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가늘게 떨리는 어깨 위에 놓인 손-스파르타 쿠스(Spartacus)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가늘게 떨리는 어깨 위에 놓인 손-스파르타 쿠스(Spartacus)
  • 김순정(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교수
  • 승인 2016.01.2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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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교수/발레리나

러시아는 한여름이라도 습도가 낮아 쾌적한 느낌을 준다. “할로드늬 보르쉬”라는 꽃분홍색 냉국을 들이 킬 때처럼 목 안으로 밀려드는 시원함이 러시아의 쾌청한 날씨를 연상하게 한다. 그것에 필적할만한 즐거움은 단연 러시아의 아름다운 극장환경이다.

극장 내부는 물론 외관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질 높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오감을 만족시킨다. 2004년, 쌍 뜨 뻬쩨르부르크 뮤직홀에서 레오니드 야캅손(Leonid Yakobson,1904-1975) 안무의 <스파르타쿠스>를 보았다. 백야(白夜)기간에 이루어진 여름날의 공연은 지금까지 내가 러시아에서 보았던 발레공연을 통 털어 단연 최고였다. 

전설적인 발레리나 나탈리아 마카로바가 2층 로열 박스에 앉아 관람을 하고 있는 광경이 더욱 감흥을 더했다. 소련 시절 키로프의 주역무용수였던 마카로바는 발레단의 고리타분한 레파토리에 염증을 느끼고 서방으로 망명한 용감한(?) 발레리나의 전형이기도 했다. 그녀는 야캅손의 작품에 출연한 경험을 가슴에 품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먼 곳에서 날아왔다. 그녀와 같은 마음으로, 야캅손을 기억하는 수많은 관객의 숙연한 행렬도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 날의 공연은 안무가 야캅손 서거 100주년 기념 <스빠르따끄(러시아식 발 음,1956년 초연)> 즉 스파르타쿠스였다. 

▲레오니드 야캅손의 석고상(얀손 마니제르1962년 作)

1990년대 중반 교환교수로 와있던 러시아 발레교수 들과의 대화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곤 했던 인물이 바 로 야캅손이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에 호기심이 날로 커져갔다. 어느 날 학교 MT를 간 교외 의 건물 앞에서 오랫동안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체형과 외모의 러시아인 교수 류드밀라 말기나는 바가노바발레학교를 졸업한 뒤에 한동안 야캅손의 <발레 미니어처> 발레단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말기나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보통 발레에는 5가지 발의 자세가 있는데 야캅손은 완전히 다른 6번 자세나 중성적인 이미지의 조형적인 동작 등을 요구했다면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따라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당시 소련 발레계 실력자였던 바가노바는 야캅손의 천재성을 인정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았다. 또 하나 유태인이라는 사실도 부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오래 전, 일본을 통해 구했던 발레비디오 <스파르타쿠스>는 1976년에 제작된 필름이었다. 이때의 안무가는 야캅손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유리 그리가로비치였다. 이 비디오로 <스파르타쿠스(1968년 초연)>를 처음 만났다. 

노예 검투사가 주인공인 발레라니!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르메니아에서 태어난 작곡가 하차투리안은 그루지아,우크라이나,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 등 남부 러시아와 근동의 음악유산을 모아 리듬과 색채감이 풍 부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억압을 뚫고 자유를 갈망하는 노예들의 처절한 저항과 반란을 그리는 발레<스파르타쿠스>는 나의 좁은 발레세계의 범위를 확장시켜주었다. 1956년 초연 이후에 1962년 야캅손이 다시 <스파르타쿠스>를 안무하면서 마야 플리세츠카야를 등장 시켜 전례 없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마야 플리세츠카야 가 토슈즈 아닌 샌들을 신고 추는, 프리기아의 애절한 솔로를 보며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됐다. 

▲야캅손 안무 스파르타쿠스1962-에기나역(릐젠코) 얀손 마니제르 조각 1963년 作 

야캅손의 스파르타쿠스는 확연히 달랐다. 모든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하나하나 살아 움직였고 그들이 무 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가로비치의 작품에서는, 스파르타쿠스가 전장으로 가기 전 프리기아를 찾아가는데 슬픔에 젖은 연인이 과도한 곡예적인 움직임을 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그들의 진짜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관객이 박수를 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기교에 의존하는 안무, 연출을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가로비치의 안무, 연출에 동의하기 힘들었던 나는 야캅손의 안무, 연출 작품을 보며 감탄했다. 

거의 움직임이 없는 두 연인. 너무나 힘들게 참고 있어서 가늘게 떨리는 프리기아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대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스파르타쿠스. 관객들은 숨죽이며 울고 있었다. 나 역시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거의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움직이는 것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이전에는 해 본적이 없었다. 내가 지향해야 할 발레의 원형이 야캅손의 작품 속에 있었다. 과유불급. 발레에서도 해당되는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