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시]들풀/이영춘(1941~)
[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시]들풀/이영춘(1941~)
  • 공광규 시인
  • 승인 2015.12.04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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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

                                     이영춘(1941~)

세상이 싫고 괴로운 날은
바람 센 언덕을 가 보아라
들풀들이 옹기종기 모여
가슴 떨고 있는 언덕을

굳이 거실이라든가
식탁이라는 문명어가 없어도
이슬처럼 해맑게 살아가는
늪지의 뿌리들

때로는 비 오는 날 헐벗은 언덕에
알몸으로 누워도
천지에 오히려 부끄럼 없는
샛별 같은 마음들

세상이 싫고 괴로운 날은
늪지의 마을을 가보아라
내 가진 것들이
오히려 부끄러워지는
한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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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누구나 세상이 싫어질 때가 있다. 괴로울 때가 있다. 타자 때문에 싫어지거나 괴롭기도 하지만, 그것 말고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절대적 자기혐오와 자기고독이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런 우울이 몰려올 때 바람이 센 언덕에 가서 풀에게 배우라고 한다. 문명어가 아닌 야성의 언어인 바람이나 이슬, 샛별 같은 마음을 보라고 한다. 오히려 문명에 과도 노출되어 이런 자기혐오와 자기고독이 자주 찾아오는지 모른다. 바람을 맞으러 겨울 언덕으로 가자.(공광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