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예술이 변한다고?
[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예술이 변한다고?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5.11.1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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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열흘이상 붉은 꽃은 없다고 구백년 쯤 송나라시대에 살았던 양만리(楊萬里)라는 분이 그랬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큰 권세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세상이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 모든 것이 변하는 것 자체가 세상이 변하는 것을 보면 변하는 것이 세상이치의 당연한 이치로 느껴진다. 변하지 않으면 세상이 아니라는 이치가 정설로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집단이 있고 조직이 있고, 세상 이치를 특정의 계급에서 관장하던 옛날에는 그랬다. 거대한 사회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는 비평가의 눈이 무소불위(無所不爲)인 시절도 있었다.

거대조직에 복무하는 비평하는 신인 예술인들을 쥐락펴락했다. 좋다하면 좋은 예술이 되고, 아니다 하면 예술세계에서 사장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나라 70년대에도 있었다.

정권에 복무하면서 정치권력과 함께하던 평론가의 힘은 막강했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조직도 무너지고, 계층과 계급의 구분도 모호한 시대다. 돈 많으면 장땡이다.

예술이 없다. 무엇이 예술인지 도대체가 불분명하다.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나열해놓고 예술이라 우긴다. 예술이라 우기면 그만이다. 쟁쟁한 실력자가 아니라면 그것을 예술이다 아니다를 논할 근거조차 불분명하다.

우리는 여전히 기차를 타면 창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비행기나 KTX열차의 안쪽자리는 불편하기 그지없음에도 은연중에 그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옛날 아주 먼 옛날, 극장에서 담배피고, 버스에서 담배피고, 기차에서 담배피던 시절이 있었다. 비둘기 열차와 우등열차가 있던 시절의 명절은 말 그대로 북새통이었다. 화장실이라도 다녀올라치면 서있던 자리마저 없어지기 때문에 꿈 참고 만다.

비둘기 열차에는 지정좌석이 없기 때문에 먼저 타서 먼저 앉으면 임자가 된다. 그냥 먼저 자리잡고 앉으면 자기 것이다. 자리가 없으면 좌석 팔걸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만다.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팔걸이 까지 하나의 자리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안쪽 자리에 앉은 사람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지금이야 지정좌석이기 때문에 팔걸이에 대한 소유권 까지 좌석을 산 사람의 것이지만 말이다. 엉덩이를 밀고 들어오는 것을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편안한 창가를 선호하게 되었다. 역사는 변하지만 감성과 감정과 몸 버릇은 잘 변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기위해 고장난 에스컬레이터임에 몸을 실었음에도 몸은 움찔하고 있다. 몸이 기억한다. 

예술은 언제나 변화를 거듭한다. 누군가의 지정에 의해 변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개인의 입장에서 개별적 예술품에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그냥 좋은 예술품이다. 싫음과 좋음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관망과 바라보기가 관건이 된다.

그래서 예술은 항상 안쪽자리에 있다. 창가를 선호하는 예술은 보기가 좋다. 참으로 편리하다. 바깥쪽에 있는 예술은 불편하지만 더 편리한 시대와 미래를 기다린다. 그리고 개선하고 찾아간다. 세상이 변하여 이제는 안쪽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편했던 창가가 불편해지자 그 자리를 예술이 차지한다.

간섭하던 예술에서 관망하는 예술로 변화다.  
1990년대를 관장하던 자연주의 풍경과 들판의 전경들이 조금씩 자세히 그려진 꽃과 과수원, 식품들에 침범 당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만화주인공이 중원을 종회무진 활약했다. 2015년 봄부터 지금까지 몇 개의 아트페어에서 판매된 작품들은 뭔가 새로운 가치를 예고하고 있음이 감지된다.

예술이 변하면 사회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 예술이 변하는 세상이치에 다른 관점과 가치를 심어야할 시기가 도래하고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