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2015년 무용공연 총평
[이근수의 무용평론] 2015년 무용공연 총평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6.01.2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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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2015년에도 예년과 같이 천여 편 넘는 무용작품이 전국 공연장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아르코와 대학로 예술극장, 장충동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과 국립국악원, LG아트센터, 강동아트센터 등이 서울에 소재한 주요 무용공연장이다. 이들 공연장을 중심으로 100편 정도의 작품을 보고 30여 편의 리뷰를 서울문화투데이 평론칼럼과 몸 지에 실었다. 

2015년의 무용공연에서 발견한 특징 중 하나는 한국전통무용의 노출빈도가 늘어나고 공연수준도 현저히 좋아졌다는 것이다. 국립극장의 세 극장(해오름, 달오름, 하늘극장)과 국립국악원의 예악당, 우면당 외에 풍류사랑방의 수요춤전과 금요무대 등 요일별로 특화된 기획공연이 연중 계속 열리면서 전통무용관객의 저변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무용에 대한 관심이 점증하면서 전통과 창작의 접점을 찾는 공연들이 늘어났다. 국립무용단과 국악원 무용단은 물론이고 창무회와 리을무용단 등 창작단체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국립무용단의 <향연>은 3명의 전통안무가들이 의상과 연출을 맡은 무대미술가와 협업하여 전통무용을 현대화시킨 세련된 무대를 보여주었고, M극장에서 열린 <한명옥의 춤-전통의 계승과 창조>는 전통춤과 이를 바탕으로 안무한 창작 춤을 같은 무대에서 보여준 충실한 공연이었다.  

전통무용에 바탕을 둔 창작무용작품이 늘어나는 추세와 함께 창작 춤에서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의 장르구분이 거의 사라진 현상도 포착된다. <푸가>는 발레리나들이 현대무용가 들과 함께 어울린 현대무용작품이었고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의 괄목할만한 작품인 고현정의 <코나투스>나 김성민의 <변형된 기억> 역시 컨템퍼러리 작품이었다.

컨템퍼러리 춤에 대한 논란이 더 이상 화제가 되지 못한 것도 2015년의 한 단면이다. 2010년 설립된 국립현대무용단(National Contemporary Dance Co.)이 단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촉발한 의도적인 논쟁이었던 만치 장르구분이 엷어지고 전통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컨템퍼러리화하는 환경에서 논쟁의 가치가 없어진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이다.  

대학무용단의 퇴조와 독립무용단의 강세 역시 주목할 만한 변화다. 아마도 1세대 중진 원로무용가들의 잇따른 정년퇴직과 수도권과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학 무용학과의 폐과추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교수중심의 무용단이 안정적인 단원공급과 지원금집중에 힘입어 공연계의 주류를 형성해온 것이 오랫동안의 관행이었다. 국가의 예산지원을 받는 국 • 공립(도립, 시립, 구립)무용단이나 창무회, LDP 등 두터운 무용수들이 포진하고 있는 전문무용단체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성 없는 관료들로부터 국공립단체가 독립성을 획득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2016년 예정된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임 예술감독 임명이 그 시금석이 될 수 있고 독립무용단체에 효과적지원이 강화될 경우 공연의 프로페셔널화는 진전될 것으로 기대된다. 2015년의 경우 주목할 만한 독립무용가들의 작품으로는 미나유(Are We Here Yet?), 황미숙(버려야할 것들), 정영두(푸가), 김미선(호모 루덴스) 등의 작품을 꼽고 싶다. 

2014년에 발표된 ‘회오리’(국립무용단), ‘Inside of Life'(김용걸), '용호상박’(국수호) 등에 견줄 수 있는 특출한 작품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도 2015년 무용공연의 아쉬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열거한 작품들과 국립무용단의 ‘제의’, 국립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박인숙의 ‘마리아 콤플렉스 3’ 들이 명맥을 유지해주었을 뿐 내가 본 대부분의 공연은 범상했다.

전년도에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쳤던 중견무용가들의 에너지는 소진되고 2~30대 젊은 무용가들의 신선함도 발견할 수 없는 한해였다. 비슷한 주제에 비슷한 춤, 검증되지 않은 외국무용단들로 요란하게 치장된 외화내빈의 국제페스티벌,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 국내무용제 등은 여전한 숙제로 남았다. 다른 작품에 대한 검열을 이유로 피켓을 들거나 관객에게 약속된 자신의 공연을 거부한 것은 2015년 도미를 더 없이 서글프게 만든 미숙한 사건이었다. 자신이 예술가임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무용가 위에 관객 있다는 평범하지만 변할 수 없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