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시]그냥
[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시]그냥
  • 공광규 시인
  • 승인 2015.10.1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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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희 시인

그냥

                                         이순희 시인(1961~ )
                                         
치렁치렁한 변명도 필요 없고
날선 긴장감도 없는
헐렁한 그냥이라는

이 헐렁한 말의 옷 한 벌
머리맡에 걸어두었네
잿빛 도시엔
자동차만 질주하는데
그 도시 한가운데서
혼자 기진한 당신

어느 하루 아득한 날
그 치장기 없는 말의 옷을 입고
당신을 찾아갔네
그냥이라고
옷매무새를 매만지는 나에게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네
긴 시간 너머를 다 이해한다는 듯이.


*세속의 일상이라는 것이 치렁치렁한 변명을 달고 다니는 허접한 그 무엇이고, 경쟁으로 인한 날선 긴장의 그 무엇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미 이러한 변명과 긴장을 투과하여 헐렁한 자연스러움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달관한 삶의 기술을 체득하고 있다. 우리는 사무적이고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말의 갑옷보다는 헐렁하고 무른 말의 틈새에서 틈입할 기회를 갖게 된다. 무연한 자연스러움이 주는 표현의 백미를 읽는 기쁨이 크다.(공광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