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초대전 ‘결’, 한지를 태워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전시
김민정 초대전 ‘결’, 한지를 태워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전시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1.0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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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활동하는 김민정, 24년 만의 첫 귀국전

어려서부터 수채화와 서예를 동시에 배운 아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민정. 8살부터 우리 수묵에 대한 정서가 몸에 밸 수밖에 없는 작가였다. 우리 정서를 어려서부터 축적하다 보니 외국에 나가서도 외국적인 색채로 미술 작업을 하기보다는 수묵화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 4일 열린 김민정 초대전 ‘결’기자간담회에서 환하게 웃는 김민정 작가

“이탈리아에 가서도 먹으로 서예를 기호화하고 상징화하기 시작했다”는 김민정 작가는 “서예의 선을 그리다가 초자연적인 불을 태우며 숨 조절이 되고 명상의 수단이 되는 걸 느꼈다”고 한다. 종이를 불로 그을린 콜라주를 한 겹씩 붙여나가는 김민정 작가만의 작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김민정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태운 자국조차 작업의 재료가 된 셈”이다.

한지를 그냥 태우기만 했을까. 그건 아니다. 김민정 작가는 “한지를 둥그렇게, 혹은 길게 태우는 가운데서 마음에 그린 것들을 표상할 수 있었다”면서 “비가 오는 날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다니는 모습을 위에서 보는 것처럼 한지를 태운 종이를 켜켜이 붙여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라고 종이를 태우는 작업과 마음속의 심상이 일치하기 위해 애를 쓴 점을 설명했다.

24년 만에 첫 귀국전을 연 이유는 무얼까. 김민정 작가는 “한국에서 전시하기 위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화랑을 생각할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참고로 그의 작품은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소개됐으며, 개인전이 24년 만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한지를 태워 붙이는 작업이 특별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재료인 한지를 써서 추상적인 생각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유럽에서는 인정받았다”고 자평하는 김민정 작가는 “한국 분들은 제 작품을 소장하지 않았지만 유럽인들은 저의 작품을 많이 소장했다”고 덧붙였다.

▲ 4일 열린 김민정 초대전 ‘결’기자간담회에서 환하게 웃는 김민정 작가

김민정 작가에게 있어 기분 좋은 해외의 평가는 어떤 평가가 있었을까. 김민정 작가는 “작품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서가 안정된다”는 평가와 함께 “그림을 구매하면서 침대방에 걸 수 있는 그림”이라는 평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참고로 침대방에 걸고 싶은 그림이라는 평은 김민정 작가가 그린 그림이 숙면할 수 있는 편안함을 제공할 수 있어서란다.

OCI 미술관 김소라 큐레이터는 이번 김민정 작가의 개인전을 연 이유에 대해 “해외에서는 인정받았지만 상대적으로 국내에는 덜 알려진 작가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 출품작 중 작가의 세계관이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은 <Pieno di vuoto>l와 <Vuoto nel pieno>, 그리고 <Pieno su pieno>이다. 작게 태워진 구멍을 보다 크게 태워진 구멍으로 덮어 가기를 거듭하는 이 작업은 채움과 비움의 관계가 양가적이면서도 동시에 순환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그 외 <Insight>, <Order>는 작가의 예술적 영감과 단상의 이미지를 담고 <Tension>에서는 공간적 긴장감을, 그리고 <Alveare>, <Story>, <The Street>는 점으로, 선으로, 물결과 같은 흐름으로 드러나는 강렬한 무언의 박동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 김민정 작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사진제공=OCI 미술관)

이번 전시에서는 2015년 신작 <Dobae>를 처음 대중 앞에 선보이기도 한다. 반듯한 한지를 한 면 가득 쓱쓱 바른 이 작업은 황토방의 바닥 같기도 하고, 창호지처럼 보이기도 하여 한국인에게 익숙하고도 반가운 이미지다.

현란한 색도, 기교도 없는 미색 한지로 표현되었지만, 종이의 표면 위에 향으로 태워낸 자국이 수도 없이 흩어져 있어서 마치 우주의 성좌(星座)를 옮겨놓은 듯 엄숙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번 새 연작에서는 이전보다 한 단계 더 함축적이고 미니멀해진 작품 경향과 인위적 의도를 최소화하여 무(無)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작가의 최근 행보를 엿볼 수 있다.

김민정 작가의 한지 콜라주 30여 점이 선보이는 '결' 전시는  12월 27일까지 OCI미술관 1, 2, 3층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