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근수 경희대 명예교수/무용평론가
[인터뷰] 이근수 경희대 명예교수/무용평론가
  • 인터뷰·정리/이은영 편집국장·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31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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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좋은 관객 되는 방법 가르쳐라" 회계학 전공 교수로서 무용평론가라는 아이러니한 시각 있어
▲무용평론가 이근수 경희대 명예교수

무용 평론가 이근수 교수. 이근수 평론가는 회계학을 전공했고 대학에서 회계감사와 차, 예술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경희대에서 30년을 근속하는 동안 한국회계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경영대학원에 국내최초로 문화예술경영학과를 설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회계학의 기본이 숫자의 정확성이듯 이질적인 회계학과 무용의 만남에서 그가 평론의 길을 택한 것은 ‘참을 수 없는’ 숫자적 비교분석 습관이 DNA화 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 스스로 10가지의 작품평가 기준 (본지 인터넷 신문 2013.12.26.일 기사 참조)을 만들었고, 그리고 그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무용 공연을 1년에 100회 이상 접한다. 거기에 그가 섭렵한 무용 관련 독서량도 방대하다. 외국에 교환 교수 등으로 나갈 때도 꼭 무용이 있는 곳을 택했다. 그 모든 것은 오로지 ‘무용’공부를 위해서이다. 현지 교수들의 강의를 듣고, 토론을 거치며, 이론의 토대를 차곡차곡 쌓았다. 서양에서 배운 서양춤 이론에, 태생적으로 한국인이기에 한국의 전통춤과 서양 무용에 대한 산 지식과 평가의 잣대, 그리고 좋은 작품에 빠져드는 감성을 갖춘 평론가다. 무용관련 저서도 두 권이나 낸 그는, 명실공히 ‘전문성’을 갖춘 무용평론가다.

하지만 평론가 이근수는 무용현장에 직접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객관성에서도 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따라서 무용계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직언을 하는 것에도 자유롭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무용계의 가장 큰 문제로 대학의 교수들이 무용단 운영을 한다는 점을 들었다. 교수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에 학생들이 넓고 깊이 있게 무용을 들여다 보고 자신만의 춤을 개척해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일부 무용제와 콩쿠르에 대한 비판도 아끼지 않는다. 기량이 뛰어난 우리 무용수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정당당하게 키워야 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평론가 이근수 교수는 무용 뿐 아니라 우리 차의 순정한 맛에도 깊이 천착해 있다. 차에 관련한 저서도 세 권을 집필했다. 이 교수의 삶은 차와 닮아 있는 예술이다. 무용과 차, 시와 그림을 사랑하고, 그 궁극의 선을 향해 닦아가는 저자의 세계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 본다.

본지에 무용평론을 기고하고 있기도 한 이근수 교수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무용과 차에 대해 들어봤다.

 

▲ 회계학자인 무용평론가 이근수 교수

무용과 교수, 제자를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 있어

회계학을 전공했음에도 무용 평론을 쓴다는 건 특이한 경력이다. 무용 평론에 어떻게 입문하게 되었는가.
"회계와 무용은 비슷한 게 많다. 회계 감사는 재무 재표를 전문가가 보고 제대로 표현되었는가를 평가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무용 평론은 무용을 보고 관객에게 예술성을 전달할 만한 작품인가 하는 것을 평가하는 작업이다. 평가하는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평가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무용 평론을 해온지 20년이 된다. 그런데 무용계에서는 '웬 아웃사이더가 평론하느냐'하는 시각도 있다. 공연 가운데 무용 평론가가 가장 적다. 몇 안 되는 무용평론가도 무용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평론가가 많다. 나처럼 무용 관계자가 아닌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사는 이가 많다.

무용 평론을 하기 위해 나름 공부를 많이 했다. 미국에 교환교수로 1년씩 총 3번을 다녀온 적이 있다. 교환교수로 갈 때 반드시 무용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총 3번에 걸쳐 미국 학교의 도서관에 있는 무용 관련된 서적은 모두 읽고, 무용 강의를 듣고, 미국의 무용 교수와 의견을 나누었다. 한국의 무용 평론가는 나를 무용의 비전문가로 폄하할지 모르지만 그 누구보다 많은 무용 서적을 읽고 미국의 무용 교수를 만났다. 전문성이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무용계가 갖는 약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미국 무용과 교수는 학생만 가르친다. 또한 미국의 안무가는 안무만 담당한다. 영역을 나누니 전문화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무용계는 교수라는 직함은 보너스고, 무용계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가 많다. 무용 교수는 미래의 무용가인 학생에게 좋은 무용을 어떻게 보고 만들어야 하는 가를 가르쳐야 한다.

무용을 하려면 무용 외에도 미술과 의상, 무대 등 전반적인 체계를 아울러 알아야 한다. 춤만 가르쳐서는 안된다. 교수가 학생을 하나의 무용가로 자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학생을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무용과 교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 학생에게 좋은 관객이 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좋은 관객이 되려면 공연장에 관객보다 먼저 앉아있어야 한다. 무용 공연을 보면 가장 늦게 객석에 앉는 이들이 무용과 교수들과 제자들이다. 관객은 손님이다. 무용 공연이 관객을 위해 보여주는 것이라면 주인은 가장 먼저 앉아서 무용 관람하는 관객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는데 거꾸로 되어있다."

예비 무용가, 스승 외 다양한 무용 많이 보아야 식견 생겨
 앞에서 지적한 문제들은 무용 관객층이 얇기 때문에, 무용단이 살아남기 위해 파생되는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무용 공연장을 가보라. 무용가와 가족들이 대부분이지 일반 관객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용 관객층이 얇으니까 성장하지 못하는 거다. 무용단이 성장하려면 무용계가 무용단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키워야 맞는 것이다. 관객을 위한 좋은 작품이 나와야 하는데 무용 말고도 강의나 작품 심사 등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나라 무용가들은 돈이 많이 들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고 수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돈이 많이 가야 할 대상은 무용수다. 한데 무용수에게는 돈이 쥐꼬리만큼 들어가고, 정작 무대 미술하거나, 음악, 의상을 제작하는 사람에게 돈이 뭉텅이로 들어간다.

무용은 음악이나 미술같은 분야에도 정통해야 한다. 그런데 관련 분야를 잘 모르니 하청을 주듯 관련 분야에 많은 돈을 주고 맡길 수 밖에 없다. 무용만 배우는 것이 다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대학 재학 중 섭렵해야 학교에서 독립하고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 때 외부에 맡기는 비율이 줄어든다.

외국의 무용가 중 어떤 이는 의상을 직접 만들기까지 한다. 자신의 안무에 가장 맞는 의상을 외부에 지불하는 제작비 없이 만들 수 있게 된다. 무용가가 타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다른 분야에 지불될 돈이 줄어들기에 무용수에게 지불되는 돈이 지금보다 많아진다.

무용 교육은 종합적이어야 한다. 대학을 나와도 전문 무용단에 입단하는 비율이 낮다. 그렇다면 무용단으로 흡수되지 못하는 무용과 학생들이 무용과에서 종합적인 예술 교육을 받을 수만 있다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무용 의상 제작이나 강의, 평론, 지방의 공연장 등에서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1세대 무용가는 학교를 졸업해도 설 자리가 많았지만 2~3세대 무용가에게는 설 자리가 점점

▲한국 무용대학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이근수 무용평론가

좁다. 그래서 요즘 무용과가 학교마다 점점 폐쇄되고 있는 추세다. 무용을 가르치는 커리큘럼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학생들에게도 많은 무용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굉장히 폐쇄적이다. 다른 무용 작품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 기본이고, 다른 무용을 보지 못하도록 만든다.

다른 좋은 무용을 제자가 보면 불만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제자는 등록금을 내기도 바쁘다. 제자에게 티켓값이 비싼 외국무용을  보이는 것보다 무용을 많이 보게 만들어야 옳다. 처음부터 좋은 무용만 보게 한다고 무용을 보는 눈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제자는 교수만 바라보고, 교수가 만드는 작품에만 출연하고, 시야가 좁아지는 부작용이 생긴다. 교수의 눈 밖에 나면 갈 데가 없는 것도 문제다. 이러면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관객은 무용을 어렵게 생각하고, 무용을 찾지 않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제자들이 돈을 내고 관람하게 만든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까지 관람한 무용 가운데서 가장 좋았던 무용과 최악의 무용을 손꼽는다면.
"최근 3년 동안의 무용으로만 본다면 가장 좋았던 무용은 국립무용단의 '회오리'와 김용걸의 '인사이드 오브 라이프', 국수호무용단의 '용호상박'이다. 이름 높지 않은 무용가의 작품에서 의외의 작품성을 발견할 때도 있다. 김현상, 김성룡, 이나현, 최경실 무용가가 만드는 작품이 좋다.

반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무용은 국립무용단의 '토너먼트'와 '묵향'이다. 무용으로 보기도 어렵지만 국립무용단의 레퍼토리로 손꼽기도 뭐한 작품들이다. '토너먼트'의 의상은 한국이나 중국, 일본의 의상이 아닌 국적 불명의 의상이다. 빨강과 파랑, 선과 악이라는 대비의 전달도 약했다. 그러다보니 무대는 화려했지만 공허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미, 아직' 같은 작품은 컨템포러리가 대단한 것처럼 포장되었지만 막상 보면 조악한 작품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은 한국의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집단이기에 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시도를 해서도 안 된다. 완성도 있는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레퍼토리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호평 받는 작품이 '불쌍'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국립현대무용단이 만든 것이 아니라 안애순 단장이 단장으로 발탁되기 전에 안애순 단장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단장이 이전에 만들어 놓은 작품을 국립현대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내놓는다는 건 국립현대무용단의 아이디어가 빈곤하다는 걸 보여준다."

국립이기에 실험도 필요한 것 아닌가?
"국립현대무용단은 1년에 신작 한 작품만 내놓아도 충분하다. 그런데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한다. 젊은 작가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컨템포러리를 시도하는 것도 예산 낭비다. 중요한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콩쿠르에 입상하기 위해서는 특정 스펙을 갖춰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 들 때 있어
- 콩쿠르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예술의 역량은 분산되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역량이라는 것이 몇 사람에게 집중되다 보면 예술의 다양성과 창의성은 없어져버리고 만다. 콩쿠르를 가보면 항상 내가 낙점하는 무용은 꼴찌를 한다. 반면, '뭐 저런 작품이 다 있다'하는 작품이 대상을 받는다. 콩쿠르에서 잘못된 작품이 수상하는 건 세금 혹은 등록금을 낭비하는 것이자, 콩쿠르의 몰아주기 풍토는 예술을 망치는 거다. 콩쿠르에 입상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스펙을 맞추어야 하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평론가의 평가가 절대적인 건 아니지 않는가.
"무용계에서는 제가 작품을 보는 눈이 없는 게 아닌가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작품을 볼 줄도 모르는 사람이 평론을 한다고 간주하고 내가 무용 평론하는 걸 무시해야 한다. 하지만 평론가의 기준은 전문성과 객관성이다.

나는 무용계와 아무 관련이 없다. 객관적일 수 밖에 없다. 일 년에 무용을 백 편 이상, 20년 동안 관람하며 평론집 두 권 낸 평론가가 전문성이 결여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거다. 전문성과 객관성을 가진 나의 식견이 엉터리는 아니다."

▲ 차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의 표정은 밝았다

차에 대한 저서를 세 권 출판했다. 세 권의 책을 집필하는 가운데 변화가 있었다면.
"무용을 평론한지가 20년인데 다도에 빠진 건 30년째라 차에 대한 사랑이 더 각별하다고 본다. 우연한 기회에 차를 접했는데 차가 좋더라. 그렇게 차를 마시다 보니 30년이 흘렀다. 교수라는 직업은 무언가에 빠져드는 직업이다. 회계와 무용에 몰입하듯 차에 빠져든 거다. 교수는 말하는 것과 쓰는 것이 본령이다. 그래서 차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다.

첫 저서는 '풀잎에 띄우는 연서'였다. 차에 대한 나의 첫사랑, 즉 차를 어떻게 마시게 된 계기를 다뤘다. 두 번째는 '푸른 화두를 마시다' 그리고 세 번째로 '그리움의 차도'를 집필했다. 무용은 좋아하는 것이라 거리를 어느 정도 두어야 한다. 만일 무용과 하나가 되면 객관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차는 사랑하는 것이라 하나가 되고 싶다. 차에 대해 이렇게 빠져들 수 있었던 건 차에 대한 그리움 아닐까 싶다."

한.중.일 차 문화의 특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중국의 차는 '차덕', 일본 차는 '다도', 한국의 차는 '차의 미'로 이야기하고 싶다. 중국은 차 문화가 5,000년 이상 이어진 가장 오래된 나라다. 그러다 보니 중국은 차를 물이나 약으로 마신다. 일본은 차를 마실 때 굉장히 복잡한 의식을 가미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차의 예절을 지키기는 해도 차의 맛, 차를 나누며 즐기는 분위기나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차 마시는 걸 '멋의 발현'으로 생각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