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교감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해 -코펠리아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교감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해 -코펠리아
  • 김순정 성신여대 교수/발레리나
  • 승인 2015.10.1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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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성신여대 교수/발레리나

코펠리아 1막에 나오는 밀이삭의 춤을 추고 싶었다. 춤도 춤이지만, 그 장면에서 흐르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바이얼린 반주 음악 때문이었고, 뒤이어 나오는 슬라브 민요의 바리에이션까지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밀이삭을 귀에 대고 흔들며 연인이 사랑을 확인하는 짧은 2인무는 나와 인연이 없는지 춤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순간의 춤과 음악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예고재학시절 국립발레단의 <코펠리아>공연에 객원무용수로 잠깐 출연하면서 흥겨운 각 나라의 캐릭터 댄스(민속춤)에 매료되었는데, 그 이유 역시 감미로운 음악 때문이었다.

발레교수법 책을 읽다가 “무용수와 춤은 음악과 결혼했다”라는 구절을 만났을 때, 코펠리아의 기억이 떠올랐다. 클래식발레에서 음악은 떼어낼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폴란드의 춤 마주르카와 헝가리의 춤 차르다쉬 군무가 펼쳐지는 발레 <코펠리아>의 안무자는 민속춤에 폭넓은 지식을 가졌으며 바이얼린 주자이기도 했던 생 레옹(1821-1870)이다.

▲조세핀 보짜끼-당시 15세의 코펠리아 초연 발레리나,코펠리아를 위한 무대미술(1869)

생 레옹은 발레를 위해 직접 작곡을 하고, 시나리오 작업도 했으며, 춤도 추고, 연주도 한 비범한 예술가였다. 춤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니진스키의 황실발레학교에서의 음악성적이 최상위였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의 한성준은 한국춤을 집대성한 위인이자 피리의 명인이고 북의 고수였으며, 최현은 춤과 함께 장구와 구음 소리가 일품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춤에 능한 동서양의 예술가들이 음악에도 능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춤과 음악은 늘 한 몸으로 움직였다.

<코펠리아>는 침체되어가던 발레를 부흥시키고자 3년이란 기록적인 창작기간을 거쳐, 1870년 5월 25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작품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단독 상연되지 못한 채 베버의 <마탄의 사수> 오페라 상연 후에 초연되는 슬픈 역사를 지녔다.

그 해 7월 프로이센과 프랑스간에 전쟁이 시작되어 8월 오페라극장은 문을 닫았으며 안무가 생 레옹은 곧이어 심장 발작이 와서 아깝게도 49세에 생을 마감했다.

전쟁이 끝난 후인 1871년 <코펠리아> 재연이 이루어졌을 때는 프랑스 뿐 아니라 세계 각 국의 무대에 오르게 되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코펠리아>가 오늘날까지도 끊이지 않고 상연이 되는 이유에는 춤과 음악(레오 들리브 작곡)에 통달하여 이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안무자, 생 레옹의 재능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코펠리아 또는 푸른 눈을 가진 처녀 초연을 알리는 황실극장 광고

발레 <코펠리아>는 에른스트 호프만 원작 <모래남자>를 원전으로 한 푸른 에나멜 눈의 아가씨 올랭피아 이야기로 탄생했다. 인형 코펠리아를 사람이라 믿고 싶은 코펠리우스는 자신과 교감을 나눌 누군가를 직접 만들어내려는 꿈을 가진 인물이다. 피그말리온 신화를 비롯해 오래 전부터 인간이 품어 온 내밀한 욕망이 <코펠리아>에는 투영되어 있다.

영리하고 활달한 성격의 여주인공 스와닐다는 인형인 코펠리아에 흠뻑 빠져있는 프란츠를 구해내기 위해 용기를 내 코펠리우스의 집에 잠입한다. 그리고 마침내 코펠리아가 사람이 아니고 자동인형이란 사실을 밝혀내면서 연인인 프란츠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내용이 2막에 담겨있다.

안나 파블로바 순회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사랑받은 <코펠리아>에서는 역시 활달한 성격이었던 안나 파블로바가 스와닐다 역으로 춤추었고 발레 뤼스(러시아발레단)의 작품에서는 알렉산드라 다닐로바가 완벽한 스와닐다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어서 꿈을 잃은 코펠리우스의 존재는 잊혀지며 결혼식과 함께 마을광장에서 축제가 벌어지는데 주인공들의 2인무는 물론이고 시간의 춤, 새벽, 기도, 평화의 춤 등의 솔로와 군무가 일품이다.

<코펠리아>는 춤과 음악의 조화가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고, 다양한 춤을 보여주면서도 단순히 기교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