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books]황영기 著, “아쉽다. 그러나 미련은 없다”
[Book&books]황영기 著, “아쉽다. 그러나 미련은 없다”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5.11.2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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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서 초로에 이르기까지 깊은 사색과 성찰을 거친 한 지식인 농부의 소박하지만 담대한 문학과 철학의 서사
▲황영기 著, 아쉽다. 그러나 미련은 없다(좋은땅刊, 426p,18000원)

“공부열심히 해라, 성실히 살아라, 악행을 행하지 마라. 아버지는 한 번도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치열한 시험을 치룬 아들이 셋, 넷씩이나 되지만 아버지 황영기는 결코 한 번도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는 말을 아끼고 또 아꼈다.

자식들이 사회에서 성공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염원했지만 그 과정에서 다그치거나 압박을 하는 것이 아닌 당신 스스로 올곧은 삶의 자세를 가졌기에 자식들에 대한 믿음도 그만큼 컸을 터이다.

이런 교육관을 가졌기에 가난한 살림살이에서 아들 셋을 고시(행정고시1, 사법고시2)에 합격시키고 두 자녀는 교육계에서 교장으로 교사로 아버지가 못다한 꿈을 이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황영기 선생의 글이 책으로 엮어져 나오면서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6남매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으로 이끈 황영기 선생의 자식들이 자신들의  삶의 스승이자, 아버지였던 선친이 몇 십년에 걸쳐 꾸준히 써왔던 글을 모아 책을 펴낸 것이다.

‘어느 촌부의 가정경영 스토리’라는 부제가 붙은 황영기 선생(1928~1992)의 유고집 『아쉽다, 그러나 미련은 없다』(좋은땅刊, 426p,18000원)가 그것이다.

올곧은 삶을 살아온 맑고 순수한 영혼이 책 곳곳에서 살아나

이 책은 단순히 자식들이 선친을 기리기 위해 내놓은, ‘효도주의’에 방점이 찍히는 책이 아니다. 경북 안동의 골짜기 마을, 그것도 육로로만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깊숙한 시골동네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하나 건너야 나오는 ‘오지’마을에 살았던 한 지식인의 삶의 숭고한 기록이다.

섬세하고 결이 고운 엘리트 남성이 문학과 철학은 고사하고 이상과 가치에 대한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는 깊고 깊은 시골 ‘촌’에서 청춘에서 초로에 이르기까지 깊은 사색과 성찰을 거쳐서 나온 삶의 역사다. 농사꾼으로서 자연을 대하는 진솔한 태도와 묵묵히 성실하게 이웃에게 나누고 봉사하며 올곧은 삶을 살아온 맑고 순수한 영혼이 책 곳곳에서 살아난다.

책은 수필, 꽁트, 기행문, 수십 편의 시와 한시(漢詩)서간, 제문과 비문 등을 포함한 문학과 철학, 시대의 역사와 문화, 사상과 이념까지,그 모두를 아우르는 소박하지만 장대한 서사다.

▲저자 황영기 선생

저자 황영기 선생은 이 글들을 장남이 성공하면 꼭 책으로 묶어내리라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의 생전에 자식들의 금의환향을 맞았지만 책은 끝내 펴내지 못했고, 사후 23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출간됐다.

“값진 보석은 녹슬지 않고 진리는 영원히 불멸하는 것입니다. 효도와 충성, 신의와 박애, 봉사와 협동은 공사생활을 영위하는 근본임을 알고 행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며 반드시 크고 작은 과오를 범하기 마련입니다. 조물주는 이 어려운 숙제를 우리 인간들에게 주었으므로 인간은 평생을 이 숙제를 풀다가 마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중략)

초가집 호젓한 등잔불 밑에서  한 가지 두 가지 마음이 내킬 때 취미로 기록한 천식(淺識)한 한 농부의 생활을 통한 솔직한 고백이며 유서이니 독자 여러분은 예술이나 문학으로 오해하지 마시고 관용 있으시길 바랄 뿐입니다“라고 그는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보낼  날을 기다리며 겸손한 서문도 미리 써두었다.

방대한 독서량, 동서양 위인들의 금과옥조 같은 명언들이 그의 삶 속에 녹아

책은 총7개의 장으로 나눠져 1장,진리의 사색 2장,인생의 표정 3장, 생활의 주변 4장,자연 찬미 5장, 사랑의 편지 6장, 그리운 노래 7장,부록(가족 편지및 자녀들의 글)로 되어 있다.

자식에 대한 가없는 사랑과 존중,이웃과 나라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안타까움과 사랑, 문학과 예술, 역사와 철학, 시와 소설 등의 다양한 장르의 방대한 독서량이 받쳐주 듯 공자와 맹자, 이태백과 황희와 안창호,이광수, 신익희 세익스피어, 버나드쇼, 루소와 괴테 , 키에르케고르, 쇼펜하우어, 티르소 데 몰리나 등 동서양 위인들과 작가들의 금과옥조와 같은 명언들이 그의 삶 속에 녹아서 우리에게 다정하게, 때로는 아프게 전해진다.

황영기 선생은 삼척공립고등학교(현재의 강원대와 통합된 삼척공업대학교 전신)을 졸업하고 6.25 때 거제포로수용소에 수용 됐다 풀려나와 문경 호계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후 연좌제에 걸려 고향인 안동 풍천면으로 낙향한다. 그러나 현실을 탓하기 보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농사를 지으며 지역의 화남초등학교 육성회장과 선관위원 등 크고 작은 일들에 시골동리의 지식인으로서 그 책무를 다해나갔다.

▲1954년 어느날. 안고 있는 아기가 황영기 선생의 장남인 황현탁 국정홍보처 주일본대사관 홍보공사.

값진 보석은 녹슬지 않고 진리는 영원히 불멸하는 것

그는 물질의 가치가 아닌 높은 이상과 정신에 가치를 두고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전옥답을 다 팔고 여기저기 빚을 얻으러 다니며 자식들을 바라지한다. 그 과정에 아내와의 의견 다툼도 자주 일어났었고, 자신의 뜻에 반하는 아내에 대한 서운함도 간간이 나타낸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결국에는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리고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가족의 화목과 평화를 유지하고자 한다.

“수년 전 한창 모심기 철에 2분기 공납금 얼마를 구하기 위해 동리 삼십여 집을 돌아다니며 일곱 집에서 구해준 사실이 있었으나 한 집 한 집 문전을 나설 때 쓰라린 심정이야 어이다 기록하며 기어코 구해준 내 끈질긴 성격에 냉소도 지어봅니다.”-242p, ‘따분한 사실’ 중 한토막-

자식들의 학업을 위해 자존심을 내려 놓았지만 뒤 돌아서서 쓰라린 눈물을 훔쳤을 절절한 심정이 아픔으로 다가 온다.

이런 고통을 인내하며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지만 정작 당장 코 앞에 닥친 시험을 두고 있는 자식들에게는 항상 ‘여유를 찾고 공부를 하기 바란다.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으로 하늘의 뜻에 맡기는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를 가지도록 권면한다.

나의 소원은 무지개보다 더 황홀하나...사천만 온 겨레의 소원

이런 그에게 어느날 기적같은 ‘황홀한 감격’의 날이 찾아온다.

“서기 1974년 5월 21일은 제15회 행정고등고시 이차 합격자 발표의 날로 내 인생에 있을 수 없는 제일 황홀한 감격의 날입니다. 수화기를 손에 든 가슴은 떨리었고 합격이라는 소식을 들은 나는 보람과 감격에 벅찰 뿐...마치 8.15 해방 뉴스를 들었을 때의 감격과 같았다”고 당시의 벅찬 마음을 술회하고 있다.

▲장남해외근무 배웅을 위한 김포공항에서 부인과 장남 가족과 차남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와 주변에 모든 사람은 하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다시 한 번 배웠습니다. 사람이 돈을 많이 모았다고 하면 혹시 의혹과 증오의 화살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나 시험에 합격되었다고 하면 누구라도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작은 뜻이든 큰 뜻이든 뜻을 이룬다는 것은 즐겁고 보람된 일입니다.(중략) 나는 오늘의 영광이 있게 하기 위하여 애쓰시고 소원하신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국가의 동량이 되고 민족의 등불이 되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200p, '감격의 그날‘ 중 한 토막-

자식의 '고시합격'이 조국 해방과 맞먹을 만큼 기쁘지만 황선생은 늘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한결같은 철학이 앞선다. 개인의 안위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재목으로 쓰이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것이다.

그는 혹독한 전쟁의 참상을 겪은 경험의 쓰라림을 겪었기에 우리 겨레와 민족의 소원이었던 통일에 대한 열망을 백범 김구선생이 염원했 듯 그가 가장 큰 뜻을 둔 이상이기도 했다.

타고난 태생이 관운과 인연이 없는/나에게 인류의 행복을 추구하고/세계의 평화를 다짐하는
정치가가 되라고 말하는/아내에게/도래도래 머리를 저었습니다/나의 소원은 /하늘만치 크나/말 할 수 없습니다(중략) 거부가 되겠느냐고 묻는...태산같이 벅차나...자전거도 제대로 못타는/기계에는 백치인...도래도래 머리를 저었습니다/나의 소원은 /무지개보다 더 황홀하나/말할 수 없습니다/나의 소원은/너의 소원일 것이며/사천만/온 겨레의 소원일 것입니다.(후략) -338p '나의 소원' 중 몇 토막-

 독자들에 의해 ‘아름다운 사람’이란 감동으로 가슴 한켠에서 함께 살아갈 것

▲저자 황영기 선생의 회갑연(좌)과 저자 상례후(우) 

그 스스로 책 제목처럼 아쉬움은 있다고 했다. 그 아쉬움은 바로 자신의 못다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고, 그럼에도 미련은 없다라고 한 것은 자신의 꿈을 접고 자식을 위해 간난신고(艱難辛苦)한 것이 나름의 성취를 이루었기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한 것으로 대입된다.

황 선생의 장남인 황현탁 전 국정홍보처 주일본대사관 홍보공사는 “1992년 작고하신 후 23년 동안 원고지 상태로 보관해 오던 선친(黃永起) 유고집 <아쉽다 그러나 미련은 없다>를  지난 10월 초 상재(上梓)돼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다. 출판된 책은 형제들이 나눠 지인들에게 배포하고 일부는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솔직히 얼마나 팔릴지는 모르나 그래도 인터넷상에서 선친 성함이나 책 제목으로 검색이 가능하니 자식으로서 한편으로 마음 뿌듯하다“고 선친의 책을 출간한 소감을 밝혔다.

책장을 덮으며 <100년 동안의 고독>저자 마르케스가 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두 번째 삶을 살게될 것이다"

저자 황영기 선생은 지금 두 번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책을 펴낸 생물학적 자손들은 물론이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 의해 ‘아름다운 사람’이란 감동으로 가슴 한켠에서 함께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