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무엇 때문에 부인의 치마에 글을 남겼을까... 정약용 ‘하피첩’ 공개
다산은 무엇 때문에 부인의 치마에 글을 남겼을까... 정약용 ‘하피첩’ 공개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1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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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억 5천만 원에 낙찰 받은 3권의 책... 정약용의 ‘전서’가 담긴 유일한 저서

정약용 하피첩이 내년 일반에 공개되기 전에 언론에 먼저 공개되었다. 13일 오전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롤 통해 공개된 하피첩은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두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를 친필로 기록한 세 권의 서첩이었다.

▲ 13일 오전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롤 통해 보물 '정약용 필적 하피첩'이 공개되었다.

눈에 띄는 건 대개의 언론공개 행사가 환한 조명 가운데서 진행되지만 이번 하피첩 언론공개회는 어두운 조명 가운데서 진행되었다. 하피첩이 강한 조명으로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하피첩에 관한 설명과 Q&A가 이뤄진 것이다.

하피첩은 몇 가지 점에서 이채로운 보물 제1683-2호다. 첫 번째는 종이가 아닌 천(치마)로 만들어진 책이라는 점에서 눈에 띈다. 대개의 책은 종이로 만든다. 하지만 하피첩은 정약용의 부인이 시집 올 때 갖고 온 치맛감 위에 아들을 위한 교훈을 적은 책이다.

▲ 13일 오전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롤 통해 보물 '정약용 필적 하피첩'이 공개되었다.

그렇다고 100% 치맛감으로 만들어진 책은 아니다. 3권의 하피첩은 34면과 30면, 28면으로 구성되었기에 치맛감만으로 서책을 구성하기에는 치맛감이 모자라서 비단과 종이가 치맛감과 아울러 쓰인 책이다.

하피첩은 본래 3권이 완성본이 아니다. 맨 처음에는 4권으로 만들어졌지만 한 권의 행방이 묘연해서 현재 3권만이 세상에 공개된 상태다. 6.25 전쟁 이후 맨 처음으로 하피첩을 발견한 사람은 고고학자가 아닌 폐지를 주워 파는 할머니. 2006년 TV 프로그램 ‘진품 명품’으로 세상에 그 가치가 알려진 후 김민영 전 부산저축은행장의 손에 들어갔다가 경매를 통해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게 되었다.

▲ 13일 오전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롤 통해 보물 '정약용 필적 하피첩'이 공개되었다.

장약용 하피첩을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할 수 있던 건 경매에서 낙찰 받을 수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만일 정약용 하피첩을 경매로 진행했을 때 일반에게도 낙찰 기회가 주어졌다면 정약용 하피첩은 박물관이 아닌 일반 소장가의 품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할 수 있었던 건 당시 경매가 일반인은 참여할 수 없고 공공기관만 참여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정약용 하피첩은 국립민속박물관이 개장 이래 최고가인 7억 5천만 원에 낙찰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태까지 국립민속박물관은 경매가 1~2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을 소장한 적은 있어도 경매가가 5억 원이 넘는 작품은 정약용 하피첩이 유일무이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측은 하피첩을 국립민속박물관만 소장하는 게 아니라 복제본을 만들어서 다른 공공 기관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 13일 오전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롤 통해 보물 '정약용 필적 하피첩'이 공개되었다.

정약용 하피첩이 갖는 또 하나의 의의는 이번에 공개된 하피첩이 다산 정약용이 남긴 유일한 전서(篆書) 작품이라는 점이다. 전서는 여러 글자 가운데 전자체로 작성된 글씨를 의미한다. 정약용의 전서가 어떤 필체인가를 보기 위해서는 하피첩을 반드시 보아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정약용이 하피첩을 집필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약용은 이 책을 집필할 당시 강진에서 십 년 가량 유배 생활을 할 때다. 정약용의 정치적 입지가 최악인 상황에서 정약용의 두 아들이 경제적인 유혹이나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계도의 차원에서 작성한 저서. 정약용은 두 아들이 훗날 이 하피첩을 보고 다산과 어머니라는 두 어버이의 아름다운 은혜를 생각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언론에 공개했다고 해서 일반에 바로 공개되진 않는다. 10월부터 4개월 동안 보존처리 및 복제 과정에 들어간 다음 내년 2월 특별전시회를 통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