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일본이야기]도쿄 록폰기의 '빛의 예술' 과 한국 근대 영화 특집
[이수경의 일본이야기]도쿄 록폰기의 '빛의 예술' 과 한국 근대 영화 특집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승인 2015.12.07 0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한국영화특집 '창조와 개화'전
▲필자 이수경 도쿄가쿠게이 대학 교수

가을이 언제 사라졌는지,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 온 12월.
일본에서는 12월을 시와스(師走:점잖은 스승조차 정신없이 달려야 할 정도로 일정이 바쁜 연말을 비유함)라고 한다. 실제로 매년 이 즈음에는 연말연시 업무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한국은 학기말이니 학교는 더더욱 바쁠 것이다.

필자는 얼마전에 집필한 논문 초고(재일동포 관계의 미발표 논문)의 확인작업을 겸해서 어느 연배의 재일 동포와 신쥬쿠에서 만날 약속을 했다. 거기서 논문 확인을 마치자 그 분은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필름센터(National Film Center, NFC)에서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한국영화특집(주제-창조와 개화)이 있으니 시간 내서 가 보라고 권유를 하셨다.

팜프렛도 몇 장 준비되었기에 내용을 보니 1934년부터 1959년 사이에 만들어진 영화였기에 흥미가 일었다. 아쉽게도 현존하는 한국 영화 중에 가장 오래된 1934년 제작의 <청춘의 십자로>는 날짜가 안 맞았고, 그 날(12월3일) 저녁 7시에 있는 1937년 제작의 <총후의 조선, 8분>, 1939년 제작의 <조선 우리의 후방, 11분>, 1938년 제작의 <군용열차, 66분>의 세 편이 상영된다기에 그것을 보러 가기로 했다. 2013년에 필자는 근대 한국의 영화정책에 대한 논문을 적느라 식민지 시대의 영화 도입 경위와 그 뒤의 움직임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오랜만의 신쥬쿠(新宿)는 우중충한 겨울 날씨였으나 사람들은 모두 연말 분위기로 밝은 표정이었다. 시간이 좀 있기에 필자는 얼마전 수업에서 도쿄의 야경으로 유명한 록폰기 힐즈(六本木ヒルズ)를 거론한 적이 있기에 그곳을 먼저 들러보기로 했다. 최근 과로 탓인지 허리 통증이 다리를 힘들게 하여 지팡이를 짚고 전차를 갈아타며 록폰기로 향했다.

록폰기 힐즈란 원래 350년 전에 쵸슈한(특히 현재의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지역) 세력가였던 모우리(毛利)가문의 저택이 있었던 광대한 땅과 주변을 17년간 재개발하여 정리한 곳이다. 2003년 4월에 오픈한 지역으로서, 한 때 버블경제와 IT산업으로 성공했던 호리에몽을 비롯한 많은 성공자, 유명 배우나 음악가, 연예인 등이 록폰기힐즈 레지덴스에 입주하였기에 고소득층의 그들을 [Hills족]이라 불렀다. 세련된 상점과 고급스런 분위기의 음식점이 많고, 오모테산도에서 느티나무가 길 양쪽으로 즐비하게 들어선 언덕(게야키자카, 欅坂) 주변은 세계적인 명품 상점의 거리가 되어있다. 그 옆에 아사히방송국과 모우리 정원(毛利庭園)이 있고, 이러한 부의 상징이자 명소가 된 록폰기 힐즈를 보려고 세계 곳곳에서 많은 관광객이 오기도 한다.

▲도쿄 록폰기의 일루미네이션

골목마다 들어 선 현대감각과 세련미가 넘치는 음식점이나 상점도 타지역과 차별화를 보이고 있다. 필자도 간혹 업무 때문에 그 주변을 가긴 하지만 이번에는 그 전날 수업에서 학생들과 일루미네이션 문화 얘기를 하다가 지방 학생들에게 시간을 내서 도쿄에 온 김에 록폰기힐즈의 겨울 장식을 봐 보라고 권했던 터라 나도 봐야 할 거 같아서 느릿한 걸음으로 록폰기힐즈로 올라갔다.

아사히방송국 1층의 프로그램 홍보를 둘러본 뒤, 옆의 모우리 정원을 산책하며 잠시 도시공간의 숲에 젖었다가 일루미네이션을 점등하는 시각에 가장 잘 보이는 언덕 위의 공간으로 갔다. 벤치 한 가운데는 지방에서 단체여행을 오신 듯한 노인들이 앉아 계셨다. 그 옆에서 게야키자카를 보자니 멀리 도쿄타워가 정면에 보였다. 그리고 나서 게야키자카 양쪽 느티나무에 불이 켜지자 모두 함성을 질렀다. 필자도 동영상을 찍으며 그들과 함께 그 공간 속에서 추위를 잊고 있었다. 사진을 찍은 뒤, 모우리 정원의 일루미네이션도 즐기며 주변을 걷다보니 어느새 다리가 운동을 한 탓인지 훨씬 걷기 편해져 있었다. 겨울철 움츠리면 결국 근육 수축과 더불어 혈액순환이 안 되면서 건강 상태가 안 좋아질 수 있다는 기본 상식 조차 잊고 지냈던 생활을 어떻게든 고쳐야 겠다는 다짐을 하며 어두워진 록폰기 힐즈를 빠져나왔다.

지하철로 긴자에서 갈아타고 다음 정거장인 쿄우바시(京橋)1번 출구로 나오니 11시 방향에 필름센터가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서 일반 520엔의 입장권을 구입(고교, 대학생, 노인은 310엔, 초중학생은 100엔, 장애자는 동행1명까지 무료)해서 영화상영 홀로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꽤 많이 앉아 있었다. 향수일까? 재일동포일까?? 영화 연구자일까???

▲도쿄국립근대미술관필름센터

이번 이 영화제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여 일본의 문화청을 비롯, 도쿄국립근대미술관필름센터, 한국 영상자료원, 후쿠오카시 종합도서관과 한국문화원이 공동주최하는 형식이다. 2002,2005년에 이어 이번 국교정상화 기념 특집은 특히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작품을 중심으로 최근에 발굴된 1930년대부터 1940년대 작품과 한국전쟁 후 한국영화가 꽃 피게된 1950년대에 초점을 맞춰 안종화 감독, 이규환 감독, 신상옥 감독 및 한병모 감독 등의 작품 27편(21프로그램)을 소개하고, 교토대의 미즈노 나오키 교수나 한국 영상자료원의 연구원 들에 의한 토크이벤트도 준비되었다. 11월21일부터 12월26일까지 영상되는데 필자가 간 날은 세 편의 영화 상영 뿐이었다.

<종후의 조선>이나 >조선 우리의 후방>은 짧고, 1937년에 시작된 중일전쟁에 임하여 동양의 영구평화를 위해 싸우는 일본군의 구국충절과 충혼애국에 부응하기 위한 총후 조선인들의 태도를 종용하는 선전 영화였다. 특히 자신들의 생활을 검소히 하며 밥을 지을 때 마다 쌀 한 숟가락을 아꼈던 것을 모아서 나라에 바치거나 아녀자들이 금비녀를 빼서 스스로 미나미 총독(南次郎)에게 헌납하는게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인지를 극찬하며 침략전쟁을 대대적으로 선전 홍보하는 영화였다. 남성들은 워낙 애국정신이 투철하여 담배나 술까지 금연 금주하는 마을이 생겼고, 조선 남성들은 자발적으로 군인이 사용하는 군마를 돌봐준다며 헌신적 애국행위라고 강조하고 있다.

피폐하고 곤궁한 생활을 더더욱 곤궁하게 만드는 또 다른 것은 성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체국서 판매하는 국체 혹은 저축채권을 구입하여 후방 지원을 아낌없이 하는 것이고, 아녀자들도 센닌바리(한 조각의 천에 1000명의 여성이 한 땀씩 수를 놓아 출정군인의 무사를 빌며 건네줬던 정신무장의 천)를 비롯하여 출정하는 군인들의 등을 씻어 주는 등의 격려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형무소 수인들조차 상여금을 아껴서 헌납한 1만 수 천원으로 고사포 다섯대를 구입했다는 등의 헌금 헌납을 종용하는 공출 홍보 영화였는데, 그 속에서 특징적인 것은 대부분의 열광하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일장기를 흔들지만 전혀 무관심 혹은 무의식 적으로 흔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영화 속의 여인들 한복 대부분이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는 깨끗한 옷들이었다는 점과, 어린 아이들도 당시 조혼한 탓인지 일장기를 흔들며 웃는 어린 소녀들도 모두 머리를 올리고 있었다는 점, 몽고 덕왕이 경성제대 육군지원병 훈련소 등을 방문하여 당시의 경성제대 시설을 간헐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는 점. 이탈리아와 독일과 협상을 맺고 있었던 일본이었기에 이탈리아서 친선파견단이 왔는데, 당시 미나미 총독(정무총감은 오오노 로쿠이치로, 大野緑一郎)은 총독부 뒷뜰에서 원유회를 개최하여 일본 여성이 준비한 새우 튀김(덴뿌라)등을 접대한다. 1906년에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통감으로 착임했을 당시 원유회는 총독부 뜰이 아니었는데, 향후 원유회 역사 및 참가자 동향을 살펴보는 것도 나름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의미있는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필름을 통하여 당시의 조선신궁이나 경성 주변의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또한 일본군이 중국 무한삼진, 한구를 함락시켰다며 등불행렬의 축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반면, 장개석의 항전 행위를 비아냥거리는 변사의 설명 강조 부분도 소개되었다. 
전반적으로는 동원되어 온 사람들의 가식적인 표정이나 카메라를 의식한 사람들의 행동이 순간 순간 표출되었기에 독일 나치집단의 문화상을 맡았던 천재 홍보자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마지막 작품인 <군용렬차>는 조선철도의 기관사였던 기생이었던 애인을 기생방에서 빼내기 위해 필요했던 2천원 때문에 소중한 친구를 배신하고, 군용열차를 파괴하려는 스파이들의 꾐에 빠져 결국 자살을 하고 마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는데, 그 유서 속에는 자신의 몫까지 성전을 위해 열심히 싸워달라는 내용이 남겨져 있다. 이 영화는 앞의 영화 보다 상당히 긴 편인 66분짜리 였는데, 중간 중간에 부자연스러이 넘어가는 부분이 보였고, 내용적으로도 영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의 표정 관리가 되려 우습게도 보인다.

약 1시간 반을 통하여 3편의 영화가 연속 상영되었는데, 영화를 마치자 마자 사람들은 늦었던 탓인지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몇 사람만 팜프렛과 준비되었던 촬영당시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필자도 갈 길이 멀었기에 그 곳을 나와서 도쿄역까지 걸어갔다. 영화를 보고나서 왠지 착잡한 기분도 들었지만 당시의 철저한 애국정신과 시설, 사람들의 정황의 상당수가 꾸며져 있음을 볼 수 있었음에 따스하게도 느껴졌다.

▲도쿄역 야경

밤 바람 속에 도쿄역을 향하다 보니 작은 술집들 앞에서는 모두 망년회였는지 단체로 시끌벅적 무리를 짓고 있다. 도쿄역의 일루미네이션에 외국 사람들이 사진을 다퉈 찍고 있었다. 낮에 보이던 풍경은 불빛 사이로 감춰지고, 화려하면서도 소프트한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일루미네이션이 밤의 도쿄를 [도쿄 사막]이 아닌 [인간적인 공간]으로 이어주고 있었다.

혹시 연말연시를 일본에서 보낼 계획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매우 노골적인 국책 홍보전략 영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도쿄의 겨울을 만끽해보시길 바란다.  도쿄는 걷기만 해도 즐겁고, 수 많은 문화 행사가 열리기에 볼거리도 많으며, 음식 문화의 발달과 형형색색의 일루미네이션 속에서 온화스러워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편견, 선입견 보다 잦은 만남을 통하여 신뢰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는 한일 관계 개선의 길을 뚫는 시민외교관 차원의 혜안을 키우며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는데 얽킨 이 관계를 풀어서 훨씬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존재로 공생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일 것이다.

올 겨울은 도쿄 속에서 '빛의 예술' 과 일제 강점기에서 근대에 이르는 '한국 초기 영화'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즐거운 연말 추억 만들기를 해 보시길 바라는 바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