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금연주자 이유라
[인터뷰] 해금연주자 이유라
  • 인터뷰·정리/이은영 편집국장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31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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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대중화와 한국 문화 지킴이 되고 싶어, 그 역할 우리 세대가 짊어져야"
► 해금 연주자 이유라

중견 해금연주자 이유라가 19세기 후반 8명창에 속하는 김세종 선생의 산조로 깊은 울림을 주는 무대를 만든다.

그간 크고 작은 무대에서 전통과 창작곡을 넘나들며 연주와 음반 작업을 해 오던 이유라는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연주를 하면 할 수록 전통의 뿌리 깊은 진한 맛에 대한 갈증으로 목마름을 더 이상 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라는 국립국악고를 입학할 당시 시창청음을 만점 받을 정도로 음감이 뛰어나다. 작곡가의 곡을 들으면 그 스스로 그 곡에 빠져들어 작곡가가 정한 제목과는 다른 제목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히려 작곡가들이 이유라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한다. 그건 그저 즉흥적으로 나오는 느낌이나 감상이 아닌 그가 지금껏 천착해 온 우리 소리에 대한 깊은 내공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그녀는 오는 11월 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와 고대소설 춘향전의 두 공간을 현대적 시각으로 읽어낸 해금산조를 선보인다.

평소 그녀는 깊이 있는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연주 뿐만 아니라 장단과 노래 등 국악 전반에 관한 뿌리를 섭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국악의 미래를 지금 우리 세대가 짊어지고 가야할 역할이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그녀가 해금을, 국악을 연주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며 목표이다.

가을바람이 제법 찬 기운을 몰고 오는 저녁 시간, 그녀의 연습실에서 이유라가 추구하는 음악과 연주에 대한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사랑, 그리고 사람. 산조가 어우러지는 깊은 소리, 좋은 맛 내고 싶어

지금까지 다섯 번의 개인연주회를 열었고 오는 11월 7일 연주회를 갖는다. 이번 연주회는 어떤 컨셉트와 내용을 담고 있나.
"춘향가를 전부 부르면 소요되는 시간이 5시간 30분이나 된다. 이를 가락을 뽑아서 소설에 맞게 30분으로 줄였다. 다섯 악장을 주제별로 나누고 악장 안에서 장단이 다양하게 변한다. 기존의 장단대로 하면 느린 장단에서 빠르게 나아간다.

하지만 이야기의 템포를 따라야 했기에 이야기에 맞는 장단을 섞어 넣었다. 창을 부르면 말로 이야기가 전달되지만 해금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도라 악장 별로 나레이션도 넣어야 했다. 나레이션이 '아니리'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나레이션은 현재 우리가 쓰는 용어와 표현을 쓴다.

산조는 역사가 깊다. 몇 백 년의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거다. 그럼에도 산조라는 타이틀을 붙인 이유는 내 이름을 빛내기 위해 붙인 게 아니다. 산조가락은 판소리나 시나위에서 따온 거다. 이 가운데서 노래를 빼고 기악으로 연주하는 것이 산조다. 이번 연주에서 산조라는 의미를 부여한 게 바로 이런 맥락이다. 노래를 뺀다 해도 해금에 맞게 편곡하는 게 중요하다."

춘향가는 남녀간의 사랑이 중요한 주제다. 이번 연주 역시 남녀간의 사랑이 테마인가.
"춘향가처럼 원본이 있는 노래를 연주할 때나 창작곡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과 '사랑'이다. 연주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스토리도 전하는 게 중요한데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중요시하는 게 사람과 사랑이다.

대중은 국악이 아닌 서양음악에 익숙하다. 그래서 국악과 서양음악이 접목된 퓨전음악을 연주한다. 그런데 퓨전음악과 같은 창작음악만 들어서는 국악 고전이 갖는 깊은 맛을 모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국악이 잘 맞는데, 그걸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다. '국악'하면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많다."

30년이라는 연주 경력으로 봤을 때 개인 연주회가 조금 부족한 것 아닌가.
"30년이라는 시간 동연 연주는 많이 했다. 하지만 독주회를 준비하고 발표하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명과 연주한 연주회는 많다. 하지만 단독으로 한 개인연주회는 다섯 번이었다. 창작곡을 연주할 때도 자칫하면 가벼운 느낌이 들 수 있어서 연주회 경력에서 제외한 면도 있다."

 '이현의 농'이란 단체를 이끌고 있다. 해금주자로 이뤄진 것 같은데 어떤 활동들을 하는가?

"2중주나 4중주 등 해금 연주자가 모여 함께 해보자는 취지에서 모이게 되었다. 해금 만으로 대금이나 가야금, 거문고 등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악단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해금을 알리자는 의의를 갖고 출발했는데, 해금이라는 악기는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탄성이 달라져서 음색이

 

달라진다.
서양 현악은 주법이 정해져서 어느 정도 일정한 음색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악기는 명주실로 타는 거라 서양 현악과 달리 연주자마다 소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다른 소리의 혼합으로 인해 음악이 어우러지는 매력이 있다. '이현'은 말 그대로 2현이고 '농'은 질기다는 의미를 갖는다. 1996년부터 매 해 정기적으로 연주를 갖는다."

국립국악예고와 학부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박사까지 국악으로, 소위 말하는 국악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처음부터 해금을 좋아서 택했을까하는 궁금증이 인다.
"국악고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 친구 분이 국악을 권유했고,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음악을 하는게 좋겠다고 판단하신 아버지의 뜻도 있고 해서 국악고에 들어갔다. 국악고에 떨어지면 원래 꿈인 영어통역관의 길을 가려고 했는데 덜컥 붙었다. 노래를 좋아해서 판소리를 하려고 했는데 당시 친오빠가, '득음을 하려면 산에 가서 피를 토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며 말렸다.

거문고를 하려고도 했는데 손이 너무 유연해서 거문고는 못한다고 퇴짜를 맞았다. 거문고를 하려면 손이 빳빳해야 한다고 하더라. 입시에서 시창 청음을 했는데 만점을 받았다. 당시 귀가 예민한 학생은 해금을 해야 한다고 해서 해금을 전공하게 됐다.

중학교 때만 해도 성적이 상위권이었는데 국악고에 들어와서 생각보다 점수가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배가 나를 불러서 '해금으로 성공하고 싶냐'고 묻더라. 해금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대답했더니 '이 정도 해서는 어림도 없다, 하루에 7시간 씩 해금을 연습하라'는 조언을 남겼다. 1학년 가을부터 이를 악물고 연습만 했더니 2학년 올라가서는 1등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해금을 연주한 친구들을 제치고 1등을 해보니 국악이 재미있다는 걸 느꼈다. 해금 외에도 친구들이 연주하는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대회에 나가서 여러 상도 타니 아버지는 '이제부터 우리 딸이 잘 풀리나보다' 하셨다."

내 연주의 스승들, 인물보다 깊이있는 전통에 빠져

국악을 또는 해금을 하는데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이 있다면.
"지금은 작고한 이상규 교수님이 있었다. 당시 KBS 국립관현악단의 지휘를 한 분으로, 친구들이 연예인을 좋아할 때 나는 이 선생님이 너무나도 좋았다. 손 한 번 잡아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의 분이셨는데 알고 보니 한양대 교수님이었다. 그래서 한양대에 간 거다.

국악고 다닐 당시 강사준 선생님에게 배웠다. 내가 고3 때 서울대로 발탁된 분인데 내게 '왜 서울대 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했다. 하지만 연주만 잘하면 됐지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서울대에 가지 않은 것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성적이 조금 안된 부분도 있었을거다. (웃음)

이상규 교수님이 제 졸업연주회 연주를 듣고는 '진짜 해금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그런데 너, 사랑은 해봤니? 사랑을 꼭 해봐야 한다'는 한 마디를 남기셨다. 대학교 다닐 적에는 해금이 너무 좋아서 이성에 관심이 없던 때였다.

음악 활동 중반 이후에는 주영익 교수님의 영향이 컸다. 중견 연주자가 되고 나서는 어느 한 인물이 아니라 깊이 있는 전통에 맛 들렸다."

 

'정통성'. 정통성을 논외로 하면 아무리 개량을 해도 의미가 없다

국악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금 연주자들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항상 부딪히는게 있다. 바로 '정통성'이다. 정통성을 논외로 하면 아무리 개량을 해도 의미가 없다. 국악을 대중 친화적으로 알리기 위해 어린이나 어르신에게 찾아가서 연주를 한다 해도 국악의 정통성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일반인이 해금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면 최선을 다해 가르쳐 준다.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 배우면 수강을 그만 둔다. 음악은 연주하는 맛도 있어야 하지만 연주하며 듣는 깊이도 수반되야 연주하는 맛이 난다.

그런데 연주는 하되 깊이가 묻어나지 못한다는 걸 수강생이 깨달으면서부터 배우는 걸 멈추게 되더라. 깊이 있는 연주를 위해서는 해금 연주 뿐만 아니라 장단과 노래 등 국악 전반에 관한 뿌리를 섭렵해야 한다. 국악을 알리는 역할을 우리 세대가 짊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번 연주회를 갖는 목적도 대중에게 해금이라는 악기 연주를 통해 국악을 알리기 위함이다. 일부 선배들은 '수 많은 해금 선배들이 있는데 자기 이름이 들어간 연주회를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사람이 있겠느냐'며 제 이름을 거론하지 말고 연주회를 가지라는 충고도 한다.

하지만 국악을 알리고자 하는 제 생각과 공감하는, 저를 지원하는 분들은 '새로운 시도도 있어야 한다'며 응원한다. 산조를 한 시간 동안 연주하면 관객이 지루해하지 않고 좋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중에게 국악을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한다면 재미도 있으면서도 색다른 시도도 가미한 이런 방식의 연주회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백 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내려온 전통적인 산조도 중요하다. 혹자는 '네가 무슨 산조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 이름을 내걸고 하는 연주회는 잘난 척하기 위해, 알리기 위해 하는 연주회가 아니다."

기억에 남는 연주회가 있는가?
"유치원이 부속으로 딸린 초등학교에 해금 연주를 하러 간 적이 있다. 다섯 명이 유치원생이고 초등학교 전교생이 스무 명 남짓한 자그마한 학교였다. '새야 새야'를 편곡해 만든 창작곡이있다. 청중이 어른도 아니고 초등학생이라 집중은 잘 할 수 있을까, 잘 들어줄까 하는 염려가 많았다.

그런데 연주하는 동안 떠들기는 커녕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집중해서 들어주었다. 네 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달려가서 연주할 때 제 연주를 들어주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아이들을 볼 때 해금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연주를 마치고 어떤 악기를 배우고 싶냐고 물어볼 때 어린이들에게 '해금이요' 하는 대답이 나올 때, 혹은 '해금이 서양 악기에 뒤지지 않고 아름다운 음색을 내는 것에 반했다'는 초등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 장거리를 달려온 피로가 싹 풀린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음반이나 연주회가 있다면?
"이번 연주회를 준비하기 위해 5시간 30분 길이의 춘향가를 들으며 수궁가와 적벽가 등 다섯 마당을 내 것으로 소화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생겼다. 만일 흥보가를 연주회로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연주 컨셉트와는 다르게 해금 연주 하나 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갈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해금의 소리만으로 판소리 전부를 소화할 수 있는 욕심과 바람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