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칼럼]영원한 나르시스트, 거장 천경자의 죽음
[전시칼럼]영원한 나르시스트, 거장 천경자의 죽음
  • 박희진 객원기자 / 한서대 전통문화연구소 선임 연구&
  • 승인 2015.10.2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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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과 위상에 정부 훈장조차 추서하지 않기로 한 것에 납득하기 어려워
박희진 객원기자 / 한서대 전통문화연구소 선임 연구원

미술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천경자 화백이 향년 91세로 지난 8월 6일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타계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위작 논란 이후 외부와 연락을 두절하고 생활해 온 천경자 화백의 부고소식은 미술계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림은 내 혼의 핏줄’이라 이야기 했을 정도로 그림에 커다란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화백이기에 위작논란에 이은 그의 안타까운 부고 소식은 미술계 모두가 숙연할 따름이다.

천 화백은 금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오늘날 채색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여성이 지닌 섬세함과 풍부한 감수성으로 채색화의 특별한 조형예술을 탄생시켰고, 작가의 삶과 내면의 세계를 투영해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했던 한국미술계의 거장이다.

화가로의 삶에 어둠이 드리워 진 것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인 <미인도> 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이 커다란 이슈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일평생을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어온 화백에게는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화백이 타계하고 그 간 업적과 위상에 훈장조차 추서하지 않기로 한 데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그는 1998년 서울시에 93점의 작품을 기증해 서울시립미술관에 상설 전시를 열어오기도 하였다.

그 간 활동의 업적을 인정받은 상황에서 훈장을 승급하지 않는다는 정부당국의 결정을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다. 언론사 보도에 의하면 위작 논란 이후에 외부와 인연을 끊고 칩거에 들어갔던 화백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는 이유로 지난해 2월부터 대한민국 예술원에서 지급하는 월 180만원의 수당까지도 중단했었단다.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2003년 뇌출혈로 천 화백이 쓰러져 투병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예술원 측은 지원금 지급을 위해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의료기록 등을 요청했다고 한다. 천 화백의 곁을 지키던 큰 딸은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이에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지원금을 중단 한 것이다.

필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평탄하지 못했던 미술계 거장의 죽음 앞에서 안타까움 그 이상의 먹먹함을 느낀다. 천 화백이 평생 쌓은 미술계 명예까지도 헛된 명예가 되어버린 그의 죽음 앞에서 그가 주장했던 위작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았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살해사건인 10·26사건 이후에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산을 압류하는 과정에서 천 화백의 <미인도> 작품이 발견됐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하고 1991년 이 작품을 공개 전시했는데 작품을 본 화백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 한 것이 위작논란의 발단이다.

여기에 미술관 측은 진위 감정을 의뢰했고, 감정단은 ‘진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채색화는 오랜 시간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가인 화백이 자신의 작품을 알아보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도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화백은 격하게 분노하였다.

이후 화백은 법정에 서게 되는데, 법원에서조차 ‘판단 불가’ 판정하였고, 이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 사건으로 구속된 위조범인이 자신이 <미인도>를 위작했다고 자백하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으로 더 큰 이슈를 만들었다.

그림을 그렸다는 작가는 그리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정작 위조한 범인이 그림을 그렸다고 주장하는 상황에 이 그림은 여직 ‘진품’으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하거나 수사를 진척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위작논란은 굴곡진 삶을 살다간 천 화백 개인사로만 보기는 어렵다. 창작의 증언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현실을 바로보고 미술계는 긴장해야 할 것이다. 타계한 천 화백은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더 이상 말이 없다. 그러나 천 화백의 작품만이 위작의 타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순탄치 못한 삶을 살다 간 천 화백의 삶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작업에 몰두해 그림을 탄생시켜온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로하는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서울시에 기증한 93점의 작품 가운데 2002년 첫 상설전시 때 선보이지 않았던 6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진품’ 관람이 어려웠던- ‘생태’(1951作), ‘여인들’(1964作), ‘바다의 찬가’(1965作) 등의 작품도 전시된다. “내 그림들이 흩어지지 않고 시민들에게 영원히 남겨지길 바란다.”던 천경자 화백의 전시는 상설전시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