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마리아콤플렉스3- 박인숙의 숨겨진 저력
[이근수의 무용평론]마리아콤플렉스3- 박인숙의 숨겨진 저력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교수
  • 승인 2015.10.1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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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교수

박인숙은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무용가다. 로비스트들이 대우받는 우리 무용계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다는 이유거나 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서 학생들의 교육을 우선해야한다는 교육자적 양심이 강하거나 하는 이유일 것이다.

박인숙은 이화여대 무용과와 NYU(뉴욕대학) 무용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마사 그램(Martha Graham) 무용학교와 앨빈 에일리(Alvin Ailey) 무용학교, 호세리몬(Jose Limon) 무용학교에서 발레와 현대무용을 폭넓게 수학한 후 1988년부터 국내대학 강단에 섰다.

낙태의 비윤리성을 비판한 마리아 콤플렉스 외에도 남북분단문제를 다룬 <나누기 1>, <나누기 2>, 지구환경문제를 다룬 <흰디와 테디)등 현실 참여적 작품들을 서사적인 무용언어로 보여주면서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해온 무용가다.

내가 그녀의 작품을 의미 있게 본 것은 2000년 국제현대무용제(MODAFE)에 출품한 <그해 겨울(The Winter of Remembered)>이 처음이었다. 모태에 대한 그리움을 남녀 간 사랑의 추억으로 치환시켜놓은 작품이었다. 1991년의 <마리아콤플렉스 1>에서 2005년의 <마리아콤플렉스 2>로 넘어가는 연결선상에서 그녀의 일관된 생명관(生命觀)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 때 나는 이렇게 리뷰를 썼다.

▛그해 겨울이 사랑에 대한 추억으로 읽혀질 때 박인숙이 그려내고자 하는 그리움은 빨갛게 채색된 원형의 심장을 찢고 나오는 진홍색 원피스의 여인(방현혜)으로부터 시작된다. 실타래처럼 얽힌 긴 줄은 운명처럼 그의 몸을 한 남자(정순원)에게 연결시킨다.
(중략)
작품은 또한 엄마의 자궁을 뚫고 나온 생명체가 숙명처럼 간직하고 살아가는 모태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마리아콤플렉스> 이후 박인숙이 즐겨 선택해온 남성중심사회에서의 여성문제와 동일한 맥락에 서 있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누가 이들을 춤추게 하는가, 272쪽)

마리아 시리즈의 완성편인 <마리아콤플렉스 3>(2015.9.23~25)이 아르코예술 대극장무대에 올랐다. 한성대교 교수로서의 은퇴작이고 숨겨졌던 자신의 저력을 아낌없이 드러낸 회심의 역작이었다.  

무대 한가운데 한 쌍의 남녀(이다솜, 정재우)가 깊이 포옹한 채 서있다. 3면을 둘러싸고 설치된 반투명한 벽체 뒤로 쌍을 이룬 사람들이 한 발짝씩 앞으로 이동해간다. 여인들이 입은 옆트임 빨간색 드레스가 섹시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남자들은 모두 상체를 벗은 채다. 

벌거벗은 남자들, 거친 숨소리, 그룹섹스가 점철되는 장면들은 박인숙이 탐욕의 눈, 욕망의 노예, 엇갈린 탐욕, 붉은 쾌락 등 1장에서 4장까지 장면에 걸쳐 고발하고 있는 현대의 문란한 성풍속도다.

쾌락의 부산물인 태아들이 수없이 버려진다. 세상에 태어나고 싶었던 생명들이 뱉어냈을 비탄과 원망, 반항과 체념이 공포감을 자아내는 효과음향과 음침한 분위기조명을 통해 객석을 숨죽이게 한다.

한 여인을 둘러싸고 여덟 명 남자들이 대치한다. 여인을 감싸고 있는 핏빛처럼 붉은 치마폭이 끝없이 펼쳐지더니 무대를 가득 메운다. 불어 닥친 광풍에 파도처럼, 너울처럼 일렁이며 여인은 사라지고 남자들도 모두 그 속에 묻혀버린다. 온 몸을 하얀 천에 감싼 태아 하나만이 무대 가운데 홀로 남아 있다.

자궁 속의 태아는 이미 살아 있는 생명체다. 숨이 막히는 듯 온 몸을 비비꼬면서 애원하는 듯한 몸부림이 리얼한 고발처럼 다가오며 장내를 숙연하게 한다. 반투명의 벽체 뒤로 여인들이 행진한다. 그녀들의 회한과 기원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하늘이 열릴 것인가.

작품을 빛나게 한 요소로 양용준의 음악을 꼽고 싶다. 처음의 피아노반주로부터 시작하여 작품의 끝, 치유의 하늘에 이르기까지 전연 튀지 않으면서 장면마다 변화를 주며 절묘하게 무용수들과의 호흡을 맞춰주었다.

‘ㄷ’자형의 반투명 벽체로 무대를 앞과 뒤로 구분하고 현실과 회상을 동시에 표현해준 김종석의 무대디자인과 붉은색을 주조로 한 배경술의 의상도 인상적이었다.

10장의 구성 중에서 중복감이 있는 2~3개를 줄여 90분까지 늘어난 종반부의 지루함을 해소하고 은유를 위주로 한 작품 흐름에 조화되지 않는 직설적인 대사와 섬뜩한 영상을 조정한다면 이 작품은 마리아콤플렉스를 완결 짓는 수작일 뿐 아니라 2015년 최고의 국내작품으로도 손꼽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