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의 예술비평]라벨라 오페라 ‘안나 볼레나’로 경쟁력 선두에 섰다
[탁계석의 예술비평]라벨라 오페라 ‘안나 볼레나’로 경쟁력 선두에 섰다
  •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 승인 2015.12.04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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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도 가요처럼 사각의 링, 서바이벌 경연 도입해야

오페라 예술무대에도 ‘四角(사각)의 링’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예술은 이미 치열한 서바이벌 경연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죽어가던 가요를 살린 것이 방송의 PD시스템이다. 나가수에서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등 끊임없는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시장을 확대해 가고 있지 않은가.

동일선상에서 가수 임재범이 전국 투어를 한다. 가수 한 사람의  시장 지배력이 뮤지컬을 능가하는 폭발력을 보여준다. 이에 비하면 가곡은 위기로 죽어가고 있다. 오페라는  춘추전국 시대이고, 언제나 어려움을 호소할 뿐 제도개선을 보이지 않고 있다. 뮤지컬이 이미 시장 과포화로 악화를 경험했다면 오페라가 생존을 위해서 방향을 찾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모두 속을 끓이고는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고  방송 시스템처럼 총괄하는 PD도 없다.

▲라벨라 오페라단의 안나 볼레나 커튼콜 장면.

원판 수입오페라는 인프라 죽이는 이기적인 오페라

시장은 계속 혼돈스럽고 관객은 사대주의로 무늬만의 외국 캐스팅과 스텝을 선호한다. 물론 본고장의 것이니 좋을 것이란 일반의 막연한 인식은 어쩔 수 없다지만 연출, 지휘, 가수, 무대, 의상 까지 수입해서 실제 작업은 하지 않고 마케팅으로 기업 스폰서를 쓸어간다면 정상적인 오페라 작업으로 볼 수 있겠는가.

부분적으로 바그너 등  생소한 것에 일부 기술 도입은 필요하겠지만 이 방식의 위험성은 바로 우리의 미래다. 솔직히 수입원판으로 가면 인프라 구조의 경쟁력 약화로 시장 전체가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만약에 시장이 커져 외국자본이 들어오거나 기업이 자체로 수입하겠다하면 오페라인들은 어떻게 될까. 한방에 갈수 있다. 국, 시립 오페라단들도 덩달아 국가 예산으로 ‘묻지마 식 오페라’ 경영을 하고 있다면 각성해야 한다.

이번 라벨라 오페라단의 ‘안나 볼레나’(11월 27~29일/ 오페라하우스)가 그저 작품이 좋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철학과 우리 음악가들이 애정을 가지고 몸을 던지고, 땀을 흘려야 한다는 좋은 사례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작품의 진정성과 우리 경쟁력을 위해서다.

▲라벨라 오페라단의 안나 볼레나 공연의 한 장면.

다 맞추어 놓은 상황에서  외국 연출가와 스텝이 몇 번 연습하고 개런티 받아가는 불안한 극장무대가 아닌 것이다. 오페라의 종합 요소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하모니로, 앙상블로,  무대의 조화와 균형으로 나타날 때 오페라가 관객을 흡입하는 힘이 된다. 그러지 않고 달라는 대로 펑펑 주고 그들에 의해 모든 것이 지배되고 판만 깔아주고 놀다가는 게 오페라가 아닌 것이다.

자주적인 오페라 경쟁력 시스템 만들어야  미래 있어

 ‘안나 볼레나’의 관전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우리 손으로, 우리 재료로, 우리 상품 만들어야 선순환 구조의 시장을 가질 수 있다.  우리 돈 외국에 다 넘어가고 그 몇 십 분의 1만을 우리가 갖는 비굴함과 초라함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 힘은 들어도 우리 자생력을 길러야지 손쉽게 의존형으로 가면 우리는 속국을 벗어나지 못한다.

안나 볼레나의 강혜명은 혼신의 가창으로 매력적인 안나 역을 잘 소화해냈다. 배심원 법정이 계단이어서 좀 불안해 보이는 것은 있었지만 연출가 이회수의 스며드는 배역의 배치가 무대에 잘 녹아났고 배심원들이 내려 앉는 사형장면은 압권이었다. 엔리코의 무게감있는 톤칼러, 세이무어 최승현, 퍼시 이상준의 애잔한 호소력이 서로의 신뢰 속에서 앙상블 호흡을 진하게 뿜어내었다.

양진모의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이들을 감싸고 眈美(탐미)의 도니제티를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화려한 정품의 의상을 보면서 한편으론 마음이 좀 무겁게 느껴진 것이 국립이 아닌 민간단체였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했다.

▲라벨라 오페라단의 안나 볼레나 공연의 한 장면과 오케스트라 피트.

사실 반신반의 한 초연의 작품을 우리 자존심으로 해결해 보려고 한 노력의 평가는 다를 것이다. 완성도에서 그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그러나 현실의 오페라계를 보면 100 개가 넘는 오페라단이 정부 기금 따내려고 눈가림의 편법으로 관객 다 놓치고 오페라 타이밍 놓치면 눈부신 우리 성악가들은 어찌할 것인가. 낡은 외투를 입고 오페라의 봄을 맞을 수는 없다. 이번 안나 볼레나처럼 좋은 작품으로 관객을 모으고 지지층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오페라를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고 티켓 가격 기업 스폰서 방식 등 제도적 측면에서 손 볼 것들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치열한 작업으로 평가받고 정부의 지원 정책도 이제는 재검토 되어야 할 때다.

국립 예산 몰아주기 보다 경쟁력 위해  분산 투자가 더 합리적

국, 공립 독점 지원보다 분산해서 경쟁력을 키우는 ‘오페라 나가수’ 시스템이 필요하다. 동일한 예산과 인력을 주고 서바이벌 작업을 통해 경쟁력을 길러내는 ‘사각의 링 시스템’이 지금 필요하다고 본다.

예술의 자유와 본질, 시장 논리가 아닌 권위적 형태의 존재로 예술을 묶어두는 것으론 우리 예술이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 민간오페라단들 중에는 아직도 캐스트에 표 값을 물리거나 하는 방식은 관객을 내 몰 뿐이다.

정부는 경쟁력 있는 단체를 선별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서 오페라를 키워내야 한다. 오페라인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현재는 교통정리가 안되고 있다. 공정한 틀의 오페라 경쟁 구조를 만들어 준다면, ‘안나 볼레나’와 같이 작품성으로 당당하게 승부를 겨룰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민간오페라단을 위해 새 지원방식을 제도적으로 구상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