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_자연을 품다’ 기자간담회 열려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_자연을 품다’ 기자간담회 열려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2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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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백년보다 더 오래된 한국 동식물 그림의 역사를 한눈에
▲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_자연을 품다’ 기자간담회에서 설명하는 간송미술문화 백인상 실장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DDP 디자인관에서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_자연을 품다’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 참석한 간송미술문화 백인상 실장은 전시회 타이틀 가운데 ‘화훼영모’에 대해 “‘화’는 꽃, ‘훼’는 풀, ‘영’은 새의 깃털, ‘모’는 털 달린 짐승을 뜻하는 단어로 모두 합치면 꽃과 풀, 날짐승과 길짐승을 의미한다”며 “모든 동식물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 ‘화훼영모’”라고 밝혔다.

“화훼영모는 동양화에서 산수화나 인물화 못지않은 큰 장르로 화가를 뽑는 ‘화원취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던 장르”였다는 백인상 실장은 “꽃과 새, 곤충과 식물을 그린 자연의 일부는 우주만물과 삼라만상을 함축한다”며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그림을 보는 이가 자신을 성찰하고, 우주 만물을 깨닫는 ‘소우주’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보는 것만 못하고, 마음으로 보는 것이 이치로 보는 것만 못하다”는 문구를 인용한 백인상 실장은 “그림 속의 잉어는 등용문을 뜻하고,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며, 포도나 석류는 다작이나 다산과 같은 현세적인 욕망이 동식물을 다룬 그림 안에 투영된 결과물”로 보고 있었다.

서양은 도상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동양화는 도상학에 대한 조예가 있어야 온전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백인상 실장은 “서양의 문화적인 이미지는 설명이 없어도 파악한다.”

“예를 들어 사과를 들고 있는 소녀는 백설공주, 사과에 화살이 박혀 있으면 빌헬름 텔로 파악한다. 하지만 우리 그림은 설명이 없으면 알아듣지 못한다”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그림과 관객이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아갈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_자연을 품다’에 전시된 김홍도의 '하화청정' (사진제공=간송미술문화제공)

이번 전시의 콘셉트는 무엇일까.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_자연을 품다’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동식물을 그린 그림 가운데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그림을 망라하는 전시회로 볼 수 있다. 고려 공민왕 시기부터 조선 말기 관재 이도영까지 총 55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의 변화를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_자연을 품다’에 전시된 신윤복의 '나월불폐' (사진제공=간송미술문화제공)

그렇다면 화훼영모가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가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는 중국 남방 화풍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는 뿔이 긴 남방 물소가 없다. 하지만 당시 화훼영모화에는 뿔이 긴 남중국의 물소가 묘사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물소를 화가들이 중국의 화풍을 이어받아 그렸다는 걸 방증한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주자성리학을 발전시킬 때에는 창강 조속이 한국의 동식물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진경시대에 이르러서는 겸재 정선에 의해 독자적인 화훼영모화 기법이 발전되고 화재 변상벽, 단원 김홍도, 긍재 김득신 때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다가 추사 김정희가 청조고증학을 받아들이자 청조문인화풍이 조선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는 화훼영모화를 이념화시킴으로 말미암아 화풍의 후퇴를 초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고려 말에서 조선 중후기까지 화훼영모화의 태동과 전성기, 쇠퇴기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전시가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_자연을 품다’ 전시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