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연대를 강조한 시대의 스승, 신영복 교수 영결식 엄수
공감과 연대를 강조한 시대의 스승, 신영복 교수 영결식 엄수
  • 김승용 인턴기자
  • 승인 2016.01.1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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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공회대 대학성당에서 성공회식 학교장으로 열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지난 15일 타계한 신영복(75)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의 영걸식이 오늘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에서 성공회식 학교장으로 열렸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유족과 지인, 일반 시민 등 600여 명이 찾았다.

▲ 지난 15일 타계한 신영복 교수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이재정 교육감이 조사를,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회의, ·윤미연 서울여대 초빙교수, 고민정 KBS 아나운서,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등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가수 정태춘씨가 추모곡을 불렀다.

2014년 중반 암을 발견한 고인은 그해 가을 성공회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준비했고, 이를 바탕으로 2015년 출간된 『담론』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생의 막판까지 ‘공부’를 놓지 않았다.

194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신영복 교수는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됐다.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20년 20일 동안 복역하다 1988년 광복절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수감 생활 가운데 지인에게 보낸 서신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펴냄)으로 펴내 독자의 큰 사랑을 받았다.

감옥은 그에게 '또 다른 학교'였다. 사회 밑바닥의 어려움을 체험하는 계기가 됐다.

동양고전에 대한 이해를 높인 것도 감옥이었다. 한학자 출신의 장기수들을 만나 동양 고전을 공부할 수 있었고 출소 이후 성공회대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는 밑거름이 됐다.

1990년대 이후에는 장기간의 수감 생활을 통해서 얻은 자기 성찰을 토대로 진보의 재구성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모색을 촉구하는 일련의 에세이를 <나무야 나무야>(돌베개 펴냄), <더불어 숲>(돌베개 펴냄) 등의 책으로 펴내며 비전을 상실한 진보 진영에게 영감을 주는 원로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에도 2001년 <프레시안> 창간과 동시에 시작한 인기 연재 '동양 고전 강독'을 묶은 <강의 : 나의 동양 고전 독법>(돌베개 펴냄),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돌베개 펴냄) 등을 통해서 동양 고전 등을 재해석한 '관계론' 등을 설파하면서 고유한 '신영복 담론'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신영복 교수는 서예가로도 이름 높다. 한문 서체로 익힌 필법을 한글에도 응용해 민체, 연대체, 어깨동무체라는 새로운 글씨체를 창안해 서예가로서도 독특한 경지를 보여줬다. 특히 고인이 감옥에서 지은 시 제목과 서체를 그대로 가져온 소주 '처음처럼'은 주류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고인의 글씨체는 관공서, 기업 등의 건물 현판에도 올라갔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그의 저서 <나무야 나무야>에 나오는 “한 사람의 생애를 읽는 기준은 ‘한 시대의 정점에 오르는 성취’가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에 얼마만큼 다가서고 있는가다’”라는 말처럼, 그가 남긴 시대정신들은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신 교수의 시신은 영결식이 끝나고 벽제 시립 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된다. 장지는 유족들의 의사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