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은주 갤러리 정미소v디렉터 ,“작가 정체성 살리는 전시 계속 하고 싶다”
[인터뷰]이은주 갤러리 정미소v디렉터 ,“작가 정체성 살리는 전시 계속 하고 싶다”
  • 인터뷰 정리/이은영 편집국장/강다연 기자
  • 승인 2015.11.0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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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는 “전시의 주제를 왜 다루는가,아트를 왜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이야기를 나누는 것 중요”
▲이은주 갤러리 정미소 디렉터

전시에 대한 꾸준한 담론을 형성하며 자신만의 디렉팅을 차별화 해오고 있는 대안공간, 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의 이은주 디렉터.

그는 본지에 ‘이은주 큐레이터 토크’를 다년간 연재해 오며 자신의 색깔을 명확히 드러냈다.
최근 그가 군사독재 시절의 잔재라 할 수 있는 여의도 광장 아래 지하벙커를 새로운 개념과 관점을 가진 작가들과 전시를 꾸렸다. 그는 특히 미디어 아트의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시기부터 미디어 아트에 관심을 가지고 그 흐름을 꾸준히 지켜보며, 마침내 ‘미디어극장전’을 탄생시켰다.

3년간의 전시를 통해 우리나라 미디어아트의 담론 형성에 상당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상업화랑이나 공공 미술관도 아닌 전시공간의 언더그라운드이지만 그가 기획한 미디어극장전을 비롯, 최근 ‘다시 판화다’ 전 등의 전시 후, 다른 공간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확실히 시대를 읽고 앞서가는 기획자 중에 한 명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오스트리아 린치에서 열린 아르스일렉트로니카페스티벌을 다녀온 그를 만났다.

-얼마 전 예술경영지원센터 초청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아르스일렉트로니카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왔다. 어떤 행사인지 소개해 주고, 인상 깊었던 점을 이야기해 달라.
“아르스일렉트로니카페스티벌은 1979년에 생긴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이다. 어지간한 미디어 아트 작가는 거쳐 간, 650여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큰 행사다. 유럽의 미디어 아트가 독일이 중심인데, 아르스일렉트로니카페스티벌은 젊은 작가를 위한 장으로서의 역할을 공고히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린츠 시에서 지원하는 지원금 비율이 60% 정도 된다. 작가가 참여하고 싶다고 해서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아니다. 세계 모든 작가에게 열려 있지만 공모에서 뽑혀야 참여 가능한 행사다. 행사 타이틀이 미디어 비엔날레가 아닌 페스티벌이다 보니 퍼블릭과 연계된, 시민을 위한 행사라는 느낌이 강하다. 시민을 위한 행사다 보니 시장이 바뀌어도 행사의 정체성이 변하지 않는다.

▲이은주 갤러리 정미소 디렉터

여러 요소가 모여 하나로 뭉쳐지는 허브 같은 느낌이 강하다. 미술사적인 관점으로 작품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개발 중인 아트라 해도 아이디어만 괜찮으면 작품처럼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는 열린 개념의 공간이었다. 페스티벌이라 공연적인 성격이 강하면서도 미디어 아트의 철학과 기술, 사회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요소가 두루 갖춰진 게 특징이다.

유럽 문화계의 지형을 바꾼 지대한 페스티벌임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운영하는 이들이 20년동안 단 한 명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예술과는 무관한 듯한 정치인이 행사를 즐기는 가운데서 버추얼과 리얼 라이프의 경계를 언급할 정도로 예술에 깊은 조예가 있다는 걸 보며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지금까지 정미소 전시들을 보면서 느낀 건 작가 발굴을 잘 한다는 점이다. 정미소 전시를 거친 작가들의 활약상이 대단하다. 세계 유수 전시 초청이나 국내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공신력 있는 기관의 공모전 등에서 상을 받거나 전시 초대되는 작가들이 많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작가들을 섭외하는가?
“정미소에서 전시한 후 잘 된 작가보다는 전시하기 전에 이미 자기 자리를 공고히 한 작가분이 많다. 전시할 때 작가의 정체성을 살리는 전시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면을 중요시하다 보니 작가의 정체성이 뚜렷한 작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전을 하게 되면 개인전을 하는 이유, 전시의 주제를 왜 다루는가, 아트를 왜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 작가가 하는 현재의 전시가 이런 콘셉트라면 앞으로는 이런 콘셉트를 다르게 하면 재미있겠구나 예상하고 전시를 여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정미소에서 열었던 전시를 계기로 앞으로 다른 전시를 하는 콘셉트가 생기게 하는 경우다. 혹은 불투명한 콘셉트의 전시가 정미소에서 전시한 다음부터는 클리어하게 풀리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정미소에서 하는 전시는 그룹전과 기획전을 나누어서 연다. 일 년 동안 하나의 전시를 그룹전과 개인전의 형식으로 나눠서 한 적도 있다. A라는 콘셉트는 개인적으로 풀 때 효율적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B라는 콘셉트는 그룹으로 전시할 때 주제를 극대화할 수도 있다.”

▲이은주 갤러리 정미소 디렉터

-미디어아트 이론을 전공했는데, 이은주 디렉터가 가지는 미디어 아트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공부할 당시에는 미디어 아트가 예술인가 아닌가 하던 시기였다. 미디어아트는 문화 현상으로는 분명했지만, 예술가가 도구로 쓰면서 아트가 된다는 개념에는 낯설어하던 시기였다.

학부 때에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미술 역사에 대한 공부를 했다. 미술사는 서양 미술사가 많다. 그런데 한국 근대미술은 대학원에 가서야 자료를 수집할 수 있을 정도로 근대 한국 미술사에 관한 자료가 별로 없다. 미술사 이론으로 대학교에 들어간 게 아니라 실기로 입학한 사람이다 보니 지금의 현상이나 경향에 관심을 기울이는 문화에 집중하게 됐다.

현상을 보려고 하니 캔버스보다는 모니터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는 PC도 플로피에서 급격하게 변하는 시기였다. PC와 관련된 디지털 문화에 대한 책을 많이 보고 발터 벤야민의 영향도 받았다. 라우센버그라는 작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다양한 오브제를 붙이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졌다.

2000년대 초반이다 보니 아트라는 개념에 의심을 하던 때였다. 하지만 대학원에 가서야 미디어 아트가 스쳐 지나가는 현상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기존의 아트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조의 아트도 받아들일 수 있는 눈이 열린 거다.

2000년대 초반에는 미디어 아트가 아트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꼭 해야지 하는 신념은 결여되던 때다. 미디어 아트를 공개할 만한 문화적인 환경이 조성되지 않던 때라 미디어 아트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만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작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 미디어 아트는 최근 5~10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미디어극장전을 2011년부터 시작해 왔다. 미디어 담론 형성에 중요한 좌표를 찍은 걸로 인식된다.

2011년과 2013년에 ‘미디어 극장전’을 선보인 것을 작년에 다시 선보였다. 올해는 장소를 다르게 해서 대중적인 부제를 달아 전시했다. 올해 연 전시는 미디어 극장전의 연장선인 셈이다. 미디어 아트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미디어 아트가 축적되어야 담론화가 가능하거나 이론과 평론이 나올 수 있는 거다.

외국은 이론과 평론이 탄탄하지만 한국은 미디어 아트의 초창기라 담론화되기 어려웠다. 한국적인 담론이 추구화되어야 미디어 아트 작가들이 작업할 때 의지할 만한 축이 생성될 수 있다.

자료가 빈약하다 보니 미디어 아트 작가의 활동 자체가 히스토리가 되고 담론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했다. 1980년대부터 작품 활동을 하던 작가가 있는가 하면, 90년대부터 작품을 내놓기 시작한 작가도 있다. 작가들의 다양한 연대기를 바탕으로 미디어 아트 작품을 상영했다.

▲이은주 갤러리 정미소 디렉터

작가는 작품을 꾸준히 만든다. 그렇다면 전시도 현재진행형으로 가야 하는 게 맞다. 올해의 전시 콘셉트가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 내년 혹은 내후년에는 전시 콘셉트도 전시 기획자의 아이디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전시를 브랜드화 하기보다는, 한 가지 테마를 두고 연속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게 옳다고 본다.

영화 같은 다른 장르를 융합한다면 파인 아트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싶다. 그 안에서 확장을 시켜야 다른 아트가 태동할 수 있다. 믹스를 하더라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관계에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자신이 빈약할 수 있는 기획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큰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는 순수예술 분야의 전문가들과 모여 협업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융합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다고 해서 저절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전문가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지만 공간과 시스템의 융합이 중요하다. 전시장이지만 극장 같고, 극장이지만 전시장 같은 느낌을 갖고 가는 게 중요하다. 공연장에서도 전시를 선보이고 싶은 게 바람 가운데 하나다. 전시를 보는 것이 공연을 보는 것처럼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 여러 분야의 작가들과 문화예술위의 ‘노마드’프로그램으로 러시아 바이칼을 다녀와 ‘바이칼’ 展을 열었는데, 당시 작가들이 바이칼에서 받은 인상이 굉장히 깊었던 것 같다.
“작가들과 바이칼을 다녀왔는데 기존에 전시를 준비한 것과는 다른 개념으로 작가들을 만났다. 이전에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작가를 만난 거라면, 그 때 작가들과 만난 목적은 반대로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버리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함께 모여서 무안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던 거다.

그런데 바이칼에 다녀와서는 전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바이칼에 갈 때만 해도 전시를 유념에 두지 않고 갔는데, 작가들의 발전되는 과정을 밀접하게 본 거다. 바이칼에서 경험한 것을 함께 나누는 가운데서 원초적으로 작가들과 처음부터 함께 만들게 된다.

바이칼에서 처음 본 광활한 풍경을 영화로 촬영하고 눈으로 스케치하며 참여한 다섯 사람이 모두 바이칼에 대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 많은 수의 작가는 혼자 작업한다. 하지만 발칼에서는 하루 일정을 마칠 때마다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나누었다.”

-기획자는 전시를 기획할 때 작가와 관객과의 사이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가?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게 중요하다. 전시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관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게 없다 할지언정 관객으로 하여금 약간이라도 생각의 전환이 가능하면서도 정서적인 울림이 가능한 전시를 갖는 게 중요하다.

작가의 전시를 일방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보다는 전시를 관람함으로 관객의 성찰이 발생할 수 있고 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관객에게는 치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가는 생산자는 어디서 위안을 받을 것인가도 항상 고민해야 한다. 생산자의 위안이라는 측면에서 바이칼의 원초적인 자연으로 간 것도 이유가 있다.

작가는 작품을 만들면서 얻는 위안이 있다. 하지만 전시는 작가를 까발리는 작업이다. 작품을 만드는 가운데서 얻는 희열이 다라면 위안은 필요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자기가 만든 작품을 전시장으로 갖고 오는 순간부터 작품을 만들 때 얻은 위안뿐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영감을 얻기까지의 고통, 혹은 상처도 고스란히 전시장으로 갖고 오는 거다. 작품을 전시장에 놓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나아가지 못하는 작가도 있다.”

▲이은주 갤러리 정미소 디렉터

-현재 대안공간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고, 본지에도 칼럼을 통해 대안공간과 관련한 여러 담론을 생성 중이다. 대안공간으로서 정미소의 역할을 말한다면.
“대안공간을 생각할 때 젊은 작가만 참여할 수 있을 거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하지만 대안공간은 작가가 젊었든, 나이를 먹었든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는 젊은 작가든 나이든 작가든 비슷하거나 동일한 과정을 겪는다. 요즘 전시는 젊은 작가를 위한 전시가 많다.

하지만 젊은 작가를 포함해서 여러 세대의 작가들이 세대별로 작가가 겪는 공유점은 분명 있다. 세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는 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포괄적인 내용이 다양하게 내포할 수 있다.

젊은 작가가 50~60대 작가랑 협업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면 서로 간에 얻는 것이 상당하다. 예술이 충돌과 화해의 연속이라고 보면 다른 세대들이 적극적으로 만나야 할 필요가 있기에 그렇다. 젊은 작가에게 미디어 쪽에서 재료가 될 만한 것도 문의하고, 젊은 작가는 나이 든 작가와의 만남을 영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측면도 지닌다. 다양한 세대 간의 만남은 작품의 주제를 넓게 볼 수 있는 시야의 확장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앞으로 어떤 전시 기획을 계획하고 있는지?
“지속적이면서도 각각 다른 콘셉트의 전시를 해보고 싶다. 지속적이면서도 작품을 개별적으로 보면 색다른 전시 말이다. 전시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다원융합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아트가 품을 수 있는 게 많다. 미디어 퍼블릭, 파사드를 확장시켜 해보고 싶다.”

이은주(李垠周) Lee EunJoo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를 졸업했으며 판화와 사진 전문 아트페어인아트에디션 팀장을 역임했다. 현실과 환타지의 경계시리즈(2008), 다양한 매체 속에서 탄생된 예술작품의 시나리오(2008), 비주얼인터섹션-네덜란드사진전(2009), Remediation in Digital Image展(2010), 미디어극장전-Welcome to media space(2011), 사건의 재구성전(2011), 기억의방_추억의 군 사진전(2011) 외 다수의 기획전 및 개인전을 기획했다. 전시와 출판(UP출판사 대표) 관련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아트스페이스 갤러리정미소 디렉터로 재직 중이다. 수상내역으로는 2010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표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