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철경 한국예총 회장] “한국예총 위상 높이고 안정적 재정구조 만들 것”
[인터뷰/하철경 한국예총 회장] “한국예총 위상 높이고 안정적 재정구조 만들 것”
  • 인터뷰,정리/이은영 편집국장/정리:김승용 인턴기자
  • 승인 2016.02.0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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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들을 위한 환경 구축하고, 좋은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나고 싶다
▲ 한국예총 회장, 화가, 교수까지 1인 3역을 소화하고 있는 하철경 회장

대한민국 현대사와 함께 예술인을 위해 힘써온 단체가 있다. 바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예총)다. 오랜 역사와 많은 회원을 지니고 있는 한국예총, 그곳의 회장을 상상해보라고 하면 어떤 모습부터 떠오르는가.

여기 화가가 한 명 있다. 매년 전시를 열만큼 부지런하고, 수묵 세계의 거장으로 불리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릴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는 모두 한국예총 회장 하철경을 지칭하는 말들이다.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뛰어다니고 있는 그는 한국예총 회장이자 동시에 화가다. 각종 지방 행사 참석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는 매년 꾸준히 전시를 열고 있다.

올해도 전시를 계획 중인 그는 좀 더 진일보한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보였다. 한국예총을 둘러싼 어려운 환경 등에 대해 말할 때와 달리, 그림에 대해 말하는 순간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이번 2월 2일 한국예총 선거에서 그는 무투표로 당선돼 연임으로 회장을 하게 돼 취임식을 갖는다. 하회장이 예총의 수장에 이르기까지 그는 꾸준히 크고 작은 단체를 맡아왔다. 1996년전남 예총 회장 선거에 출마해 44세에 최연소 회장에 당선을 시작으로 16년간 5선에 성공하며, 최장수 예총 지역회장을 했다. 그 기간동안 예술인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 제도 마련과 전남예총상을 만드는 등 예술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복지에 힘을 써왔다. 

한국예총 회장이 된 이후 그는 대학로에서 목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목동 한국예총’ 시대를 연 인물이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전임 집행부에서 일어났던 문제로 인해 검찰 압수수색을 당했고, 취임과 동시에 450억 원의 건축비를 빚으로 고스란히 떠 안게되면서 고민도 깊어졌다. 많은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철경 회장은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한국예총의 재정적인 안정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과정에서 한국예총의 건물 자산가치를 수백억 상승시키고, 매달 나가는 은행이자를 거의 절반으로 줄인 것은 전적으로 하철경 회장의 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 자신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에 그는 무척 서운해 했다. 그에 대한 것들을 불식시키고 예총을 더욱 단단한 조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 그는 재선에 도전했노라고 했다.

그동안 한 것을 지키며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뢰를 받아 여기까지 오게 됐다는 하철경 회장. 자신의 후임 회장은 재정 걱정 안 하고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고민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예총의 재도약을 시작하고자 하는 하철경 회장의 재선 임기 시작을 앞두고 한국예총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화가로서, 교수로서 '한국예총회장과 ' '그림'이라는 주요키워드가 현재 그의 삶의 근간과 줄기이기에 이에 대한 그의 허심탄회한 속내를 들어봤다.

▲ 성실히 약속 이행하는 것이 신뢰를 만들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강조한 하철경 회장

성실히 약속 이행 하다 보니 신뢰 생겨 이 자리 오게 된 것

- 한국예총 회장을 비롯해서 예술 관련해서 많은 단체를 이끌어왔다. 예술인 전체를 잘 아우르는 사람 같다.
성실히 약속한 것을 잘 이행하니 사람들이 예쁘게 봐준 것 같다.

- 이번 한국예총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돼 연임됐다.
무투표 당선은 처음이다. 연임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다. 신영균 회장이 3선 했고, 전임회장인 이성림 회장도 3선 했다. 무투표 당선된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이 워낙 힘든 시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전에 대학로에 한국예총 건물있던 시절이 훨씬 운영하기 편했다. 그 당시에는 재무구조가 튼튼하고 빚도 없었다. 빚이 없던 과거와 달리, 나는 취임하고 지금 건물에 오자마자 빚을 가지고 시작하게 됐다. 지금 건물은 25층짜리지만 빚이 있어서 힘들다. 순수빚만 해도 430억이다. 회장 취임하자마자 한 달에 몇억이 되는 이자를 감당하게 된 것이다.

- 그러면 현재 남은 빚과 수익은 어떻게 되나?
어떻게 하면 적자를 면할지 고민했다. 걱정 때문에 잠도 안 오고 밥맛도 없어서 11킬로나 빠졌다. 타계할 방법을 계속해서 생각했다. 일단 직원들과 상의해서 건물의 자산가치도 올리고, 은행 관련해서 이자도 낮췄다. 엄청나게 뛰어다니고 고생해서 만든 결과다. 조만간 공연장 공사가 완공된다면 거기서 오는 수입도 기대할 수 있다.

그 외에 임대수입 등도 있다. 필요 이상으로 비싼 관리업체와 계약하고 있었는데, 관리업체도 바꾸고 이전에 문제 있던 부분은 소송 통해서 개선하는 등 쉴 틈 없이 뛰어다녔다. 주기적인 이사회 감사 나오면 보고하고, 내가 고생한 부분에 대해서 인정받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이들이 내게 더 맡겨야 한다고 지지해줬다. 아무튼 건물값, 은행이자, 관리비 등 많은 부분에서 개선됐다. 8부 능선은 넘었다고 본다. 남은 것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 채널을 확보하는 일이다.

- 재선을 준비하면서 내놓은 핵심공약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빚 없는 예총을 만드는 것이다. 예전처럼 빚 걱정 안 하고 편안하게 예총 본연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만드는 것이 목표다. 또한, 예총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것도 목표다. 역사나 구성원 숫자들 모든 면에서 한국예총의 위상이 지금보다 더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부심 또한 가지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공약으로는 예총 136개 지부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정부와 협력해서 남북예술교류를 하고, 동북아시아 등 외국과도 예술교류하는 것도 계획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개인예술가들이 한국을 알리고 있다. 그런 이들을 좀 더 지원하고, 그런 이들이 더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총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다.

비영리단체에게 자부담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

- 연합회 운영 관련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작년 2015년 지방재정법으로 예총과 민예총 등 단체 지원이 모두 끊겼다. 이와 관련해서 집회 열고 시위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정치인들에게 애로사항과 관련해서 말할 자리가 생겼고, 그 자리에서 지방재정법, 자부담 문제 등과 관련된 문제를 말했다.

예총은 비영리단체다. 비영리단체로 규정된 단체에 자부담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자부담 관련된 사항들은 악법이기에 없어져야 한다. 국위선양하는 예술인들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는 게 끝이 아니라 지원도 해주고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정부도 문화융성에 관해 주장하는 만큼 이와 관련해서 배려해주길 바라고 있다.

어쨌거나 여러 대화 끝에 결국 국회의결에 성공했다. 지방재정법은 원래대로 재정범위대로 지원될 예정이다. 이젠 자부담 문제만 해결되면 된다. 2억짜리 행사에 10프로, 2천만 원의 자부담을 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몇 개 도에서는 액수 문제 관련해서 서류 꾸미다가 사기죄로 걸리기도 했다. 점점 사정은 어렵고, 악법처럼 이렇게 자리 잡고 있으니 누가 이 자리에서 일하고 싶어 하겠는가. 문화 관련해서 현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많은 관심이 있기에 제발 자부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국예총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 걱정에 11킬로나 빠져

- 회장 취임했을 당시 이런 상황일 줄 알았나?
사실 처음 회장 취임할 때만 해도 상황이 이럴 줄 몰랐다. 남북 국제 예술교류 등에 대해 많은 생각하고 왔는데 빚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사표 내자니 무책임하고, 내가 떠안자니 너무 힘들어서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작년 4월에는 전 집행부의 잘못으로 한국예총을 검찰이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모든 것을 다 조사받았는데, 이번 집행부는 잘하고 있다고 칭찬도 받았다. 이전 집행부 사람과 관련돼서 압수수색 받은 것인데, 아직 수배 중인 사람이라 그 사람이 잡혀봐야 모든 전모가 밝혀질 것 같다.

그러한 일들로 인해 몇 개 언론사에서는 내 이름을 언급하며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도 했다. 내부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경우는 나에 대해 안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나 진상을 알고 기사를 썼으면 한다. 현재 한국예총의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고, 반드시 한국예총이 탄탄하게 운영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놓겠다는 사명감도 있다. 그런 사명감과 사람들의 지지로 자의 반 타의 반 회장이 됐는데, 한국예총의 위상을 높이고 안정적인 재정구조를 만들어놓고 싶다.

-한국예총은 예술 전반을 아우르고, 많은 단체와 엮여있다. 예술 분야마다 협회가 있고, 단체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기도 할 텐데 어떻게 조율하는가?
예술마다 성격이 다 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강요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들의 방식을 모두 존중한다. 다만 많은 단체를 엮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서 무용 단체에 있는 이들이 해외 공연을 할 수 있게 협조해주는 등, 그런 창구 기능을 하는 것이 한국예총이라고 생각한다.

- 재정 문제가 계속 걸리는데, 그럼 한국예총의 주요행사 등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한국예총의 가장 큰 연례행사는 두 가지다. 136개 예총 대표자들 비롯해서 사무국처장 등 300여 명이 모여서 치르는 행사가 하나이고, 또 하나는 예총상시상식이다. 행사당 예산은 7천~1억 원이고, 국가지원은 미미하다.

부족한 부분은 거의 협찬 받는 상태다. 기업인이나 예술인들에게 주로 협찬받고 있다. 행사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다 보니, 행사 한 번 열려면 이곳저곳 뛰어다니면서 협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에서 더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줘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는 한국예총이나 다른 예술단체나 똑같이 1/n로 지원해주고 있다. 행사의 규모나 역사성, 단체의 성격 등에 따라 지원금이 다른 것이 진짜 형평성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처음 취임하고 고생한 것이 느껴진다.
한국예총이 탄탄하게 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임기가 끝나면 68세가 되는데 그때는 쉬면서 그림작업 하고 싶다. 30년 동안이나 이 일을 하다 보니 너무 힘들다. 특히 가정에서는 거의 빵점이다. 안 쫓겨난 게 용하다고 생각한다.

▲ 하철경 회장은 한국예총 운영과 관련해서 자부담 문제 해결 등 정부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술계의 씨앗과 같은 인재들에겐 정부의 지원이란 햇살이 필요

- 최근 들어, 예술계의 여러 이슈가 있었는데 혹시 이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 있는가.
다른 것보다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이 아쉽다. 국가에서 지원해주고 투자한 만큼 성과 나오지 않겠는가. 지금도 많은 인재가 나오는 것 같지만 대부분 개인의 노력으로 탄생한 이들이다. 만약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면 더 많은 인재가 나올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말 능력 있는 인재들이 자기 능력을 꽃피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많은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그 중심에 한국예총이 있었으면 좋겠다.

-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하 민예총)과 한국예총의 사이는 어떤가?
좋다. 민예총은 한국예총보다 후발 단체다. 구성원도 우리보다 적다. 그런 상황에서 상반되는 이슈나 정책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었다. 재작년 8월 초에 민예총 사무총장과 이사장과 함께 대화 나눈 적 있다. 자부담 문제와 경상비 지원 관련해서 힘들어하던 차에 만나게 됐다. 민예총도 같은 문제로 힘들어했기에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은 땅 위에서 우리끼리 대립할 게 아니라 연대해서 어려움을 타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렇게 대화 나눈 이후, 자부담이나 경상비 지원 문제 관련해서 심포지엄 가지고, 같이 노력해서 야당은 민예총, 여당은 한국예총이 각각 대화하면서 여야 공존으로 대화하는 등 서로 협력적 관계를 맺고 있다. 각자 할 일 하면서, 대립보다는 소통하고 있다. 아직 일반인들이 잘 모를 뿐, 아주 좋은 관계 이어가고 있다.

- 현재 예술계 관련 핵심이슈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아까도 강조했지만, 자부담 관련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몇 천만 원 지원받고 행사 하나 하려면 결국 협찬을 받아야 한다. 정부는 1/N 개념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다. 단체의 역사성이나 회원 수, 행사의 규모 등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1/N로 지원해주는 것이다. 성인과 중학생, 갓난아이에게 다 똑같은 양의 밥을 준다면 그것이 형평성에 맞는 것인가. 단체의 성격이나 행사의 규모 등을 생각해서 지원해주는 것이 더 형평성에 맞는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 회원은 몇 명인가?
130만 정도 된다. 전문 정회원은 70만 정도 된다.

- 회비 내는 숫자가 많지는 않을 듯 한데.
회비는 적지만 의무를 하고 권리 주장하자는 뜻으로 받고 있다. 지부의 경우 월 3만 원, 광역시도는 월 8만 원씩 내고 있다. 문광부 지적사항이기도 하기에 지키고 있다.

젊은 층의 참여 늘리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할 것

- 젊은 층의 참여가 줄어들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중요한 지적이다. 50년대만 해도 여러 채널 있던 게 아니라 한국예총만 있었다. 연극, 영화, 연예 등 공연무대 하나를 해도 한국예총을 거치지 않고 나갈 수가 없었다. 지금은 한국예총에서 많은 부분이 분리됐고 다른 채널이 생겼다. 한국예총이 아니어도 성장할 수 있는 채널이 있다 보니 젊은이들의 접근성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어떤 단체의 경우 평균 연령이 65세이라고 해서 놀라기도 했다. 중년층이 거의 없단 이야기다. 회원연령구조로 보자면 다이아몬드 형태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 해결방안으로는 어떤 게 있나?
노력하고 있다. 회비 절감 등도 고려하고 있다. 한국예총이 자격요건이 높기도 하다.

- 자격요건이 어떻게 되나?
예를 들어 미술협회면 2년제 전문대학 나오면 5년 경력, 4년제 미술대학 나오면 3년 경력 있어야 한다. 미술학사나 석사 없이 순수하게 그림만 그리면 8년 경력이 필요하다. 무용은 무조건 무용학과를 나와야 하고, 사진은 한 번 입선할 때 1점으로 계산하고, 45점을 모아야 한다. 점수가 과하다 보니 채우기 힘들다. 이러한 자격요건 완화하고, 회비를 줄이는 등의 노력을 할 생각이다. 젊은 예총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

- 예술인 복지재단이 생겼지만, 여전히 예술계의 빈익빈부익부가 심하다. 예술인 복지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원 관련해서 많은 기관이 생겼지만, 비효율적인 일처리 하는 곳이 많다. 예전에 경기문화재단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문화예술인들에게 매우 많은 지원을 해줘서 많은 환호를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 어떤 예술제 행사에서 문화재단 이사장이 직원이 500명이라고 발표하는 것을 보며 한탄했다.

그에게 직원이 몇 명이냐고 되묻고, 인력 감해달라고 말했다. 소수인원으로 일 잘할 수 있는데, 인원 고용할 돈으로 창작지원하면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도청이면 도청, 시청이면 시청이 예산 가지고, 최소 인원 가지고 예술인들 지원해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 오랜 시간 예총을 비롯해 많은 행정일을 해왔다. 수많은 자리를 해낼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던 덕목은 무엇인가?
약속하면 철저하게 지킨다. 그것이 신뢰받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전남예총 회장을 5선까지 추대 받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학기금 관련해서 약속 이행해서, 처음 내가 취임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장학금을 확보했다. 한국미협도 1년에 240만 원 주는 장학금을 3000만 원으로 확대했다. 장학금 관련해서 약속했기에 지킨 것이다. 이렇게 약속 지키는 모습 보면서 사람들이 신뢰하기 시작했다.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습관이 됐기에 지금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한다.

▲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내 밝은 표정을 보여준 하철경 회장

그림 그릴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림 안 그렸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

- 그림도 계속해서 그리고 있다. 한국예총 일로도 바쁠 텐데 그림 그릴 여유가 되나.
대부분의 이들이 묻는다. 매일 행사 참여하고 행정일 처리하고 그러면 그림은 언제 그리느냐고. 잘 시간은 있느냐고. 그런데 아마 그림을 안 그렸다면 병 나서 죽었을 것이다. 한국예총은 한 협회에 한 번만 가도 146일이 걸린다. 일 년의 절반 가까이 길바닥에 있는 것이다. 집에서 안 쫓겨난 게 기적이다. 집사람도 사실 그만두라는 말 많이 했다. 그냥 그림 그리면서 가족끼리 시간 보내자는 말 자주 한다. 근데 날 지지하는 회원들도 있고, 그동안 노력한 것을 인정받고 싶기에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다.

한국미협 있던 시절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그림 그렸다. 그 시간이 있기에 버틴 것이다. 한국예총 와서는 지방 돌아다니느라 지치기에, 새벽 대신에 일 끝나는 대로 작업실로 간다. 지방행사장 가서 술자리 있다고 해도 스케줄 있다고 하고 작업실로 간다. 새벽까지 그림 그리다가 쓰러져 자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힘들어도 이 시간에 그림 안 그렸다면 나는 아마 병났을지도 모른다. 한국예총 빚 갚으려고 뛰어다니고 행사장 다니는 그 순간들 사이에 그림 그리는 시간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 시간에 나는 완전해지고 행복해진다. 모든 힘든 것도 잊고 오로지 그림에 집중할 때 진짜 내가 되는 것을 느낀다. 예술활동을 하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온종일 지칠 텐데 무슨 그림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힘들어도 그린다는 표현보다도 사는 이유이기에 그린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릴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전업작가들도 개인전 매년 열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의 경우 5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매년 하고 있다. 그림도 1000호의 제작도 나왔다. 최근에 100호짜리 그림을 독일계 스위스 사람이 사갔다. 외국 사람이 동양화를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큰 행복을 느꼈다.

중학교 시절 미술선생님 꿈꿔, 진도 시골 촌놈이 한국예총 회장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 그림 이야기를 하면서 행복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많은 직위를 거쳐 왔지만, 그림 그릴 때 가장 행복하다. 남농 허건 선생님은 내게 스승님이자 부모님이나 다름없는데 그분이 동양화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서양화를 그렸을지도 모른다. 원래 서양화를 전공했었다. 어렸을 때는 중학교 미술선생님이 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남농 허건 선생님 만나서 인생이 바뀌었다. 진도 시골 촌놈이 한국예총 회장과 한국미협 이사장을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스승님을 비롯한 주변분들에게 지금도 너무 큰 고마움을 느낀다.

- 그림과 관련해서 목표가 있다면?
작품세계와 관련해서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수묵 세계의 최정상이 되고 싶다. 훗날 전남예총 회장, 한국예총 회장이라는 칭호보다도 그림으로 남고 있다. 동양화가 하철경으로, 나의 그림으로 각인되고 싶다. 살아서 인정받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고, 사후에 하철경만의 독자적인 색을 가진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기에 지금도 열심히 그리고 있다.

- 행정일 하면서 그림에만 몰두하고 싶은 욕심도 생길 것 같다.
시간 뺏긴다고 생각하기보다, 예술의 전 영역을 섭렵하다 보니 큰 안목이 생겼다. 미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작업했던 시간과, 예술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을 가지고 작업하는 순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서 클래식을 들으면서 작업을 하면 그림이 장중하게 그려진다. 동양화는 선의 예술이다. 나의 경우 국악을 많이 듣는다. 슬프고 구성지며 장중한 국악소리를 들으면서 작업하다 보면 이전과 다른 그림이 나온다. 음악과 그림이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 음악을 수용해서 그것이 선으로 풀려서 그림에 표현된다.

행정일 하느라 그림 그리는 시간이 적다고 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림을 무작정 시간 내서 그리기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동물적 감각으로만 그리는 것이 그림이 아니다. 머리와 마음이 동해서 그리는 것이 그림이다. 손은 수단이다. 오른손이 없으면 발이나 입으로도 그릴 수 있는 것이 그림이다. 예전에 팔이 부러져서 병원에 한 달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림을 안 그리니 죽을 것 같아 왼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오히려 더 잘 그려졌다. 그때 그림들을 전시하니 사람들이 더 좋아했다. 그때 느꼈다. 그림이 손재주가 아니고, 오른손 왼손보다도 머리와 감성이 중요한 것을 느꼈다.

선 하나를 그려도 그게 다 같은 선이 아니다. 음악이 주는 그 자체의 감동과, 국악을 들으며 내 마음이 느끼는 감동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그려내는 선은 새로운 선이다. 듣고 있다 보면 저절로 손이 움직인다.

그 어떤 칭호보다도 ‘동양화가 하철경’으로 기억되고 싶다

- 작품 인기가 좋은 작가다.
열심히 한 덕분인지 작품은 잘 팔리는 편이다. 단체장 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첫째는 재능이지만, 두 번째로 경제력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밥 먹기 힘들면 돈에 얽매이게 된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일에 대한 여유 가지고 폭넓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올해 개인적인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
매년 개인전을 열고 있고, 올해도 8월 31일에 개인전을 할 예정이다.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여전히 행복한 고민 중이다. 진일보한 그림 보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한국예총 회장으로서의 목표라면 이제 재정적 안정성을 어느 정도 갖췄기에 남북예술교류 등에 힘쓰고 싶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국제 지부를 늘려서 국제적인 한국예총을 만들고 싶다. 자부담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동양화가 하철경으로 기억되고 싶다.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불리고 싶다. 보통 기와집 그림 하면 하철경이라는 식으로 많이들 표현한다. 한국화의 대표적 작가가 되고 싶고, 한국적인 소재를 한국적으로 표현해서 세계화하고 싶다. 최근에 서구화된 한국화, 정체성 없는 그림들이 많다. 뚜렷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화가가 되고 싶다. 남들과는 다른, 하철경만의 독창성으로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다.

- 마지막으로,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프랑스에 가면 일반시민들이 그렇게 말한다. ‘21세기의 마지막 귀족은 왕족이나 황족이 아니라 예술가다’. 얼마전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세계 3대 콩쿠르인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했지 않았는가. 클래식과 한류 열풍의 케이팝, 미국 진출한 싸이 등 많은 예술인이 한국을 알리고 있다. 정부가 이러한 인재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준다면 투자 속에 더 좋은 결과 나오고, 그 결과를 보며 더 많은 이들이 예술인의 꿈을 꾸지 않을까. 여전히 예술 위해 힘쓰는 모든 이들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한국예총도 많은 예술인과 함께 예술문화의 밝은 미래를 위해 힘쓰겠다.

 

하철경 주요 경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역임
남도예술회관 관장 역임
전남예총 회장 역임

개인전 52회 (한국, 중국, 일본, 독일, 미국, 프랑스, 싱가폴 등)
그룹, 초대전 900여 회(독일 루카스화랑, 독일 괴테박물관, 일본주재한국문화원, 뉴욕 퀸즈미술관, 프랑스주재한국문화원, 싱가폴국제아트페어, 세계아트페어 등

수상
1988 전라남도미술대전 종합대상(문공부장관상)
1988-92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연 4회 특선
1999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대상(미술 부문), 전라남도 문화상(예술 부문), 목포시민의 상(교육, 문화 부문)
2011 대한민국나눔대상 특별대상
2013 올해의 최우수예술작가상(미술 부문)-한국문화예술평론가협의회, 제14회 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 위대한 한국인 대상(문화예술 부문) - 대한민국신문기자협회
2015 2015 Global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국제언론인클럽)

현재
한국예총 회장
한국미술협회 고문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