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왔나”-미나유의 춤 2015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왔나”-미나유의 춤 2015
  •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5.12.2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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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교수

 “세상의 진짜 미스테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곳에 있다고 얘기했잖아.

소박하지만 단순하지 않고, 시적이지만 낭만적이 아니며, 현실에 근접해있지만 정치적이 아닌, 자연에 복종하면서도 그것에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어떻게 한다고? 나 자신을 즐겨야지 당연히.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이 아니면 그러면 언제?”

2014년 1월 M극장에서 공연한 ’MOTION FIVE'를 위해 안무자인 미나유가 써놓은 텍스트다. 적혀진 내용이 춤에 대한 그녀의 희망이었을까 아니면 다짐이었을까.

2년 만에 그녀의 새 작품을 만났다. 공연예술창작산실 우수작품 제작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2015, Are we here yet ?"(현재 우리는 어디까지 왔을까. 11.27~28, 대학로예술극장) 공연이었다. ‘The Seven Moving Image'란 설명도 붙어 있다. 미나유가 바라보는 2015년 한국의 현실을 7개의 이미지로 진단하고 이를 춤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딘가 불안하고 수상하고 위협적인 어두움에서 공연이 시작된다. 불협화음이 배경을 이루고 검은 모자에 검은 안경,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밀고 당기기를 계속한다. 주말이면 서울 도심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폭력적인 시위풍경이다. 두 번째 장면은 병원 응급실이다.

얼굴에 흰 칠을 하고 흰 환자복에 몸을 감싼 환자와 간병인들, 모스 부호 같은 생체신호에 목을 매고 있는 의료진들, 금년 여름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전염병에 허둥거리는 이 나라 의료계의 현장일 것이다. 양파껍질같이 벗겨내면 벗겨낼수록 더욱 더 속살을 드러내는 건강하지 못한 러브 라인(love line)역시 미나유가 진단한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스포츠강국이다. 농구와 테니스와 배구, 배드민턴과 쇼트 트랙 스케이팅...네 명의 남녀 무용수가 운동복차림으로 각종 스포츠 동작을 보여주는 것이 네 번 째 장면이다. 다섯 명의 남자무용수가 등장한다. 빨간 색 옷을 입은, 젊은이들의 우상인 아이돌이다. 뮤직비디오는 예술일까 엔터테인먼트일까. 대부분 텅 빈 무용공연장과 달리 댄스 9 스타들이 뜨면 자리는 복작거린다.

무용예술의 장래를 위해 이것은 축복일까 슬픔일까? 이것이 미나유의 질문일 것이다. 긴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 두 여인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질문과 독백들로 시대적인 담론이 쏟아진다. 다양하지만 반복되는 질문들이고 동문서답 식 대화가 이어진다. 해답을 찾기 위한 토론이 아니라 혼란을 야기하기 위한 형식으로 읽혀진다. 너는 어디까지 왔니? 죽는다는 것은 무엇이지? 노래도 있고 논쟁에는 과학자와 철학자도 끼어든다. 마치 여당과 야당이 국민을 위한 최선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면서 평행선을 달리는 이 시대 정치판의 추악한 대결구조를 풍자하는 모양새다.

피날레에선 사람들이 무대를 헤매고 돈다. 걷고 또 걷고 찾고 또 찾고, 하나같이 우울하고 심각한 표정들이다.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는 군상들에게는 미래의 희망도 과거에의 그리움도 없어 보인다. 현재의 고단함만이 존재하는 것이 2015년 우리시대의 풍경일까.

2년 전 미나 유가 찾고자 했고 즐기고 싶었던 모습과는 거리가 먼 현실의 모습들이다. “우리는 어디까지 왔을까?” 수없이 내뱉는 많은 질문들에 대해 미나유가 발견한 2015년의 모습은 소박하지도 않고 시적이거나 낭만적이지도 않으며 모든 면에서 정치적이고 자연을 통제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연에 불복종하는 어리석은 세계다.

미나유는 우리나라 무용가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미국과 유럽의 무용현장에서 보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그리스, 그리고 미국의 조프리, 앨빈 에일리, 마사 그라함 무용학교들이 그녀가 거쳐 온 학교 들이다. 한예종 무용원의 초대 실기과 교수로 초빙돼 정년퇴직까지 젊은 무용가들에게 경험을 전수하고 LDP무용단 설립의 지주가 되어준 것도 미나유였다.

그녀는 그가 바라보는 현실에 대한 해답을 준비하는 대신 냉정하고 단순하게 이를 묘사한다. 사실을 파악하기도 전에 입장을 정하고 판단부터 앞세우는 대립구조가 고착화된 지금, 현실과 거리를 두면서 조용히 자신의 춤 길을 걷고 있는 무용가가 아쉬운 때다. 미나유의 작품이 소중하게 읽혀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