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육체의 운전기사는 ‘국민’입니다”
“이제 내 육체의 운전기사는 ‘국민’입니다”
  • 이은영 편집국장,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8.1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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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데이비슨 타고 총 1만5천Km 유라시아 대륙 횡단… “이제 봉사하며 살고 싶어”

 세상에는 기네스북에 등재되곤 하는 신기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최근 기네스북에 등재된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법한 주인공을 만났다. 한 때 15개의 주유소를 운영하며 평생을 에너지 전문가로 살아오다가 지천명이 되던 어느 날 홀연히,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한 몸을 할리데이비슨에 얹히고 총 15,689Km의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사람. 바로 이영건 박사이다. 그는 에너지 전문가일 뿐 아니라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민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영 전문가로 에너지경영전략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국가정책과정을, 카이스트에서 최고정보경영자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이제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유라시아 횡단을 마친 후 얻은 자신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자 하는 이 원장. 그는 무슨 일을 꿈꾸고 있는 걸까?

"모험심과 개척자 정신,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이겨내는 사람, 늘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이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예전에는 혹시 대통령이 날 부르면 얼마나 떨릴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왜 안 부르나 하고 마인드가 확 바뀌었어요. 날 버렸다가 어떻게 하시려고 하는 과잉 자신감마저 생겼다고나 할까요?(웃음)”

어머니에게 거짓말하고 떠난 유라시아 횡단모험

이영건 박사는 보기 드문 효자다. 유라시아 횡단을 결심하고 아내에게는 가까스로 허락을 얻었지만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미국에 가서 못 다한 공부를 잠시 끝마치고 오겠노라고 본의 아니게 거짓 말씀을 드리고 여행을 떠났다. 그 거짓말을 눈치 채지 못하게 위해 서울에서 늘 하던 것처럼 매일 아침 7시와 오후 3시에 꼬박 어머님께 전화로 문안인사를 드렸다.

지금도 어머니가 그 사실을 모르냐고 묻자 손사레를 친다.지금도 혹 놀라실까봐 비밀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횡단을 다녀오고서 쓴 책, ‘할리데이비슨, 유라시아를 접수하다’의 출판 기념행사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어머니를 속이고 여행을 갔는데 불안해하실 테니까 원래 전화 드리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앞서서 전화를 드렸어요. 여행 중 2~3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났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저기 누워 있으면 한국 어머님이 연락이 닿지도 못하고 얼마나 걱정을 하실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지더군요. 아직도 말씀을 못 드렸고 어머님도 아직 눈치를 못 채고 계세요. 그래서 어머니를 못 모시는 출판기념회를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뤄왔는데 올 10월경에 영국의 저명한 에너지전문가가 쓴 ‘저탄소 녹색성장’의 번역서와 함께 출판기념회를 하려고 합니다.”

이 박사는 에너지경영전문가다. 자신의 직업과도 관련이 있는 학문으로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에너지경영학’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는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막을 횡단했을 때라 했다.

“사람이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와주는 사람이 꼭 나타나게 마련이죠. 사막에서 모래에 빠져서 더 이상 못 갈 뻔했는데 오토바이를 타는 지눌라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를 안내해 주었죠.

사막에서 지리를 잃는 것도 위험하지만 코브라가 나올까봐 다들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러고 있었거든요.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심장병어린이 돕기 약속 때문에 대륙횡단 완주해내

여정 중간에 4명이 부상을 입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다치지 않은 사람 4명도 돌아갔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단다.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 이 힘든 여정을 완주하게 되면 심장병 어린이를 살리기 위한 수술비를 지급하겠다고 주치의와 약속을 했던 것이다.

17명이 함께 출발 해 9명만이 완주한 가운데 이 원장이 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가 컸다. 지금 2명의 어린이는 수술을 잘 받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사실 저도 너무 힘들어 중도 포기할까 하고 주치의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혹 당장 돌아오라는 한 마디만 있으면 그럴까 하구요.그랬는데 선생님은 내 성격상 ‘현재 건강상태가 괜찮은데도 불구하고 완주를 하지않으면 평생 후회를 할꺼라’고 하시더군요.

언제라도 또 갈려고 발버둥 칠 텐데 끝까지 가라고 말씀해 주셔서 용기를 다시 얻었죠. 당시 어머니하고도 통화를 했는데 모처럼 공부하러 갔는데 학위받고 돌아오라고 격려를 해주셔서 반드시 끝내야하겠구나 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에서 어머니와의 통화를 떠올리는 이원장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요? 러시아죠. 시베리아 노선을 따라서 왔다갔다 했는데 러시아가 참 대국이구나 그런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생각보다 참 친절하고 밝더군요. 러시아 젬바로스크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그 곳 시장과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열렬히 환호하며 ‘행운의 빵’도 준비해 주었지요.

‘이거 먹고 가면 사고 안 나고 잘 간다’고 말해 주었는데 인간의 동질성 그런 것이 느껴지더군요.

특히 우크라이나라든지 러시아는 막연히 춥고 그런 줄만 알았더니 넓은 영토에 해바라기가 바다같이 깔려있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식물성 기름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식량과 에너지 부분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번에 관광공사 사장을 외국계로 영입한 것처럼 이 부분도 외국의 전문가를 데려올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는 유라시아 횡단에서 가장 힘든 것은 남자들하고만 여행을 함께한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치입문, 공천받는 과정 마냥 즐거울 따름

“아무래도 힘든 여정이니까 여자는 참가를 못하게 했어요. 남자들끼리만 있고 오지에 나와 있으니까 다들 엄청 거칠어지더군요. 모두들 인간성이 다 드러나게 되더라고요. 힘들었지만 그때의 일련의 과정들이 지금에 와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정치 입문 준비를 하면서 공천을 받기위한 힘든 과정을 겪는 것이 저에게는 그저 즐거울 따름입니다. 어떻게 됐든 결과적으로 완주를 하고 나니 책도 나오고 전남대 겸임교수도 제의받았어요. 세상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자긍심이 더 커졌죠.”

지난 8일은 그가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요즈음의 신체리듬이 그때를 떠올렸는지 여전히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고 했다.

“완주 후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천까지 직항을 타고 오는 내내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더군요. 내 마음의 지저분한 에너지가 다 탔다는 느낌이었어요.

비행기를 타면 10시간이면 되는 길을 죽을 고생을 하고 목숨을 잃을 뻔하면서,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갔던 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니 제가 저에게 감동을 받는 그런 눈물이었죠.

편안히만 살아왔고 무엇에 목숨까지 걸어 본적은 없었는데 내가 택한 길에서 죽을 고비까지 넘겨가며 살아남았을 때는 하느님의 또 다른 부름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죠. ”

37세의 늦은 결혼으로 슬하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을 둔 이 박사는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준 아내와 두 딸에게 고맙다며 가족들에 애뜻한 마음을 드러냈다.

“저는 딸만 둘을 두고 있는 터라 보호를 하고 곱게 잘 키워야 겠다는 생각만 했지 넓은 세상으로 보내겠다든지 그런 생각은 안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가서 넓은 세상을 보니까 제 스케일이 확 커졌지요. 딸들이 넓은 세상에 가서 공부도 하고 많은 것을 체험하고 큰 인물들이 될 수 있게 하고 싶더군요. 그래서 큰애를 먼저 미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멤버들 사이에서는 지난 횡단여행의 ‘3대 미스테리’ 중 하나를 자신이 완주한 것을 꼽는다는 말을 하며 그때 사실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단다. 곱게 자란 것만 같은 그가 완주한 것은 운이 좋아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 길에서 생활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때 전국에 15개의 주유소를 운영하며 평균 하루에 300km 정도를 도로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현재도 필동 한국의 집 앞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러시아의 주유소를 보고 온 소감도 잊지 않는다.   

“러시아는 다 셀프 주유를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나 일본이야 풀 서비스를 하지 대부분은 다 셀프죠. 저도 셀프로 가야한다고 주장을 하는데 여기 위치상 한옥마을 때문에 화재가 나면 큰일 나겠더라고요.

산유국의 경우 가스와 휘발유 주유소가 함께 위치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우리는 그렇지가 않잖아요. 저는 앞으로 그런 것이 많이 바뀔 거라고 봅니다.”  

내 육체의 운전기사가 ‘국민’으로 바뀌었다

그에게 여정을 마치고 가장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하자 그동안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고 싶은 사람이 되었노라고 자못 거창(?)하기까지 한 속내를 털어놨다.

“넓은 영토를 보고 돌아오니 어떤 뜻이 세워졌다고나 할까요. 50 평생 나만 위해 돈 벌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봉사하는 자세로 주변을 돌아보고 더 나아가 국가와 민족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일이었죠.”

그는 그의 정치 입문을 자신이 나고 자란 중구에서 펼치고자 한다고 말했다.
“중구는 서울의 중심이라 중요한 구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시장이셨을 때 '워싱턴 가장 센터에 있는 구에 도시계획을 배우기 위해 서울시 국장급 공무원들을 3~5개월 정도 모두 연수를 보냈다'고 말을 하신적이 있으시죠. 제일 잘하는 나라의 중심구 국ㆍ과장급 옆에서 배워야 한다고.” 행정에 새로운 발상과 기획이 있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는 그의 지론이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 목표가 아니고 시작일 뿐이란다.

앞으로 그에게 출정 나갈 계획이 또 있을까?

“내 육체의 운전기사가 바뀌었다고나 할까요? 이제는 오토바이를 통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이끄는, 국민들을 위한 운전기사가 되어 국가 간의 경쟁을 완주하는 것이 저의 꿈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전초전을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의 목표고 내 영광이고 국민들의 영광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튀면 모함을 받지요. 그런 풍토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생각은 하면서도 그렇더라도 그냥 이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를 ‘오토바이나 타던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제가 우려하는 점인데, 저는 기구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한 영국의 대기업 총수 블레차드처럼 글로벌 시대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려는 사람, 그것이 저의 콘셉트라고 봅니다. 큰 일을 성공하는 사람은 자잘한 일에서 대범한 일까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이영건 박사는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민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국가정책과정을, 카이스트에서 최고 정보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유라시아 횡단을 마친 후 2명의 러시아 어린이 심장병 수술비를 도왔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사)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 부회장
대한적십자사 종로ㆍ중구봉사관 사업발전위원회 부위원장
(사)서울시 지체장애자협회 중구지회 상임고문
중구발전포럼위원회 위원장
고려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MBA교우회 상임부회장
에너지경영전략연구원 원장
<저서> 할리데이비슨, 유라시아를 접수하다(매일경제신문사)


 

서울문화투데이 인터뷰-이은영 편집국장 young@sctoday.co.kr

                         인터뷰정리-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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