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 천 작가는 아니라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은 맞다는 아이러니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 천 작가는 아니라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은 맞다는 아이러니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27 18: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인도가 진품 아니었음에도 분위기 휩쓸려 입 다물어

* 기사 1에서 이어집니다.

이번 기자간담회는 천경자 화백이 작고하고 난 두 달 후에야 유족과 언론에게 밝히는 게 다가 아닌 자리였다. 천 화백의 생전에 파문을 일으켰던 ‘미인도 위작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연 자리였기 때문이다.

김정희씨는 미인도 위작 논란에 대해 “당시 (유족이) 한국에 있었기에 언젠가는 밝혀질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흐지부지됐다”면서 “자식(천 화백이 그린 그림)을 몰라보는 엄마가 어디 있겠느냐. 당시 사건으로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 27일 오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천경자 화백 추모에 관련한 유족의 입장을 알리는 기자간담회에서 답변하는 사위 문범강씨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씨의 남편인 문범강씨는 당시 미인도 위작 논란에 대해 소상하게 입을 열었다. 문범강씨는 “당시 미인도 사건 때 서울에 와 있었다. 미인도의 가짜 그림이 홍보 차원에서 프린트되어 보급될 때였다”며 “하루는 (천 화백의) 제자가 ‘선생님의 미인도가 프린트되어 팔린다’고 말씀드렸더니 천 선생님이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림을 가져와라’고 해서 보여드린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문범강씨는 “당시 천 선생님이 그림을 보고는 ‘내 그림이 아니다. 못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국립현대미술관 직원이 ‘죄송하지만 이 작품은 미술관이 소장할 당시에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작품입니다. 보관되어야 할 작품이기에 돌려주십시오’ 하는 요청을 받아서 돌려주었다”고 소상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그 이후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돌아갔다. 천 화백은 미인도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하는데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진품이라는 사태가 발생했다.

문범강씨는 “당시 천 선생님의 물감과, 그림에 사용된 물감의 재질이 같다는 이유로 진품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그림에 쓰인 물감은 여유가 있는 동양학과 대학생이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석채’라는 물감이었다”라며 단지 물감 재료가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진품 판정을 한 국립현대미술관 측의 해명을 일축했다.

“더불어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림을 미학적으로도 분석하지 않았다”고 추가로 공개했다. 문범강씨는 “그림과 천 선생님의 다른 연대 그림의 입과 귀, 머리 등을 비교하는 미학적인 분석을 했는데 하나도 맞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 천경자 화백의 장남인 이남훈 팀-쓰리 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회장과 차녀 김정희 미국 메릴란드주 몽고메리 칼리지 미술과 교수, 사위 문범강 미국 조지타운대 미술과 교수와 며느리 서재란(차남인 고 김종우의 아내) 세종문고 대표가 27일 간담회를 가졌다.(왼쪽부터)

문범강씨는 “당시 작품을 감정한 위원 가운데에는 ‘(천 화백이 그린 진품이라는) 분위기에 휩쓸려 입을 다물었다’는 분이 있는가 하면 ‘마지못해 수긍했다’는 분도 있었다”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이 가장 기본적인 미학적인 분석도 간과한 측면을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공개했다.

“집단이 한 개인을 누르는 건 쉬운 일”이라는 문범강씨는 “작가로서 미인도 위작 논란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수치”라면서 “이 사건을 끝까지 추적해서 밝히지 않은 건 문화부 기자들의 책임”이라며 문화를 담당하는 매체 기자들도 간접적으로 질타했다.

천경자씨를 왜 장녀 이혜선씨가 돌보았을까. 이에 대해 김정희씨는 “언니가 미국으로 떠날 때 어머니의 금융 재산 전권을 언니가 독점하고 운영했기에 어머니 치료비 등의 의료비가 마련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명 작가가 작고한 다음에는 그가 남기고 간 유품 때문에 자식들이 얼굴을 붉히는 소송전이 일어나는 일은 허다하다. 그렇다면 천 화백 작고 후 유가족 간의 소송전이 이어질까.

▲ 27일 오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천경자 화백 추모에 관련한 유족의 입장을 알리는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장남 이남훈씨

이 부분에 대해 김정희씨는 “어머니의 작품을 마음대로 파는 소유물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작품을 팔려고 해도 팔 작품이 없다”며 “말 못하고 침묵한 건 어머니가 남긴 작품 때문에 자식들 간에 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보도가 있을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희씨는 언니가 소장한 어머니 작품에 대해서도 “언니가 어머니 작품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어머니의 작품이 자산 기치가 있는 소유물로 생각했다면 (어머니 생전에 작품을) 많이 받아놓았겠지만 누가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 그림의 상속권에 대한 논쟁이 있을 거라는 우려를 일축했다.

기자간담회에 모인 유가족은 장녀 이혜선씨가 유족의 대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천 화백의 추모식은 오는 30일 오전 10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거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