, 그 가운데서도 현대무용은 어린이 관객과 함께 하기에는 궁합이 먼 장르 가운데 하나였다. 활자나 대사로 서사를 익히기도 바쁜 연령대의 어린이에게 활자가 대사가 아닌 무용수의 몸짓만으로 서사를 익히게 만든다는 건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기에 말이다.

▲ ‘어린 왕자’의 한 장면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이번에 국립현대무용단은 어린이 관객을 위한 발레 레퍼토리에 뒤질세라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레퍼토리에 도전한다. 바로 ‘어린 왕자’. 그 유명한 생텍쥐페리의 원작을 현대무용으로 어린이 관객에게 이해시키고자 한다면 시각적인 효과가 절대적이라는 걸 감안이라도 한 듯 무대막에 화려한 영상을 한 아름 투사하기 바빴다. 막을 통해 투사된 영상에서는 비행기가 불시착하고, 토성의 얼음 고리마냥 지구를 감싸고 있는 온갖 우주 쓰레기 더미가 지구 주위를 나뒹굴고 있었다.

'어린 왕자'의 현란한 시각 효과는 전적으로 국립현대무용단만의 독자적인 성과라기보다는 영화감독 김지운을 영상에 투입한 결과물로 바라볼 수 있다. 시각적인 다채로움이 관객을 얼마만큼 집중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감각은 아무래도 무용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립현대무용단이라는 무용 단체보다는, 시각 매체를 전문적으로 다룬 영화감독의 센스가 필요했기에 김지운 감독과의 콜라보레이션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어린이 관객은 숨소리조차 죽이며 샤막의 다채로운 영상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런 협업을 통해 어린이 관객의 집중도를 높일 수만 있다면 어렵게만 인식되는 현대무용의 대중화, 나아가서는 어린이 관객과 동반 가능한 현대무용의 레퍼토리화를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공연이 ‘어린 왕자’였다.

‘어린 왕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무래도 뱀보다는 여우와 장미일 터. ‘어린 왕자’는 장미의 이미지를 무용수의 동작으로 다채롭게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한 떨기의 장미를 묘사라도 하는 듯 여성 무용수를 중심으로 붉은 옷을 입은 남녀 무용수가 주위를 둘러앉아 무용수의 체중을 어깨에 실어가며 중력을 넘어서고 있었다. 남녀 무용수는 바닥에 일렬로 누웠다가 도미노처럼 한 명씩 일어서는 몸짓을 통해 약동하는 장미의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었다.

▲ ‘어린 왕자’의 한 장면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세 명의 남녀무용수가 모자를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벌이는 장면, 처음에 모자를 쓰고 등장한 여성 무용수의 모자는 여성 무용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두 남자가 번갈아 쟁탈전을 벌이면 이에 뒤질세라 여자 무용수도 남자들의 머리에 있는 모자를 번갈아 쓰기 바빴다. 이는 생텍쥐페리의 원작에서 모든 걸 다스리고 싶어 하는 인간 군상, 또는 허영심을 보여주는 별을 상징하는 시추에이션으로 읽을 수 있었다.

막으로 투사된 영상 속 거대한 손을 피해 숫자만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숫자에 파묻히는 무용은 배금주의를 추구하다가 멸망당하는 인간 군상을 표상하고 있었다. 비행기 조종사와 어린 왕자의 마지막 조우는 온갖 고초를 겪고 난 다음 해탈의 경지에 들어서는, 혹은 유토피아로 입성하는 상황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어린이 관객을 의식해서였을까. 어린이 관객을 의식한 공연에서는 그 결말이 비극에 다다라서는 안 된다. 이를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어린 왕자’는 코끼리나 새로 읽을 법한 무용은 있어도 뱀을 형상화한 무용은 필자가 읽을 수 없었다.

▲ ‘어린 왕자’의 한 장면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어린 왕자가 뱀에 물리는 비극이 무대 위에서 형상화하지 않은 까닭은, 이번 무용이 성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호두까기 인형’처럼 앞으로 국립현대무용단이 어린이 관객을 위한 레퍼토리로 ‘어린 왕자’를 레퍼토리화 하겠다는 의지로 읽혀지고 있었다.

앞으로는 ‘어린 왕자’뿐만 아니라 어린이가 현대 무용과 친해질 수 있는 레퍼토리를 국립현대무용단이 개발할 수만 있다면 현대무용 버전 ‘호두까기 인형’처럼 온가족용 현대무용이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만일 '어린 왕자'를 레퍼토리화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어린이 관객이 이해 가능할 수 있는 편안하고 단순화한 안무를 현재 버전보다는 보다 많이 구성해야 하는 게 국립현대무용단의 과제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