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이 시대 참 어르신 채현국에게 길을 묻다. ①
[인터뷰/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이 시대 참 어르신 채현국에게 길을 묻다. ①
  • 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16.01.2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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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들 서로 도울 수 있어야 세상 바로 세워”
▲채현국 학교법인 효암학원 이사장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의 서울대 입학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기뻐하는 교육자가 있을까. 있다. 그것도 아주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경남 양산에 있는 학교법인 효암학원 채현국 이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선생이 기뻐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권력과 금력의 ‘앞잡이’가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닌 진정한 공부를 해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원래도 친구들로부터 ‘귀여움’을 받고 있었는데 지난 해 한 매체에 인터뷰가 나가면서 주변의 ‘귀여움’을 더 많이 받고 있다며 껄껄 웃는 채현국 이사장. 그 ‘어르신’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저절로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이는 필시 그 어르신으로부터 전염된 것이 틀림없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늘 만면에 싱글벙글한 웃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목소리 또한 쩌렁쩌렁 힘이 넘친다. (그러나 이날 인터뷰에서 선생은 시종 심각했다)

팔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그는 동서로 남북으로 초청강연과 만남을 위해 종횡무진, 마치 개구장이 초등학생처럼 씩씩하게 다닌다. 그를 찾는 곳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왜 이 어르신을 이 시대가 찾고 있는가? 왜 그의 말을 듣고자 하는가? 

'시대의 풍운아'라 일컬어지는 채현국 이사장. 서울대 철학과를 나온 그는 선친의 가업을 물려받아 1970년대 당시 10대 재벌에 들어가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유신체제 하에 박정희 정권에 부역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회사를 정리한 돈을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기업을 접었다. 범인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일까? 

그뿐만이 아니다. 선생은 당시 해직언론인들, 문화 예술인들에게 집을 한 채씩 사줄 정도록 통 큰 사랑을 베풀었다. 지금도 여전히 함께 술자리라도 하게 되면 어려운 예술인들에게 슬그머니 몇 만원, 기십만원의 '교통비'를 찔러주기도 한다. 선생 자신도 친구의 빚보증으로 신불자가 돼 어려운 상황이지만 학교 돈은 한푼도 갖다 쓰지 않는단다. 선생은 '마누라 등쳐서 먹고 산다'며 껄껄 웃음으로 멋쩍음을 대신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변에서 그에게 존경의 뜻을 표할라치면 절교라도 할 양으로 ‘원수 계약서’를 쓰라고 하며 손사래를 친다.

▲채현국 학교법인 효암학원 이사장

이 것만이 아니다 서슬퍼런 70년대 유신시대에는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다 쫓기는 학생들을 자신이 운영하던 탄광에 은신해 숨겨주고, 혹여라도 당신이 붙들려가 그들의 이름을 불을까봐, 절대로 그들의 이름을 자신에게 알려주지도 말라고 했다. 

이렇듯 범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끝 없이 겸손한 그를 보면 저절로 고개 숙이고 그를 만나 그의 삶의 방식, 가치관, 철학을 듣고 사표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연극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외치고 싶었던 채선생은 서울대 연극반을 만드는데 주도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는 무대에 한 번도 설 수 없었다 한다. 작은 키 때문에 주어지는 배역은 ‘ 아동’이었는데 목소리가 아동역에는 또 어울리지 않아 결국 무대 뒤에서 치다꺼리만하다 졸업하고 말았다. 그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 방송국 pd로 들어가 그 판을 기웃거려 봤지만, 역시나 당시 시대상황이 그가 펼치려는 뜻을 꺽어버려 결국 그만두고 나온다. 

선생은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살 줄 몰랐다며, 요사이 중국어 공부에도 한참이다. 얼마전 중국으로 한달 간 어학연수까지 다녀올 정도로 열정적으로 배움에 몰두하고 있다.

역사 언어 어학 문학 문화예술 고대사 정치현안 등 어느 것 하나에도 막힘이 없이 현재 상황을 꿰뚫어 보는 통찰과 지식, 지혜, 혜안에 그저 고개를 연신 끄덕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훨씬 젊은 기자보다 기억력도 더 좋다. 더러 답변에 의문이 꼬리를 물어 재차 되묻기도 했지만 이내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말씀하신다. 인터뷰는 지난 해 12월 초순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이뤄졌다.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문제로 시국이 시끄러울 때라 선생의 말씀을 들어보고자 했다. 

문화예술인은 산파적 직업, 앞잡이 노릇 말아야 

먼저 저희 신문이 문화전문지라 관련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강의 중에서 산파적 직업과 장의사적인 직업이라 나눠서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인들은 어디에 속할까요?(웃음) 

"당연히 산파적인 직업이어야 되고 현자적인 직업이라야 되는데… 시속에서 먹고 살려고 하니 있는 자의 앞잡이 노릇을 해야 하고, 힘센 자의 앞잡이 노릇을 하다 보니 산파기능은 커녕 장의사보다 못합니다. 사실 장의사는 남의 가장 난감한 일을 해주는 고마운 산파 적인 사람들이입니다.

예를 들면 전혀 엉뚱하게 문화계 인쪽에 일하는 사람들이 더 고약스러운 역할을 겁없이 마구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바로 역사교과서 국정교과서 문제만 해도 이게 바로 문화적인 일이지 딴 겁니까? 모든 민중 전체를 헛갈리게 하는 수작에 앞서 가지고 거기에 기웃거리면서 이름도 못 밝히면서 국정화로 쓰겠다고 하는 이런 웃기는 소리를 하는데… 이거 나는 내버려 놓고 쳐다도 안보고 배우지 않고 시험 안치면 됩니다. 그런 용기를 가지지 않은 민중은 이런 시속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채현국 학교법인 효암학원 이사장

문화적인 일하는 사람이 큰 소리를 내주기 바랍니다. 관심도 갖지 말자. 그 따위 쥐들도 안 할 그런 부끄러운 짓을 하는데. 우리는 우리끼리 삶을 갖추기도 바쁘다고. 문화적이라는 말이 지적이라는 말과 지성적이라는 말로 사람의 상상력을 다루고 키워가는 사람이 문화적인 사람이라야 되는데, 그렇죠?

나는 말을 외워서 그대로 곱삶아가서 그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것을 풍부하게 하는 사람들, 함께 하는 삶을 도탑게 하는 사람들. 함께 한다는 것이 경쟁만이 아니라 서로 도울 수 있는 관계의 사람들이 문화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군락지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군락지는 타생 식물이 못살게 하는 경쟁적인 뜻이 있습니다. 그 식물만 사는 곳이 군락지니까. 그러나 그 군락지에서 그 식물이 살지, 군락지가 조화가 된 것이 실질 세상 자연입니다. 경쟁만 있지 않습니다. 다양한 식물이 군락지로 살다 보니까 섞이기도 하는 것이 자연입니다.

경쟁과 조화라는 것은 늘 동전의 앞뒤와도 똑같습니다. 힘이 있는 자들이 경쟁 쪽을 강조해서 자기 패거리를 만드는데 써먹지. 경쟁은 혼자 결코 존재하지 않지, 조화가 항상 함께 있지요. 동전의 앞뒤입니다. 안팎입니다. 그러나 동전은 앞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께도 있다는 말 때문에 종이의 앞뒤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두께를 없애려고…. (하하하)"

국정화는 그들의 음모, 대중을 깔보는 것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지금 국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들이 승자고 아첨하고 친일하는 것이 그들의 권위까지 포함되기에 그들은 친일이 수치가 아닙니다. 여기서 지식인들까지 포함해 우리 민중들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친일파들은 친일파라는 것이 자랑입니다. 그들은 민중들이 혼란을 일으키길 원합니다. 계엄령 같은 엄청난 엉뚱한 것을 목표로 해서 국정화라는 것을 일부러 던진 문제입니다. 개를 쫓아내려고 뼈다귀를 먼 곳으로 던지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역사조작을 한다고 반발하도록 엉뚱한데로 관심을 유도해 폭력화되기를 바라는 것같은 것을 분명히 나는 느낍니다. 이거 절대로 그들의 음모가 달성되는 일이 없어야 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음모일까요? 

일제 때 장군이었고 일제 때 장교였고, 일제 때 관 리였고, 일제 때 부자였고 그들은 이승만 밑에서도 잘 살고, 동족상잔하고도 잘사는 그들은 그것이 자랑인데, 국정화 자체가 별로 목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혁명하고 이런 사실을 폭로해야합니다. 그들은 이미 겉껍질만 한국 사람이지 전혀 그들은 앞잡이라는 의식이 없습니다. 그 앞잡이가 세속적인 이득이고 세속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그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인데 이 사실을 바라봐야지 이런 자들에게 기대를 한다는 것, 분노한다는 것부터가 괜한 바람입니다. 그들은 부끄럽지가 않습니다. 자랑입니다. 말만 안하지 남의 통념을 알기 때문에, 꿰뚫어 보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궁리만 하기 때문에, 이 모양인 겁니다.

그래서 우리 전체 대중을 깔보는 겁니다. 어리석은 버러지 같은 인간으로 보는 시각이 아니면 난데없는 저런 짓을 왜 합니까. 국정이 뭐가 어쨌다고 쩍하면 헛소리나 하고 화해라는 말도 지마음대로 써먹고 통일이라는 말도 마음대로 써먹고, 함께 살 어떤 마음도 없는 인간들이…. 그들의 정론에 어긋난다는 말은 그들은 이미 상상 못 할 만큼 썩어있는 가치관과 역사의식 속에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베가 학교 졸업장이 없고 배우지를 못 했습니까? 그런 극우적인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가치관, 우리 현재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여야 간에 몽땅 그런 썩은 가치관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으로 우리가 봐야지. 우리를 엉뚱한 논의 속에 정신 팔리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채현국 학교법인 효암학원 이사장

여야가 다 그렇다는 말씀인가요?

오히려 야당 속에도 은폐돼 있다말입니다. 아닌 사람도 있지만 여당처럼 많이, 강하진 안겠지만 수지맞는 계층, 재미 보는 계층 전부한테는 일제 앞장이 미국 앞잡이 중국 소련 앞잡이 등 등... 그게 뼈에 절어 있는 인간이고, 돈 있는 자에 앞잡이 하기 위한, 시험을 잘 치기 위한 것을 교육이라고 하고 있는 현잰데. (학생들이)무슨 공부하고 있습니까? 앞잡이 해먹는데 뽑힐 권리를 받는, 그 시험에 잘 붙으려는 교육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게 무슨 인간의 깊이 있는 가능성을 키우려고 하는 것인지,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삶을 두텁게 하려고 공부 한다고 하는 것이라는 생거짓말을 하고 있잖아요, 그걸 안할까봐 걱정들 하고 있는 거죠, 과학자든 국가든 유리한 자의 앞잡이에 뽑히려고 하는 것을 교육이라 하는 건데. 다만 제가 표현을 좀 낯설 만큼 신랄한 단어를 쓰고 있을 뿐이지 그게 사실 아닙니까?, 우수한 학생 이라는 것, 배움이라는 것이 바로 그들이 유지하는 체제 유지에 필요한 것이 우수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게 바로 앞잡이라는 말의 좋은 표현이지 뭡니까.(웃음) 

공포의 조작자들 두려워 하지 않으면 끝이 난다 

무시하면 된다 하셨는데요. 

그렇지, 무조건 무시해야 됩니다. 워낙 무시하면 그 놈들이 재미를 못 볼게 아닌가. 딴 음모가 있어 헛갈리게 하려는 것이니까. 그 놈들은 딴 음모가 있기 때문에. 아무도 받지 않고 읽지 않으면 돼요 

국가에서 다른 책 자체를 아예 발간을 못하게 하면요? 

그건 힘들 것이다. 금서가 있던 시절에도 모든 금서는 읽는 사람은 읽었습니다. 현대에 와서 인터넷도 있고 한데 어떻게 할까요. 인제는 못합니다.(하하) 그러다 보면 그들도 끝이 납니다, 모든 공포의 조작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끝납니다. 눈 녹듯이 사그라집니다. 찬 바람과 찬 눈은 햇빛 앞에서 절로 그냥 없어집니다. 우리가 조급해 하지만 않으면. 우리의 조급증이 모든 것이 끝이 안 나는 걸로 느끼게 하지, 어떤 공포가 안 끝 난 적이 있습니까? 히틀러도 끝나고 네로도 끝나고 다 끝나는 겁니다.

비폭력 저항이 우리한테는 늘 있는 것 입니다. 조금은 무심할 줄만 알면 성미 재바르게 늘 그들이 놀리는 조작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무심하면 됩니다. 바보처럼 무심한 게 제일 낫습니다. 똑똑해 봤자 바보 이반(톨스토이가 쓴 동화책 ‘바보 이반’에서 우직하 게 일하며 평화를 꿈꾸는 바보 이반을 차용함)만 못합니다. 멍청한 바보 이반이 결국 악마를 거꾸로 튀깁니다. 

배우 꿈꿨지만 키 작고 목소리 늙어? 무대 못서 

선생님께서 서울대 연극반을 만드셨다고 하는데.
하자고 그랬지요.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하자가 아니고, ‘안할래? 너희 연극 안할래?’ (웃음) 
삽시간에 각 단과대에서 다 모였어요. 거기서도 재밌던 게 수의과대학에서 허규가 나온 것이예요. 꼭 (이)순재 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여럿 나왔습니다. 의과대학에서도 공과대학에서도 있었고…. 참 순재같이 저렇게 오래하는 친구도 있었고, 꽤 여럿입니다. 세속적으로 유명했던 허규보다 이름났던 배우들도 여럿입니다.

그리고 그 모두는 시험이나 잘 쳐갖고 서울대학에 온 것이 계면쩍기도 하고 무의미하기도 하고. 그 무의미하다는 것이 괜히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바라는 그 시험에나 적합한 인물로 시간을 많이 보냈다는 것. 악영향이 많다는 것을 느낀 겁니다. 물론 나같이 이렇게 말을 좀, 남이 안 쓰는 말을 험악하게 해도 용납되고 하는 것은 그 쓸데없는 서울대학이라는 허울이 남들로 하여금 봐주게 한 것도 많이 있지요. 면제되는 것이. 그런 면제가 나한테 또 얼마나 위기를 만드는가, 게으르게 만드는가가 문제지요. 결국 배우로서는 한 번도 못하고, 삶 자체는 약간 배우처럼 살 았습니다만….(웃음)

당시 작품을 꽤 여러 편 했을텐데 왜 무대에 못 서셨는지 의아한데요. 

못했습니다. 키 작고 하니까 배역이 아동밖에 없는 데, 목소리는 늙었지. 나는 배우하려고 했는데 괜히 건달처럼 끼어있었지요. 뭐 하나도…. 결국 방송국에 가서조차도 그 때 정부 기구의 외청인데 완전히 정부일 을 하는 공무원이니까. 거기서도 아무것도 못하고요.

그렇다면 방송국 PD 지원은 왜 하셨는요? 연기를 하고 싶으셨는데.

몰랐습니다. 그냥 연극은 연극대로 어떻게 해볼 길을 찾아 보려고 했는데, 할 수 없이 연출로 들어갔습니다 그 근처 얼쩡거리다 보면 기회가 생기면 배우를 할 수 있겠지 했지요. 

배우가 정말 해보고 싶으셨던 거군요. 

네. 검열 안 받으려면 무대에서 배우로서 막 바로 해버리고 미친 체 하면 되니까. 세상에는 그 길 밖에 없었으니까요. 모든 걸 검열하는데, 일제 때부터 검열에 검열이었으니까요. 

[2편으로 이어집니다]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